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 10년은 어떤 세월이겠는가. 특히 한 직업에 있어서 그만한 공백기라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10년을 꽉 채우진 않았지만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기와 인연이 닿지 않았던 배우가 270억 제작비가 들어가는 32부작 대하 드라마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에 캐스팅된다면? 그 드라마와 같은 일이 배우 김혁에게 일어났다.
1994년 KBS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한 김혁.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은 ‘지구용사 벡터맨’과 ‘야인시대’다. ‘지구용사 벡터맨’ 1기에서 벡터맨 베어 역으로 활약하며 그 시절 아이들에겐 ‘영웅’이었고, ‘야인시대’에서는 청년 이정재로 열연하며 그 시절 시청자들에겐 ‘협객’이었다. 이국적인 외모와 선 굵은 연기로 ‘무인시대’, ‘왕과 나’, ‘대왕의 꿈’,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 등에서 활약한 김혁이다.
하지만 2015년 방송된 ‘가족을 지켜라’ 이후 8년 동안 그의 연기를 볼 수 없었다. 이렇다 할 논란, 구설수 없이 활동을 이어왔던 김혁이었기에 8년 공백기라는 시간이 궁금증을 높였다.
“작품의 80% 이상을 KBS에서 했어요. 요즘은 방송국 시스템이 많이 외주화가 되다보니 알던 감독님들도 은퇴를 하시고, 연기 공백기가 1년, 2년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러브콜도 없어졌죠. 감독님들도 ‘저 친구 연기 되겠어. 저렇게 오래 쉬었는데’라고 하면서 안 찾아주셨겠지만 저조차도 내려놨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했다. 배우라는 직업을 내려놓는 건 살기 위해서였죠. 연기라는 길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생겼고, 결혼을 하고 대학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다시 한 번 힘을 내려고 했는데 코로나 시국이 오면서 또 일을 안하게 됐고 그렇게 공백기가 8년이 됐어요.”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김혁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아내를 만나 결혼에 골인해 가정을 꾸렸고, 배우가 아닌 카페 사장님으로 커피를 내리며 손님들과 만나왔다. 그렇게 ‘배우’보다는 ‘카페 사장님’이 익숙할 때 찾아온 건 다름아닌 ‘고려거란전쟁’의 야율융서였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매니저 동생이 ‘형님, 이번에 ‘고려거란전쟁’이라는 드라마가 하는데 프로필을 원해서 영상 등을 보냈다‘고 했어요. 기대는 하지 않았죠. 8년을 연기를 안 했기도 하고, 기대만큼 실망도 클 것 같아서요. 당시에 아내 건강도 좋지 않았는데,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3일 정도 지난 뒤에 전우성 감독님의 전화를 받고 ‘고려거란전쟁’에 합류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미팅 한 번 안하고 야율융서라는 큰 역할을 덥석 맡기셨을까 싶어서 더 믿기지가 않았는데요. 전우성 감독님과 작품을 같이 해본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잘 봐주십사 아부를 한 것도 아니었기에 더 그랬죠. ‘꽃들의 전쟁’에서 도르곤 역할을 하신 걸 보면서 외국어 연기였지만 저 정도 감정이 있으면 충분히 소화가 되겠다고 생각하셔서 제게 맡겨주신 것 같다. 부담, 설렘 등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부담이 컸다. 8년 만에 하니까 잘해야지라는 마음 만으로는 답이 안 나왔다. 죽기 살기로 하면 안됐고, 정말이지 죽기로 했어요.”
“8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때 8번이었어요. 8이라는 숫자가 오뚜기 같기도 한데, 우뚝 서는 것보다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오뚜기 같이 버틴 끝에 벼랑 끝도 아닌 완전 벼랑에서 좋은 작품을 만나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배우라는 화려한 삶도 살아봤지만, 힘든 시기가 더 많은 게 배우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직업이든 꾸준하다는 것에 행복하다는 걸 느껴봤고, 내 길을 가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 슬픔, 비참함 같은 현실도 느꼈어요. 생활고 같은 힘든 시기도 있었는데 죽기가 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돈에 대한 소중함도 다시 알게 되고 세상 사는 것 다 똑같다고 느끼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마인드가 생겼어요.”
