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편성표야 콘서트 라인업이야?".
명절 연휴 각종 파일럿과 특집으로 쉴 틈 없던 방송가의 떠들썩한 분위기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소수 가수들의 특집 콘서트 녹화 방송만 남은 편성표가 한층 침착해진 방송가 명절 분위기를 대변했다.
# 여기도 저기도 콘서트
28일 목요일 오후 8시 50분 KBS 2TV에서 지오디(god) 25주년 콘서트 'ㅇㅁㄷ 지오디'가 방송된다. KBS 50주년과 지오디 25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프로젝트이자 KBS에서 추석 연휴 시작부터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구성한 콘서트 녹화 방송이다.
같은 날 오후 10시, TV조선에서는 'GREAT 김호중'이 방송된다. 앞서 추석 특집을 위해 진행된 가수 김호중의 단독 쇼를 방송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채널A에서는 10월 1일 밤 8시 40분부터 지난해 진행한 가수 영탁의 단독 콘서트 'TAK SHOW'를 방송으로 다시 공개한다.
지오디부터 김호중, 영탁까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가수들의 공연을 안방극장에서 손쉽게 볼 수 있다는 발상은 일면 반갑다. 앞서 나훈아, 송가인, 임영웅 등의 콘서트가 특집 방송으로 구성됐던 것을 생각하면 낯설지 않고 친근한 구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밖의 명절 특집은 방송가 편성표에서 찾아볼 수가 없게 됐다. 어쩌다 방송가의 명절에 콘서트만 남게 됐나.
# 여력 잃은 방송사?
과거 방송가의 명절은 다양항 신규 파일럿 예능, 특집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으로 풍성했다. 제작 여력도 풍부했고, 정규 프로그램의 휴방에 대한 부담보다 신규 프로그램에 대한 도전적인 편성의 여유도 있었다. MBC의 경우 '아육대'로 불리는 아이돌들의 체육대회 시리즈가 빠지지 않고 편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방송가의 분위기는 달랐다.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현재 진행 중인 '제 19회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다. 한 방송사 편성 관계자는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인 아시안 게임 만한 편성이 어디 있겠나. 굳이 명절이 아닌 평상시 방송이라고 하더라도 다들 쉬어가야 할 판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제작 일선에서는 '아시안 게임'과 같은 스포츠 이벤트가 없다고 하더라도 전과 같은 분위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 PD는 "정규 프로그램을 쉬어가더라도 파일럿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편성 틈을 노리던 여유가 지금은 없다. 자칫 기존에 잘 하던 프로그램도 흔들리기 쉬운 상황이라는 생각이 더 커진 것 같다. 웬만한 신규 기획으로는 방송 편성을 따내기 힘들다"라고 평했다.
또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더 이상 방송사 인력이 방송 프로그램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OTT 오리지널을 위해 회의 중인 팀들도 있고, 유튜브 콘텐츠로 빠진 팀들도 있다. 편성 플랫폼을 보자면 전에 비해 자유로워진 환경인 것은 맞다"라며 "추석, 설연휴가 반드시 방송사 대목이라는 인식도 사라졌다. 이번처럼 긴 황금 연휴엔 여행객도 늘지 않나. TV 앞에 온 가족이 모이는 분위기가 아니다 보니 오히려 타겟층이 명확한 프로그램과 플랫폼을 만나 파일럿 없이 선보이게 되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 진짜 '특집방송'이 보고 싶다
문제는 과거 SBS의 가수 성시경 콘서트, 이번 KBS의 지오디가 예외적일 뿐 이 같은 콘서트 특집은 대개 트로트에 편중돼 있다는 것. 나훈아, 송가인, 임영웅 등 트로트 스타들의 콘서트 방송이 큰 성공을 거둔 선례를 벤치마킹하는 탓도 있다. 이번 김호중, 영탁의 특집 방송이 유독 낯설지 않은 이유다. 고령화 되는 TV 시청자 층에 맞추며 편성 경향도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트로트가 아니더라도 음악 방송 자체는 안정적인 대안이다. 실제 과거 명절을 노리고 탄생한 다수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호평을 받았고 현재 장수 예능으로 자리 잡은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등도 특집 파일럿으로 출범해 정규 편성된 사례들이다. 불특정 다수의 TV 시청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에 음악 만큼 쉬운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그 안주에 취해 '특집'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신선함와 도전적인 의미를 잃은 구성은 결코 특별하지도 기념비적이지도 않다. 무엇보다 어떤 녹화 방송도 무대 바로 앞에서 즐기는 현장감 그 이상의 재미나 감동을 선사하진 못한다. TV로 본다는 것 외에는 천차 만별인 시청자들의 시청 및 음향 환경이 콘서트 현장에서의 음향 수준과 같을 수 없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한 시도 혹은 새로운 특집 아이템을 향한 도전을 지금의 방송에서 기대하기엔 무리인 걸까. '아시안 게임' 응원 열기 뒤에 일말의 아쉬움이 남고 있다. / monamie@osen.co.kr
[사진] 각 방송사, 에스이십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