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기대했던 성적은 아니다. 여전히 적응 과정에 있지만 여러 가지 세부 지표를 보면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정후는 지난 11일(이하 한국시간) 워싱턴 내셔널스전에 결장했다. 개막 후 12경기 모두 선발출장하며 교체 없이 풀로 뛰어온 이정후에게 첫 휴식이 주어졌다. 경기가 없는 12일까지 이틀 연속 쉬고 난 뒤 13일부터 13연전 강행군에 들어간다.
개막 첫 2주 동안 이정후의 성적은 타율 2할5푼5리(47타수 12안타) 1홈런 4타점 4득점 5볼넷 4삼진 출루율 .315 장타율 .340 OPS .655. 희생플라이 2개가 있고, 도루는 한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 같은 클래식 성적만 보면 이정후에게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세부 지표를 보면 이정후는 무난하게 잘 적응하고 있고, 앞으로 성적 상승 여지가 상당히 높아 보인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숫자는 헛스윙 비율 6.8%로 193명의 타자 중 리그 전체 1위에 빛나는 기록이다. 2017~2023년 KBO리그 시절 이정후는 스윙 대비 헛스윙이 8.3%로 이 기간 50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 182명 중 김선빈(KIA 타이거즈·6.4%), 이용규(키움 히어로즈·7.2%) 다음으로 낮았다.
배트를 짧게 쥐고 컨택에 집중하는 김선빈과 이용규가 전형적인 교타자인 반면 이정후는 홈런도 곧잘 치는 중장거리 타자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대목.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이정후의 헛스윙은 쉽게 보기 힘들다. 존 바깥으로 벗어난 공에 3번, 존 안에 들어온 공에 2번 헛스윙한 게 전부다.
컨택률도 인존(94.9%), 아웃존(78.6%) 모두 리그 전체 7위로 특유의 컨택 능력이 살아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강속구나 변화구에도 잘 속지 않는다. 자기 존이 확실한 만큼 어처구니 없는 스윙이 거의 없다. 스트라이크존 바깥 공에 스윙한 것도 16.5%로 리그 전체 상위 5%에 든다.
그러다 보니 삼진율도 7.4%에 불과하다. 루이스 캄푸사노(샌디에이고 파드리스·6.3%)에 이어 리그 전체에서 두 번째로 낮은 수치. KBO리그 시절에도 삼진율이 7.7%밖에 되지 않았는데 메이저리그에서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헛스윙이나 삼진이 적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정후에게선 타구 속도도 주목할 만하다. 평균 타구 속도가 92.3마일(148.5km)로 리그 상위 16%에 속한다. 95마일(152.9km) 이상 하드 히트 비율도 48.9%로 상위 22%에 포함된다. 전체적인 타구 질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 높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발사각이다. 발사각이 3.4도로 리그 평균(12.2도)에 한참 못 미친다. 땅볼 타구가 57.8%로 리그 평균(44.6%)보다 유난히 많은 이유다. 거포가 아니기 때문에 발사각을 지나치게 높일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공을 띄워야 더 좋은 타구 양산이 가능하다.
발사각 조정을 위해 폼을 교정하는 것은 시즌 중 리스크가 너무 크다. 현재 타격 메카니즘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이 역시 적응 과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팀 동료인 올스타 4회의 특급 3루수 맷 채프먼은 지난 9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인터뷰에서 이정후에 대해 “조금 더 편안해지면 훨씬 좋은 활약을 할 것이다”며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