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예능 트렌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연애 예능’이었다. 예쁘고 멋있는 일반인 출연자들이 한집에 모여살면서 사랑에 빠지는 것을 시청자들이 지켜보면서 설렘을 느꼈다. 거기에 각자 첨언을 하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2023년 역시 연애 예능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 그러나 올해의 트렌드는 ‘연애 예능’보다는 ‘여성 예능’이 주축이 됐다. 먼저 3월에는 연기, 노래, 방송계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6명의 출연자들이 모인 ‘혜미리예채파’가 막을 열었다.
‘혜미리예채파’는 걸스데이 출신 배우 혜리부터 (여자)아이들 미연, 댄서 리정, 아이즈원 출신 솔로 가수 예나, 르세라핌 채원, 방송인 파트라샤까지 출연진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제목으로 차용했다. 이들은 외딴 산골 빈집에 모여 안락한 삶을 위해 미션을 통해 코인을 획득해 집을 채워나가는 예능을 촬영했다.
‘놀라운 토요일’로 이태경 PD와 한번 호흡을 맞춰봤던 혜리는 물론, 재밌다면 재밌고 새롭다면 새로운 출연진들의 모습이 재미를 살렸다. 톡톡 튀는 매력으로 시즌2를 원하는 시청자가 늘었다는 점도 인상깊은 지점 중 하나였다.
‘혜미리예채파’가 떠난 자리는 ‘뿅뿅 지구오락실2’가 채웠다. 시즌1의 인기에 힘입어 빠른 시일내로 돌아온 시즌2는 시즌1의 아쉬움은 그대로 씻어냈고, 더 거침없는 웃음으로 돌아왔다. 멤버들은 ‘커피프린스 1호점’ 고은찬, ‘도깨비’ 지은탁, ‘스카이캐슬’ 김주영, ‘꽃보다남자’ 구준표로 변신하는 분장은 물론 때에 맞는 몸개그로도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시즌2는 시즌1보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얻어냈다.
‘지락실’ 멤버들은 단순히 예능계 샛별에서 벗어나 예능계를 책임질 하나의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개그우먼 이은지, 래퍼 이영지는 더이상 말할 것도 없고 4세대 대표 걸그룹 아이브 안유진은 무대 위에서는 멋있고, ‘지락실’에서는 웃긴 ‘맑눈광’ 캐릭터를 얻었고, 미미는 다수의 예능에 출연하며 웃음을 책임지는 캐릭터로 활약하고 있다.
2021년, ‘잘 봐! 이게 언니들 싸움이다’라는 말로 시청자들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시즌2로 돌아와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했다. 여성 댄스 크루의 강자를 가리는 이번 프로그램은 글로벌적으로 나가 잼 리퍼블릭과 츠바킬 등 국제 댄스 크루들을 합류시켰고, 원밀리언의 수장 리아킴까지 출연하며 이들의 춤싸움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스우파2’의 우승은 베베에게로 돌아갔고, 이들은 바로 ‘스걸파2’에 합류해 후배 양성에 나설 예정이다. '스우파1'를 대표하는 훅과 라치카 그리고 '스우파2'의 우승 크루인 베베와 파이널리스트 잼 리퍼블릭, 원밀리언, 마네퀸까지 합류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댄스신을 뒤엎을 10대 댄서를 발굴하고 있어 ‘스우파’에 이은 스핀오프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쏠린다.
‘여성 예능’의 한축은 언니들이 담당하기도 했다.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는 후배이자 솔로 가수의 명맥을 잇는 보아, 화사와 함께 호흡하며 ‘댄스가수 유랑단’으로 돌아왔다. ‘댄스가수 유랑단’은 이효리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프로그램으로, 전국 곳곳을 유랑하며 자신들의 무대가 필요한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을 퍼트렸다.
전국을 유랑하며 각기 다른 컨셉으로 보여준 무대에 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순위가 오르는 건 물론,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새로운 화합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서로 다른 시대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이들이 동시대 한 무대에서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무대를 기다리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연말에는 ‘댄스가수 유랑단’도 고개를 숙여야하는 전설의 디바들이 신인 걸그룹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골든걸스’는 평균 연령 59.5세, 도합 155년의 연차를 자랑하는 레전드 디바들이 신인 아이돌 멤버가 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바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와 프로듀서 박진영이 힘을 모아 데뷔곡 ‘One Last Time’을 발매했다.
이미 쓸만큼 써서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몸을 끌고 바닥에 눕고, 요즘 애들도 홀릴만한 비주얼 관리를 위해 팩을 붙이고, 깐깐한 프로듀서 박진영의 요구를 맞추면서 한팀이 되기 위한 도전은 말그대로 빡셌다. 하지만 경력의 힘과 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로 춤을 연습하고 노래를 녹음하는 디바들의 도전에 후배들은 물론, 대중도 박수를 보냈다. ‘골든걸스’ 멤버들은 300명의 팬들과 기자들 앞에서 쇼케이스를 펼치고, ‘뮤직뱅크’ 무대에 오르고, 코엑스 한복판에서 게릴라 콘서트까지 선보이며 신인 아이돌로 완벽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처럼 2023년은 여성 예능들이 강세를 보이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래, 연기, 방송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가는 여성 파워에 내년에는 이들이 또 어떤 활약을 선보이게 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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