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던 대회를 다시 밟았다. 그리고 골까지 터트렸다. 크리스티안 에릭센(3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뜻깊은 득점포를 가동했다.
덴마크는 17일(한국시간) 독일 슈투트가르트 아레나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24 C조 1차전에서 슬로베니아와 1-1로 비겼다.
에릭센이 선발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그에겐 정말 특별한 경기였다. 유로는 그에게 큰 아픔을 남겨줄 뻔했던 대회이기 때문.
에릭센은 지난 2021년에도 덴마크 유니폼을 입고 유로 2020에 참가했다. 그러나 핀란드전을 치르던 도중 급성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쓰러졌다. 전 세계 축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일이었다.
다행히 에릭센은 의식을 찾았고, 심장 제세동기(IDC)를 달고 피치로 돌아오며 큰 감동을 안겼다. 그는 브렌트포드와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으며 여전한 실력을 과시했고, 지난 시즌부터는 맨유에서 활약 중이다. 여전히 IDC를 심장 쪽에 꽂고 있긴 하나 경기장에서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꾸준히 활약한 에릭센은 덴마크 대표팀에도 복귀했고, 다시 유로 무대를 밟게 됐다. 슬로베니아전은 그가 쓰러진 지 정확히 1100일 만에 치른 경기였다. 이날 에릭센은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 모르텐 히울만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덴마크 중원을 책임졌다.
에릭센은 감격의 선제골까지 뽑아냈다. 전반 17분 요나스 빈이 스로인을 받아 뒷발로 공을 내줬고, 이를 에릭센이 쇄도하며 마무리했다. 생애 처음으로 유로에서 골망을 가른 에릭센은 덴마크 팬들을 향해 팔을 뻗고 달려가며 기쁨을 만끽했다. 덴마크가 후반 32분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결승골이 되진 못했지만, 충분히 기적 같은 이야기였다.
영국 'BBC'도 "에릭센은 꿈 같은 유로 복귀를 즐기면서 남다른 이야기를 썼다. 유로 2024에 출전하는 것조차 그에게는 성과다. 하지만 그는 심정지를 겪은 지 1100일 만에 덴마크의 대회 첫 골까지 넣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집중 조명했다.
골을 제외해도 엄청난 활약이었다. 이날 에릭센은 전반전 덴마크가 시도한 슈팅 8개 중 7개(슈팅 4회, 기회 창출 3회)에 직접 관여했다. 그는 90분 동안 키패스를 7번이나 기록했다. 종료 휘슬이 불리고 에릭센의 이름이 POTM(Player Of The Match)으로 발표되자 덴마크 응원석에선 엄청난 환호가 터져나왔다.
유로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에릭센. 그는 경기를 마친 뒤 "이번 유로 대회에서 내 이야기는 지난번과 많이 다르다. 유로에서 뛰는 건 항상 특별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에릭센은 "내가 유로에서 골을 넣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축구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 골로 팀을 도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라며 밝게 웃었다.
에릭센의 골을 본 덴마크 기자 애스커 보예도 "지금 그가 득점하는 걸 보는 일은 매우 특별하다. 에릭센이 그런 말을 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는 그냥 '좋은 골, 훌륭한 어시스트였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모든 덴마크 팬들에게는 정말 정말 특별한 일이다. 그는 아주 인기가 많다. 그 사실은 그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준다"라며 기뻐했다.
한편 덴마크는 이번 대회에서 유로 1992 이후 32년 만의 유럽 정상에 도전한다. 지난 유로 2020에서는 에릭센의 이탈을 딛고 4강까지 오르는 성과를 냈다. 다만 준결승에서 잉글랜드에 1-2로 패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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