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텝으로 한 번 쳐볼래?”
NC 다이노스 외야수 김성욱(31)은 올해 커리어 최고의 페이스를 향해 가고 있다. 김성욱은 현재 22경기 타율 2할5푼(76타수 19안타) 6홈런 19타점 OPS .898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NC 팀 내 홈런, 타점 1위에 빛나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NC가 상하위타선의 고른 조화로 현재 1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에는 김성욱의 역할도 적지 않다.
지난 17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김성욱은 올해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날은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통산 100승 도전 경기이기도 했다. 올해 빅리그에서 돌아온 뒤 연일 화제를 몰고 다녔고 또 점점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고 있었다. 17일 경기에서도 류현진은 첫 2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하지만 NC는 3회 류현진을 공략해냈다. 2사 1,2루 기회에서 일격을 가했다. NC 팀 내 홈런 1위 김성욱이 류현진이 이날 몇개 없었던 실투를 놓쳤지 않았다. 1볼 1스트라이크에서 3구째 139km 높은 커터를 통타해 좌월 스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0-2로 끌려가던 경기가 3-2로 역전됐다.
그리고 이 홈런은 류현진이 한국무대에서 4213일 만에 허용한 홈런이었다. 김성욱에게 홈런을 맞기 전, 류현진의 마지막 피홈런은 빅리그로 떠나기 전 마지막 등판이었던 2012년 10월4일 대전 넥센(현 키움)전 강정호에게 맞은 홈런이었다.
이날 류현진은 7이닝 3피안타(1피홈런) 2볼넷 8탈삼진 3실점 역투를 펼쳤지만 김성욱에게 맞은 홈런으로 패전 투수 위기까지 몰렸다. 타선의 뒤늦은 도움으로 노디시전을 기록했지만 류현진의 위력은 김성욱을 비롯한 NC 선수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강인권 감독은 “김성욱의 홈런이 없었다면 끌려가는 게 아니라 그냥 졌을 것이다.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가 거의 없었다. 김성욱이 그 실투 하나를 잘 쳤다”라고 했다. 김성욱도 “제구력이 워낙 좋다고 얘기를 많이 들었다. 놀아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가 진짜 헷갈렸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김성욱은 올해 스프링캠프 합류를 앞두고 2주 먼저 미국으로 떠났다. 광주 충장중-광주일고 1년 선배이자 ,2021년 현역 은퇴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마추어 레벨부터 지도자 단계를 밟고 있는 허일에게 찾아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아주사퍼시픽대학교의 타격코치를 맡고 있었지만 김성욱이 도움을 요청하자 거절하지 않았다.
김성욱이 활약하고 있었고 류현진에게 홈런을 치자, 허일 코치도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 닿은 허 코치는 “(김)성욱이가 FA시즌을 앞두고 나에게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저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했겠나. 자기도 도박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웃었다. 한국과 캘리포니아의 16시간 시차도 잊고, 잠도 못 잔 채 김성욱의 타석을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지난해 여름 즈음에,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더라. 그 뒤로 (김)성욱이의 타석을 하나도 안 놓치고 다 봤다. 오차를 줄이고 싶었다. 성욱이가 잘 친 스윙 몇개, 안 맞은 거 몇개 보고 ‘네 스윙은 이게 문제’라는 말을 제가 하고 싶지 않았다. 왜 안 맞을까를 고민하고 보완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써야하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달한 결론은 “공을 무조건 맞히게만 하면 된다”라는 것. 허 코치는 “스윙 자체를 바꿀 필요가 없었다. 너무 좋은 스윙 메커닉을 갖고 있었다. 스윙이 좋다는 것은 스윙의 스피드, 스윙을 할 때 몸통 스피드 같은 수치들이 너무 좋았다”라면서 “중심에만 맞히게 하면 됐다. 그런데 헛스윙 비율이 너무 높았고 삼진이 많았다. 공을 맞히게끔만 하면 무조건 20홈런은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김성욱과 허 코치는 매일 연락을 한다. 류현진의 100승을 저지한 그 날에도 30분 가량 통화를 했다. 그러면서 접근법을 찾았다. “매일 30분 정도 통화를 한다. 잠을 못 잔다”라고 웃으면서 “그날 성욱이보고 초구부터 노스텝으로 치라고 했다. 직전 2주 동안 노스텝으로 쳤을 때 결과가 잘 나와서 레그킥을 버리고 노스텝으로 칠지를 계속 얘기했다. 그런데 그날도 성욱이보고 초구부터 노스텝으로 쳐봐라고 했는데, 성욱이도 노스텝으로 칠 생각을 하고 있더라”라고 홈런의 뒷 이야기를 전했다. 실제로 김성욱은 레그킥 없이, 스텝을 밟지 않고 허리의 회전력과 스윙 스피드로 홈런을 만들어냈다. 이날 홈런 뿐만 아니라 시즌 6개의 홈런 가운데 절반 가량이 노스텝으로 때려낸 홈런이었다.
노스텝 타격에 대해서도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허 코치는 “성욱이가 노스텝을 하면 파워가 떨어진다는 걱정을 하더라. 하지만 노스텝을 하는 과정에서도 힘을 싣는 과정이 있다. 이 힘을 싣는 과정이 없어서 파워가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 과정을 설명해줬다. 그리고 타이밍을 잘 잡고 컨택 확률을 올리기 위해 스텝 자체가 간결해졌다”라면서 “원래 시키는대로 하는 친구인데 많이 불안해 하더라. 그러더니 질문 폭탄이 쏟아졌다. 그래서 이것을 이해시키는 과정을 가졌다. 레그킥과 노스텝을 했을 때 파워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데이터, 타구속도나 몸통 회전 속도 등이 그대로라는 것을, 때로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보여주고 이해를 시켰다. 그러면서 더 강한 스윙을 할 수 있게끔 했다”라고 설명했다.
김성욱은 물론, 김성욱과 별개로 개인 훈련을 하다가 허일 코치에게 도움을 요청한 박민우 등 NC 선수들 때문에 잠을 못잔다는 허 코치다. “지금 시즌 중이라서 나의 팀 선수들도 신경써야 하는데 성욱이나 (박)민우 타석을 보느라 잠을 못 잔다. 3시간 자는 것 같다”라면서도 “매일 통화를 하면서 확신을 주고 불안감을 없애주려고 한다. 이 선수가 간절한 것을 알기에 제가 한 마디를 할 때에도 하기 전에 열번 넘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확실을 심어주면서도 이 방법이 틀리고 안맞을 때 어떤 방법이 있을까, 다른 플랜들을 만들어 놓으려고 한다. 매일 그런 고민들을 하는 것 같다. 나야 레슨비를 받았지만 선수는 1년이 날아가는 것이다”라며 책임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허 코치는 NC 타격 파트 코칭스태프를 존중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건넸다. 그는 “송지만 코치님, 전민수 코치님께 너무 감사하다. 팀 타격의 방향이라는 것이 있는데 내가 헷갈리게 하거나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팀의 타격 방향에 반하면서 까지 내 지론처럼 타격을 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그 분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라면서 “그런데 지금 NC 타격코치님들이 맡겨주시더라. 그래서 정말 감사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