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구장에서 롯데를 응원하고 승리를 보기 위해 모인 2만 여 관중의 하루를 통째로 날렸다. 프로 의식 부재와 자기 관리에 실패한 모습으로 모든 팬들을 실망시켰다. 천신만고 끝에, 역경을 거치면서 정상급 선수로 우뚝 서려는 듯 했지만, 1년 만에 추락했다. 추락이 얼마나 쉬운지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나균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나균안은 25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정규시즌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1⅔이닝 7피안타 6볼넷 8실점을 기록하고 강판됐다.
이날 나균안은 1회부터 두들겨 맞았다. 선두타자 서건창에게 볼넷을 내줬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상대로 139km 밋밋한 커터를 던지다 우월 투런포를 얻어 맞았다.
이후 김도영에게 우측 담장 상단을 직격하는 2루타를 맞았다. 그리고 최형우에게 우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순식간에 3실점을 했다. 상황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나성범에게 좌선상 2루타를 내주면서 무사 2,3루 위기가 계속됐다. 이우성에게도 3루 강습 타구를 맞으면서 아웃카운트를 얻지 못했다. 3루수 정훈의 글러브를 스치며 살짝 흘러가는 내야안타를 내주면서 추가 실점 했다. 4실점 째.
계속된 무사 1,3루에서는 최원준을 1루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하면서 간신히 첫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이후 한준수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우면서 2사 1,3루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닝은 끝나지 않았다. 박찬호에게 중전 적시타를 얻어 맞으며 5실점 째를 허용했다.
타자 일순했고 1번 서건창 타석이 다시 돌아왔다. 이닝은 끝나지 않았다. 서건창에게도 볼넷을 허용하면서 2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1회를 겨우 마무리 했다. 나균안은 1회에만 투구수 48개를 기록했다. 그리고 25분 동안 지속됐다. 2회를 넘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2회에도 선두타자 김도영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최형우 타석 때 2루 도루를 허용했지만 최형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나성범도 투수 땅볼로 유도해 2사 3루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2사 후 이우성 최원준에게 모두 볼넷을 내주며 2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결국 한준수 타석 때 폭투를 범해 추가 실점했다. 계속된 2사 2,3루에서는 한준수에게 2타점 2루타를 얻어 맞으면서 8실점 째를 기록했다. 이후 박찬호에게도 볼넷을 내준 나균안은 비로소 마운드를 내려올 수 있었다.
나균안은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썼던 선수였다. 2017년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로 지명을 받은 나균안. 당시 이름은 나종덕이었고 포지션도 투수가 아닌 포수였다. 강민호의 뒤를 이을 대형 포수 유망주 잠재력을 인정 받았다. 그러나 강민호라는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선배가 삼성으로 이적했고 포수로서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경험은 쌓았지만 성장이 더뎠다.
그러다 2020년 스프링캠프에서 왼손 유구골 골절 부상을 당했고 이후 구단의 권유로 투수로 포지션 전향을 하게 됐다. 나균안의 야구인생 제 2막이 펼쳐졌다.
나균안은 투수로 빠르게 적응했고 2021년 1군 마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뒤 마운드의 만능 키로 거듭났다. 2022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39경기 117⅔이닝 3승8패 2홀드 평균자책점 3.98의 성적을 거뒀다. 2023년에는 선발로 시즌을 시작해 23경기 130⅓이닝 6승8패 평균자책점 3.80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3~4월 5경기 33⅔이닝 4승 평균자책점 1.34의 성적으로 월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까지 발탁,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야구인생의 탄탄대로를 여는 듯 했다.이제 스텝업을 하고 확실한 레귤러 멤버로 자리 잡는 듯 했다. 그런데 나균안은 스프링캠프에서 사생활 논란이 불거졌다. 그럼에도 기회를 꾸준히 받았지만 기회에 보답하지 못했다. 결국 이날 8실점 굴욕으로 시즌 평균자책점은 9.05까지 치솟았다.
나균안이 마운드를 내려올 때 사직 1루측의 홈 팬들 중 일부는 나균안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나균안에게 지난 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는 듯 했다. 프로답지 못한 모습으로 마운드를 내려온 나균안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그래도 1만9110명의 팬들의 하루를 완전히 망치지 않았다. 나균안이 8실점으로 무너진 뒤 현도훈도 5회까지 꾸역꾸역 버텼지만 추가로 6실점을 헌납했다. 1-14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하지만 4회 고승민의 만루포 포함해 6득점 빅이닝으로 추격을 개시했고 5회 황성빈의 적시타 등으로 2점, 6회 정훈의 스리런 홈런으로 12-14까지 추격했다. 그리고 7회 고승민의 14-14 2타점 동점 적시타에 더해 이정훈의 역전 희생플라이로 15-14까지 만들었다. 만약 롯데가 승리를 거두면 KBO 역대 최다 점수차 역전승 대기록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8회초 2사 2루에서 홍종표에게 동점 적시타를 내주면서 15-15가 됐다.
10회말 1사 만루 기회까지 살리지 못하면서 경기는 15-15 동점으로 마무리 됐다. 역대 최다 득점 무승부 타이 기록을 세우며 끝내 웃지 못했다. 그래도 롯데는 13점이나 뒤지던 경기를 저력으로 따라잡으면서 영화 같은 엔딩을 연출할 뻔 했다.
나균안의 프로답지 못한 투구에 실망했던 팬들은 그래도 다른 선수들의 투혼과 저력에 박수를 보내며 야구장을 떠날 수 있게 됐다. 승패를 가리지 못하며 헛심을 쓴 경기라고 볼 수 있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경기 초반 참담했던 분위기를 반전 시킨 채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