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차기작'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주연급 캐스팅 얘기는 나와도 '크랭크인'이 미지수인 지경이다. 배우들이 참지 못하고 고백한 '불황'이 스태프들도 압박하고 있었다.
최근 국내 드라마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좀처럼 업계 환경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배우들조차 너 나 할 것 없이 '불황'을 입에 담고 있다.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이장우다. 그는 개인 유튜브 콘텐츠에서 "요즘 드라마 판이 개판이다"라고 발언해 화제를 모았다. "너무 힘들고 카메라 감독님들도 다 놀고 계신다"라며 "방송가 황금기에 있던 자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한 것.
배우 김지석은 JTBC 예능 '배우반상회'에서 매니저와의 통화 장면을 공개하며 "나는 주연, 조연, 조조연 상관없다. 좋은 작품이면 무조건 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하면 잘 될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 밖에도 고현정, 오윤아, 이동건, 한예슬 등 다양한 배우들이 개인 유튜브 콘텐츠에서 "작품이 없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가운데 일찌감치 회당 '억'대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스타들도 존재했던 바. 이에 네티즌 일각에서는 "배부른 소리"라며 비꼬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국내 제작 환경에서 '불황'은 더 이상 톱 배우들의 밥그릇 싸움 만이 아닌 다수의 현실적인 고민이 됐다.
당장 이장우가 지적한 대로 인기 드라마도 예외 없이 스태프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방송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종영한 KBS 2TV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약칭 '고거전')' 스태프 가운데 다음 작품을 찾지 못한 경우가 허다할 정도다. 회당 출연료가 상대적으로 높은 배우들에게도 '차기작'의 부재는 공백기에 대한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선사한다. 스태프들에게는 더욱 현실적인 압박이 가해진다. 작품 촬영에 맞춰 시급과 일당 위주로 급여를 지급받는 스태프들의 경우 작품이 없다는 것은 곧 실직이기 때문. 촬영 회차당 급여를 기준으로 가장 높은 주연 출연자부터 가장 적은 말단 스태프까지 모두의 기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제작 편수도 급감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제작된 드라마의 경우 80여 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올해 제작되는 드라마의 경우 불과 40여 편에 해당한다. 그마저도 '편성'이 모두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앞서 촬영만 하고 국내 편성을 찾지 못한 작품들이 존재하는 점이나, 방송사도 편성 슬롯을 줄여나가고 OTT 플랫폼 역시 오리지널 편성이 제한적인 것을 고려하면 촬영을 하고도 공개하지 못하는 작품은 더욱 쌓여갈 전망이다.
영화계도 다르지 않다.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각본, 감독 이병헌)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류승룡은 업계 불황에 대해 묻는 국내 취재진의 질문에 "변화 얘기도 하고 겸허히 받아들여서 지금 어렵기 전에 여러가지 현상들도 그 전의 변화였으니 계속 여기에서 변화에 맞춰서 잘 적응하고 준비하고 그래야 할 것 같다. 관객분들이나 시청자 분들도 보시는 분들이 솔직하시고 바로미터인 것 같다. (불황은) 회사 통해서 들었다. 시나리오나 대본이런 것들이 도는 수가 예년에 비하면 확 줄었다고 하더라. 그런 게 체감이 된다. 위축이 되고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에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드라마나 영화 관계자들은 '흥행작'의 탄생이 돌파구를 마련해주길 한 마음으로 기대고 있다. 방송 4회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를 기록한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이나 '천만 영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파묘'(감독 장재현)의 흥행을 경쟁작이라고 경계하기 보다는 같은 심정으로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위시한 글로벌 OTT 플랫폼의 공격적인 투자 아래 높아진 제작비 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파격적으로 삭감하라고 강요하기도 어려운 상황. 불황의 위기감이 실업이라는 현실적인 타격감으로 번지기 전에 극복에 대한 연대감이 필요한 시점이다. / monamie@osen.co.kr
[사진] 유튜브 출처, KBS, JTBC,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