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기생수: 더 그레이' 연기는 왜 논란을 낳았을까.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인간의 뇌를 장악해 신체를 조종한다는 기발한 상상력과 철학적인 메시지로 30개 이상의 지역과 국가에서 누적 판매 2천5백만 부 이상을 기록한 이와아키 히토시의 일본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연니버스' 연상호 감독의 독창적인 시선과 상상력은 물론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권해효, 김인권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신선한 라인업으로 주목을 받은 '기생수'는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63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고, 68개국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현재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TOP10 1위를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프랑스, 독일, 일본, 인도, 뉴질랜드를 포함한 총 68개 국가에서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선보였다.
작품성과 화제성을 모두 챙긴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두고 있음에도 불구, 영상화 과정에서 과장 혹은 부자연스러운 부분을 많이 덜어낸 모습이다. 지역 축제 취소 위기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남천 시장의 K-‘안전불감증’ 면모나, 집단과 집단이 부딪히는 한국 사회의 모습 등, ‘기생수: 더그레이’는 감히 K-크리처물로 불릴 만하다.
그중 가장 ‘만화’스러운 캐릭터가 있었으니,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연기 논란을 낳은 이정현의 배역 ‘준경’이 그렇다. 준경은 그레이팀 리더로 기생수에게 남편을 잃고 기생수를 박멸하려는 목표를 가진 캐릭터다. 이에 그는 남편의 몸만 남은 껍데기를 기생생물을 발견하기 위한 유인물로 사용하기까지 하는 ‘광기’를 선보인다.
준경의 본체인 이정현은 앞서 여러 작품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왔던 배우다. 1996년 영화 ‘꽃잎’으로 데뷔한 그는 일찌감치 빼어난 연기력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고, 대종상, 청룡영화상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받았다. 이후 2010년대부터는 ‘성실한 나라 앨리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 등, 다시 한번 배우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갔다.
이후 흥행에 있어서는 아쉬운 성적을 낳았을지라도, 이정현은 한 번도 연기력에 있어서는 ‘호불호’ 논란을 낳은 바가 없다. 그런 그가 유독 ‘기생수’에서 갑작스레 호불호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생수’에는 이미 여러 원작에서 참고할 만한 캐릭터를 가진 전소니(이수인/하이디 역), 더없이 한국적인 배경과 이미 K-콘텐츠가 여러 번 생산해 냈던 조직폭력배 출신의 구교환, 형사 권해효-김인권 캐릭터 등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하는 캐릭터 설정에 용이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반면 이정현이 맡은 ‘준경’은 극 중 주요 배역 중 유독 낯선 느낌을 주는 캐릭터다. 가뜩이나 가상의 존재인 기생 생물인 데다가, 이를 사냥에 나선 가상의 단체 ‘더 그레이’, 그곳에서 수장을 맡은 캐릭터란다. 그만큼 ‘준경’이는 시청자가 단숨에 그의 배경과 성격을 그리기 힘든 인물이다. 이는 연출을 맡은 감독은 물론, 연기를 해낸 이정현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였을 터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설명해야 했고, 결국 준경의 캐릭터는 강렬한 인사 방식을 택한다. 실제로 첫 기생생물 브리핑에 나선 이정현의 연기는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과장됨이 배어있어 시청에 있어 가장 큰 이질감을 안겼다. 구태여 ‘센’ 캐릭터를 부연하기 위해 선택한 스모키 화장과 쇼트커트 등의 외관도 다소 아쉽다. 다만 회차가 거듭해 가며 준경의 서사가 노출되며 캐릭터가 자리 잡자, 이정현의 연기도 자연스레 안정됐다.
일각에서는 전투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준경의 캐릭터를 다소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인 이정현이 아닌, 건장한 몸을 가진 타 여배우가 맡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일명 ‘센’ 캐릭터는 단순히 짙은 화장, 건들거리는 포즈, 큰 체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짜 광기를 잘 표현해 줬다”라며 자기 연출대로 연기를 완벽히 소화해 낸 이정현에 감사 인사를 전한 연상호 감독의 말을 미루어 보면, 아마 같은 캐릭터, 같은 장면을 타 배우가 연기했더라도 ‘호불호’ 반응은 여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작은 체구임에도 전투에 사활을 거는 본체 이정현의 모습이 오히려 복수심과 분노로 물든 준경의 캐릭터에 ‘찰떡’이라는 느낌도 든다.
여러모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기생수: 더그레이'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6부 모두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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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OESN DB /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