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57)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포수 출신 명장이다. 포수의 볼 배합과 투수 리드에 대한 기준치가 높고 엄격하다. KBO리그 최고 포수의 길을 걷고 있는 양의지(두산 베어스)도 김태형 감독과 함께할 때에는 경기 중 부름을 받아 메시지를 전달받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지난 2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도 김 감독은 1-0으로 앞선 8회말 포수 정보근(25)을 경기 중 따로 불렀다. 롯데 불펜 필승맨 최준용이 선두타자 노시환을 우익수 뜬공으로 잡았지만 펜스 앞까지 가는 큼지막한 타구를 맞은 뒤. 다음 타자 안치홍 타석을 앞두고 3루 덕아웃 앞에 나온 김 감독이 정보근을 불러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9회말 무사 1루 최인호 타석에서도 김원중이 1~2구 연속 볼을 던지자 김 감독이 덕아웃에서 정보근에게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앞 타자 하주석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에도 김원중의 제구가 흔들리자 김 감독은 포수 정보근에게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3일 한화전이 우천 취소된 뒤 취재진을 만난 김 감독은 정보근에게 전한 내용에 대해 “중요한 상황에서 타자가 못 치게 하는 볼 배합을 했다. 투수들이 어렵게 타자를 속이려다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렸다. 그럴 때는 타자를 못 치게 하는 것보다 투수가 가장 편하게 던질 수 있게 볼 배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타자가 못 치는 공을 투수가 거기에 잘 던지면 좋은데 거기 사인을 냈을 때 투수가 팔이 말린다든지 택도 없이 공이 가면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1~2구 연속 타자를 못 치게 하려고 사인을 낼 것이 아니라 투수가 가장 편하고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공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데는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타선 약화가 뚜렷하다. 팀 타율 9위(.246), 출루율 10위(.320), 장타율 9위(.327), OPS 10위(.647), 홈런 10위(4개)로 각종 지표가 바닥이다. 경기당 평균 득점이 2.9점으로 유일하게 3점을 넘지 못한다. 안치홍(한화)이 FA로 빠져나갔고, 한동희가 내복사근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빅터 레이예스, 전준우 외에는 크게 위협적인 타자가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그럴수록 결국 투수력에 의존해야 한다. 롯데의 팀 평균자책점은 6위(4.11)로 나쁘지 않다. 투수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포수의 볼 배합과 투수 리드도 중요하다. 경기 후반 교체로 자주 나서는 정보근이라 접전 상황에서 볼 배합 하나가 승패로 직결될 수 있다. 김 감독이 직접 1대1로 전하는 이런 메시지는 정보근의 성장을 이끌 수 있다.
롯데는 시즌 초반이지만 2승6패로 처져있다. 타선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2일 한화전은 투수력으로 1-0 승리를 거뒀다. 9회말 무사 2,3루에서 이재원을, 2사 2,3루에선 요나단 페라자를 고의4구로 1루를 채운 뒤 만루에서 김원중은 문현빈을 홈 병살타, 채은성을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최상의 결과로 경기를 끝냈다.
초반 스타트가 좋지 않은 시점에 거둔 1승이라 짜릿함이 두 배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라며 웃은 김 감독은 “초반에 점수를 쉽게 줬으면 어려운 경기가 됐을 텐데 선발 나균안이 워낙 잘 던져줬다. 전미르한테도 믿음이 많이 갔다. 한화 타선이 좋으니까 힘으로 붙어보려고 했다. 최준용, 김원중도 잘 던졌다. 어제(2일) 경기가 넘어갔더라면 데미지가 컸을 것이다. 한화에도 찬스가 많았는데 우리한테 기운이 많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