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정려원-위하준, ‘행간읽기’ 종료...사제 허물도 ‘탈피’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4.05.27 09: 42

[OSEN=김재동 객원기자] “난 선생님이 필요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지금 얘기하세요. 한번 더 필사적으로 참아볼게요.”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마침표를 찍게 될까봐, 관계를 박살내 버릴까봐 주저하고 우려했던 순간은 이미 와버렸다. 그렇다고 어떻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감정의 통제선은 산산이 허물어져 버렸는데. “계획을 묻는 게 아니라면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정해진 답을 말 할 밖에.
tvN 토일드라마 ‘졸업’의 서혜진(정려원 분)과 이준호(위하준 분)가 사제의 허물을 벗어던졌다.

돌이켜보면 서혜진 스스로는 예감했던 모양이다. 대기업 잘 다니던 이준호가 강사 시험에 응시했을 때 기를 쓰고 말렸던 것도 그 때문였을 것이다. 물론 당시로야 녹록치 않은 강사 현실을 핑계 삼았지만 저만치 마음 한 구석엔 핸드폰에 ‘나의 자랑’이라 저장해놓은 제자와의 관계가 끝장날 수도 있으리란 우려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 이준호는 결국 동료강사 이준호가 됐고 서혜진의 무채색 학원 생활은 색을 입기 시작했다. 별 탈 없고 무난했던 10년 세월이 한순간 지루하게 느껴질만큼 다이내믹한 사건의 연속이 활력을 안겼다. 퇴근 후 스탠드 조명 아래 강의계획이나 점검하던 생활 역시 소파를 뒹굴며 이준호와 톡대화를 즐기는 시간이 추가됐다.
인생은 위험관리라지만 대치동 강사 경력 십 수 년에 제 감정 정도는 통제할 수 있으리란 자기 확신이 있었고 제법 어른스러워진 준호 역시 그럴 수 있는 듯 했다.
패기만만의 이준호가 ‘백발마녀’ 최형선(서정연 분)의 아성인 희원고를 공략하자 했을 때는 가슴도 설렜다. 절차탁마의 시간을 거쳐 진행한 맛보기 무료강의가 이시우(차강윤 분) 한 명 수강으로 끝났을 때 서혜진은 묘한 경험을 했다. 결과는 처절한 실패로 끝났지만 학생 머릿수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초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20대 초입 이준호를 가르치던 시절의 순수한 열정을 되새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강의의 실패를 빌미 삼아 좀생이 원장 김현탁(김종태 분)은 서혜진의 강의를 줄여버린다. 광고도 내려버린다. 1타강사 서혜진의 자존심을 밟아버린다. 그리고 그 타임에 최형선은 특급대우를 약속하며 스카우트 제의를 건넨다.
이준호로선 불안하다. 서혜진의 이적을 말린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서혜진에게 ‘이준호 선생님’으로 불리면서 으쓱만 할 줄 알았지, 여전히 자신은 서혜진 치맛단이나 붙잡고 늘어지는 이기적인 제자 탈을 벗지 못했음을. 그래서 이적을 권한다. “난 오래 전에 졸업했어요. 우린 이제 그냥 동룐데 내가 여기서 선생님 못가게 붙잡고 있는 거 그거 아주 못돼먹은 거잖아요.”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됐다. 제자는 동료가 됐다. 드라마 제목이 ‘졸업’인 이유도 밝혀졌다.
그 마음 흔들릴까 서먹하게 대하는 이준호에게 서혜진은 말한다. “니 성적이 떨어져도, 니가 데리고 온 친구들이 학원을 그만둬도, 너는 정말, 너로 귀했어.” 거짓은 아녔다. 특별히 예뻤던 제자였으니까. 학생 머릿수에 목매는 학원강사답진 않지만 선생으로서 충분히 그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제자가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나는 훨씬 더 필사적으로 참고 있어요. 내가 원하는 걸 다 쏟아내면 선생님이 나한테 질릴까봐. 그러니까 갈 수 있을 때 그냥 가세요.”했을 때 알았다. “너는 정말, 너로 귀했어.” 입술을 비집고 나온 그 말엔 선생 서혜진의 심정뿐 아니라 여자 서혜진의 심정도 담겨있었단 사실을. 그리고 어른이 되고 동료가 된 옛 제자는 그 행간을 읽고 이제 남자가 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아울러 제 속의 또 다른 서혜진도 이제 그만 선생노릇 졸업하고 싶어한다는 것까지.
미운 맘은 속일 수 있어도 정든 맘은 속일 수 없다고 했다. 코끝 간질이는 재채기를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서혜진에게 제대로 사과하겠다는 김현탁을 말리다 함께 개울에 빠지는 소동 끝에 몸을 말리던 이준호는 온열기 흐린 불빛 속에서 주춤주춤 키스를 건네고 서혜진 역시 엉거주춤 그 키스를 받아들인다.
“알고 있었죠? 선생님 진짜 마음요. 그리구 내 마음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치 못챘을 리 없어요. 이준호 첫사랑이 서혜진인거. 그리고 첫사랑 같은 걸로 대충 묻어둘 수 없게 됐어요. 점점 더 좋아져서 비집고 나온다구요. 내 마음이.”라는 이준호의 진정이 와 닿았을 때 “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 싫어. 시험문제도, 인생도, 관계도.” 했던 서혜진의 자취는 흐릿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은 이미 김현탁의 입을 빌어 예고됐다. 옛날 학원자리 있던 상가 식당으로 서혜진을 불러낸 김현탁은 말한다. “(강의실 확장을 위해 찾아왔지만)영 께름해서 계약은 안했어. 강사 두 명이 정분이 났다는데 그 일로 학원을 아주 안좋게 접은 모양이야. 선생들끼리 험담에, 질투에, 학생들 사이에선 소문이 지저분하게 나고..”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 두 사람이다. 이들의 각오가 김현탁이 예고한 세상의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해진다. 졸업 후의 세상은 좀 더 가혹하기 십상이니.
/zaitung@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