'거미집' 김지운 감독→송강호, 영화인들의 출세욕 담은 블랙 코미디[Oh!쎈 리뷰](종합)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3.09.15 10: 50

 (※이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열의는 크지만 재능이 부족해 영화판에서 늘 ‘2인자’ 혹은 ‘쌈마이’라는 소리를 듣던 김열(송강호 분) 감독은 촬영을 마친 작품의 새로운 결말을 꿈 속에서 만난다.
똑같은 꿈이 몇 번씩 반복되자 ‘걸작의 탄생’이라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 김열 감독은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를 한자리에 다시 불러모은다.
하지만 이미 크랭크업 한 영화에 스케줄이 빡빡한 배우들을 앉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일정을 조율하는 게 어려운 데다, 재촬영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심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태프 및 단역 배우들의 일급을 주는 것 역시 넉넉하지 않아 신성필림 대표 백 회장(장영남 분)은 절대 안 된다며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다시 찍어야 겠다는 김열 감독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신성필림 후계자 신미도(전여빈 분). 오직 그녀만이 김 감독의 예술 정신을 받아들이고 재촬영하는 데 힘을 싣는다.
어렵게 모인 오 여사(박정수 분), 이민자(임수정 분), 강호세(오정세 분), 한유림(정수정 분) 등 배우들은 김 감독이 바꾼 급진 개혁적인 결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대부분 동의하지 않은 채 재촬영을 이어나간다.
각자 서로 다른 꿍꿍이를 품고서 예술혼을 불태우던 이들은 점점 김 감독이 원하는 명연기를 선보이며 완성을 향해 달려나간다.
‘거미집’(감독 김지운, 배급 바른손이앤에이, 제작 앤솔로지 스튜디오, 공동제작 바른손 스튜디오·루스이소니도스)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 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들과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현장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블랙코미디 예술영화.
당국의 사전 검열이 심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우리나라 영화 제작의 어려움과 그 속에서도 영화 만드는 일을 사랑했던 영화인들의 열정을 풀어냈다.
‘거미집’은 치열했던 그 시기를 뛰어넘고 2023년 현재를 관통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확연히 달라진 관람 방식에 따라 제작이 어려워진 오늘날, 그럼에도 애정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는 영화인을 상징한다.
영화인들의 출세욕, 예술정신, 그리고 사랑의 정서가 모자이크 타일처럼 합을 이루고 러닝타임 곳곳에 삽입된 70년대 고유한 음악들이 유려한 마감재 장치로 쓰였다.
야외 촬영 없이 극 중 신성필림이 운영하는 세트장에서 100% 실내 촬영해 연극 같은 느낌을 안기기도 한다. 영화적 형식과 연극적 형식이 공존하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인 셈이다.
‘거미집’ 속 또 다른 영화 거미집은 흑백 화면으로 표현해 그 시대 배우들만의 정취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 등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 스타일과 김지운 감독만의 연출이 인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70년대 영화판을 무대로 한 ‘거미집’은 자신의 한계를 깨고 걸작을 만들고자 하는 창작욕구에 불타던 감독이 재촬영을 진행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어두운 내면과 욕망에 대면하게 되는 이야기다. 코로나 이후 영화의 정의를 재정립했다는 김지운 감독의 가치관과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 구조가 담겼다.
그러나 추석 연휴에는 시네필을 넘어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 관객들이 극장 문턱을 넘는 시기이기 때문에 영화 제작을 향한 영화인의 남다른 집념이 통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배우와 감독들만 이해할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춰질 수 있다.
이에 김지운 감독은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열정, 돈을 좇는 야욕, 사랑과 배신 등 인간의 기저에 깔린 원초적 감정을 통해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사고자 했다.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2분. 9월 27일(수) 개봉 예정.
/ purplish@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영화 스틸사진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