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극상 논란'의 여파는 없었다. 팬들은 고개 숙인 이강인(23, 파리 생제르맹)을 뜨거운 환호성과 박수갈채로 감싸안았다.
황선홍 임시 감독이 지휘하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2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태국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3차전에서 1-1로 비겼다.
한국은 4-2-3-1 포메이션으로 시작했다. 주민규가 최전방에 자리했고 손흥민-이재성-정우영이 공격 2선에 섰다. 황인범-백승호가 중원을 지켰고 김진수-김영권-김민재-설영우가 포백을 꾸렸다. 골문은 조현우가 지켰다.
선제골은 한국의 몫이었다. 전반 42분 왼쪽 측면에서 이재성이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고 손흥민이 왼발로 정확히 밀어 넣었다. 손흥민의 45번째 A매치 골이다. 한국은 전반을 1-0으로 앞선 채 마무리했다.
기세를 타던 한국은 후반 들어 일격을 맞았다. 후반 16분 스로인에 이어 수파낫 무엔타가 공을 잡았고, 미켈손이 우측에서 슈팅했다. 수파낫이 골문 앞으로 침투하면서 발을 갖다 대 골망을 흔들었다. 경기는 1-1 동점이 됐다.
이강인이 곧바로 출격했다. 황선홍 감독은 실점하자마자 정우영과 주민규를 불러들이고 이강인, 홍현석을 투입하며 공격진에 변화를 줬다. 손흥민이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았다. 이강인은 정우영이 있던 우측 날개에 배치됐다.
이날 이강인은 19일 오후 대표팀에 늦게 합류한 여파 때문인지 벤치에서 출발했다. 장거리 비행으로 컨디션을 회복할 시간이 적었던 데다가 팀 훈련도 하루밖에 하지 못한 점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강인은 전날 대표팀 훈련을 앞두고 2023 아시안컵 도중 주장 손흥민과 충돌한 '탁구 사건'에 대해 공개 사과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그는 "아시안컵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사랑과 많은 관심 그리고 많은 응원을 해주셨다. 그런데 그만큼 보답해드리지 못하고 실망시켜드려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강인은 "앞으로는 좋은 축구 선수뿐만 아니라 더 좋은 사람, 팀에 더 도움이 되고 모범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겠다. 그런 사람, 그런 선수가 될 테니 앞으로도 대한민국 축구에 많은 관심과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붉은악마도 이강인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그에게 힘을 보냈다. 이강인의 진심 어린 사과 덕분인지 분노가 아닌 격려로 가득했다. 팬들은 주장 손흥민이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던 대로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줬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 관중은 킥오프 전에도 전광판에 이강인의 얼굴이 나오자 우레와 같은 함성을 터트렸다. 다른 교체 선수들이 등장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손흥민 다음으로 큰 목소리였다.
이강인이 후반 17분 교체 투입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큰 환호성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냥 대가리 박고 뛰어 응원은 우리가 할 테니", "태극전사는 붉은악마가 지킨다"라고 적힌 걸개도 이강인에게 큰 힘이었다. 이강인이 코너킥을 차러 이동하자 그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이강인은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려는 듯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날카로운 왼발 킥으로 태국 수비진을 위협했고, 손흥민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추가골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한국은 막판 공세를 퍼붓고도 결정력에서 아쉬움을 남기며 안방에서 승리를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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