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도연의 27년 만 연극 복귀작 ‘벚꽃동산’이 2024년의 한국을 넘어 글로벌 공감대를 형성한다.
23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연극 ‘벚꽃동산’(연출 사이먼 스톤)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사이먼 스톤 연출과 사울킴 무대 디자이너, 이현정 LG아트센터장, 배우 전도연, 박해수, 손상규가 참석했다.
‘벚꽃동산’은 러시아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소설 '벚꽃동산'을 한국을 배경으로 각색했다. 십여 년 전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송도영(전도연)이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2024년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며, 모든 배우들에게는 원작의 캐릭터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이름이 부여됐다.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한국 배우들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작품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극계 고전 명작인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이 한국에서 어떻게 탈바꿈할지가 관건이다.
이현정 총괄 프로듀서는 “큰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 중요한 건 좋은 연출가를 만나는 것이었다.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한국 문화와 배우들에 대한 이해, 애정이 높고 열린 사고를 가진 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사이먼 스톤을 추천 받았고, 언젠가 한국 배우와 일하는게 꿈이라고 하더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높은 분이라면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예전에 만든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검토한 바 있어서 연출력에 확신도 있어서 결심했다”며 “사이먼 스톤이 고전을 우리 시대에 맞게 각색하는 걸로 유명해서 어떤 작품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올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벚꽃동산’을 한국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4월에 연습을 시작했지만 그 전부터 리서치하는 단계가 있었고, 캐스팅 완료 후 먼저 들어와서 배우들과 어떤 인물을 무대에 세울지 논의했다”고 밝혔다.
사이먼 스톤은 “체호프는 최고의 작가라고 할 수는 없어도 연극의 문법을 바꿔놓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벚꽃동산'은 의미를 전달하는 좋은 사회를 찾기 어려운데,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급변하는 사회를 보여주는데 한국이 적합하다 생각했다. 멜랑꼴리한 정서, 희망과 절망을 보여주는데 한국이 적합하다 생각했다”고 ‘벚꽃동산’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전도연은 “사회 변화, 사회가 기억되는 것들은 어떤 건물이 없어지고 새로운 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개혁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 한국적인 정서로 바꿨다고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한국적이라기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 안에서 배우들이 한국적 정서를 가지고 들어가서 그렇게 보이겠지만 한국인들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체된 인간들에 대해서, 변화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전도연은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송도영 역을 맡았다. '벚꽃동산'을 통해 1997년 출연한 '리타 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연극에 도전해 기대를 모은다. 전도연은 “늘 연극이라는 것에 갈망이 있었지만 두려움이 컸다. 영화, 드라마에서는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연극에서는 온전하게 다 보여줘야 하기에 자신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사이먼 스톤이라는 연출가가 매력있었고, 작품들을 보면서 매료되고 궁금증을 갖게 됐다. 그래서 선택을 하게 됐다”며 “감독님의 작품을 인상 깊게 봤었지만 온전히 나를 드러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비겁하지 않게 잘 거절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스크린으로 연극을 다시 한번 보고 배우로서 피가 끓었다. 그래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만큼 설렘도 크고 긴장감도 크다. 전도연은 “어떤 평가를 받을지 너무 궁금하다”며 “어떤 평가를 바라고 생각했다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을 거다. 실수도 하겠지만 두려웠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이를 통해 성장할 거고,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고 작품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수해도 예쁘게 봐주시길 바란다”고 웃었다.
또한 전도연은 27년 전 섰던 연극 무대도 떠올렸다. 그는 “너무 가물가물하다”며 “영화, 연극, 방송 등 경계를 생각하지 못하고 무모했다. 다양한 일을 했어야 하는데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그때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무대에서 어떤 걸 느꼈는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번 작품도 두려움이 크지만 팀이 어떤 결과물을 낼지 기대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과 '수리남'으로 세계 팬들을 사로잡은 박해수는 성공한 부동산 개발업자 황두식을 연기한다. 지난해 연극 '파우스트'에 이어 다시 한번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박해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배울 수 있는 작품들을 선택한다. 이번 역할은 남자 배우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후회하지 않고 싶었다. 훌륭한 배우들과 작업을 하는데 전도연 선배님과 한번도 작품을 해보지 못했기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박해수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학교 자유 연기 때 참 많이 한 대본이다. 이 대본을 연습하고 당시에는 ‘벚꽃동산’ 내용도 잘 들어오지 않았고 잘 몰랐다. 내게는 큰 로망이 있었다. 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그려지지가 않아서 좋은 연출가, 무대, 배우들과 함께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출연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우 최희서, 이지혜, 남윤호, 유병훈, 박유림, 이세준, 이주원 등이 '벚꽃동산'에서 활약한다. 연출자 사이먼 스톤은 “한국 배우들은 전세계 배우들과 다르게 독특한 위상이 있다. 한국 배우들은 비극적인 상황에 젖어있다가도 희극적인 상황도 잘 해낸다.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배우들이다. 내가 세계 최고 행운아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사이먼 스톤은 “센터장에게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여자 주인공 역할은 매력적으로 보이기 어렵다. 어떤 걸 하더라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전도연은 악역, 선역을 가리지 않고 매력적이다. 그래서 적합하다 생각했다. 인간적인 면모로 관객들과 커넥션이 있어야 하는데 가장 적합한 배우가 전도연이다”라며 “박해수는 제일 좋아하는 배우다. 강렬하지만 연약함도 있다. 이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 초반에는 자신감도 없고 초조하지만 작품 말미에는 강렬함을 보이는데 그걸 잘 해낼 수 있는게 박해수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30회 공연을 10명의 배우들이 원캐스트로 진행돼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 손상규는 “원캐스트는 좋다. 작업하면서 이 배우들과 해서 너무 좋다, 즐겁다고 느낄 정도로 앙상블이 좋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박해수는 “되게 특수한 상황이다. 원캐스트가 아니면 안됐다. 캐릭터를 우리가 만들어냈다. 비유하자면 오케스트라인데 모두가 완전히 다른 악기인데 원캐스트가 아니면 안되는 상황이 주어졌다. 그 하모니가 너무 아름다워서 매일 같이 술을 먹고 있다”고 웃었다. 전도연은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사이먼 스톤이 ‘처음부터 끝까지 매일 다른 공연이었으면 한다’고 하더라. 보시는 분들은 연극 시작부터 끝까지 다른 배우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고 말했다. 사이먼 스톤은 “영화와 연극의 차이는 영화는 매일 똑같은 영상을 보지만 연극은 그날만 이뤄질 수 있는 유일한 공연이다. 같은 공연일지라도 내일은 또 다르다. 오늘 나만을 위한 특별 공연이라는 점에서 n차 관람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대 디자이너로 참여한 사울킴은 “사이먼 스톤이 제 작품 중에 좋아한 부분이 건축물이 무의 공간에서 존재하는 거다. 건축과 지면이 어떻게 만나느냐, 완전히 분리됐는냐 자연스럽게 연결되냐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경계선을 없애고 모호하 흐르믈 만들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이현정 센터장은 “이번 프로젝트하면서 즐거웠던 건 사이먼 스톤이 아니면 함께할 수 없는 조합이라 느낀다.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나고 있다. 너무 행운이다. 창작진들이 하나가 되어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조화, 캐릭터도 아름답고 훌륭하다. 이 모든 것들을 현장에서 꼭 보시고 많은 격려와 기대를 해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벚꽃동산'은 오는 6월 4일부터 7월 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