죽기 살기에서 ‘살기’는 버렸다. 죽기로 ‘고려거란전쟁’과 야율융서에 몰입했다. 그의 연기에서 ‘칼을 갈았구나’, ‘이를 갈았구나’라는 반응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몰입이 된 이유는 그의 노력 때문이었다.
“거란 역사를 전혀 몰랐어요. 사극을 하게 되면 역사를 다시 공부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부분이 나와 공감대가 있었어요. 거란에서도 성군으로 불렸던 게 야율융서인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고 한 나라의 최고 부흥기를 만들었던 사람이더라고요. 우리 역사는 아니지만 이 사람에 대해 공부를 하고 연기를 하면서 절대 빌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연기하면서 항상 선배들이 ‘눈으로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하셨었는데요. 눈에 보이는 진실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연기할 때 표정보다도 눈에 힘을 많이 실었어요. 야율융서는 직진형 인간, 돌격형, 정복이라는 키워드가 있어서 대사를 할 때 눈을 깜빡이지 않았어요. 강하게 보이려는 게 아니라 욕망, 야망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캐릭터, 연기에도 진심이지만 누구보다 현장에 진심이고, 연기에 진심이었다. 역할의 비중 등에 차이를 두지 않고 단역까지 세심하게 챙기면서 모든 사람을 ‘동료’로 생각한 그는 현장 분위기의 중심이기도 했다.
“현장이 덥기도 하고 춥기도 했어요. 그래서 늘 사탕을 가지고 다녔죠. 현장에 있는 사람 그 누구랄 것 없이 사탕을 챙겨주면서 같이 힘을 냈어요. 예전에 생활고를 겪을 때 건설 현장 같은 곳에서 일을 하기도 했는데 날은 덥고 일하기 싫지만 사탕을 먹고, 나눠주니까 인상 쓰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항상 웃는 현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늘 가방에 사탕을 넣고 다니면서 보는 분들에게 나눠줬어요. 나중에는 현장에서 ‘캔디맨’으로 통하면서 나를 보면 사탕을 달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어요(웃음). 현장에 웃음을 주는 캔디맨이 되고 싶었는데 감사했죠.”
그렇게 누구보다 진심으로 ‘고려거란전쟁’에 임했던 김혁. 때문에 야율융서로 활약한 시간은 아직도 김혁의 몸 속에 남아있고, 그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고려거란전쟁’이 없는 주말이 시작됐음에도 아직도 그 시간이 되면 채널을 7번으로 돌려야 할 것 같고, 촬영장에 가야할 것만 같다는 김혁이다.
“행복했어요. 8년이라는 시간, 죽어있던 연기 시계를 다시 돌아가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고려거란전쟁’이라는 전투함에 합류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이 작품으로 인해 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연기에 대한 열정도 다시 불타오르게 됐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이었나를 다시 알게 된 작품인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배우 김혁’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배우 김혁’보다 각 작품의 캐릭터로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연기를 했을 때 그 이름을 기억해 주는 게 더 멋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여운이 남아있던 거고, 제가 더 행복해졌다는 걸 정말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일에 대한 소중함도 더 알 수 있었거요. 하지만 지금 이 기분에 취해서 더 고삐를 당기기보다는 숨을 돌리면서 바라보려고 해요. 아내와 여행도 다녀오면서 재충전의 시간도 가지려 하고 있고, 어떤 작품, 캐릭터가 나를 찾아와줄지 모르겠지만 또 좋은 모습으로 좋은 캐릭터로 남는 배우로 다시 시청자 분들과 만나고 싶네요.”
8년이라는 공백기는 김혁이라는 ‘배우’가 아닌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헛되게 보내는 시간은 없다는 말처럼,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내실을 더 단단히 하며 ‘고려거란전쟁’ 야율융서라는 인생 캐릭터를 만난 김혁. 그가 앞으로 그려갈 새로운 연기 인생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