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정서에 어긋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은 분명합니다". KBS가 돌아올 수 없는 시청자와의 루비콘 강을 건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약칭 방심위)는 2일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방송회관에서 전체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방심위는 지난달 15일 방송된 'KBS 중계석' 관련 '관계자 의견진술'을 의결했다. 위원들 전원 의견 일치로 결정된 일이었다.
제 79회 광복절이었던 지난달 15일, 자정이 넘자마자 KBS 1TV에서 방송된 'KBS 중계석'에서는 때 아닌 '기미가요'가 울려퍼졌다.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작품인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 장면을 송출하는 과정에서 극 중 '기미가요'가 편집 없이 전파를 탄 것이다.
'나비부인'은 19세기 일본에서 게이샤와 미국 해군 중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과거 일본을 배경으로 한 만큼 기모노 차림과 기미가요가 가미된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6월 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 동안 '2024 오페라 축제'의 일환으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됐다. 'KBS 중계석' 제작진은 마지막 공연을 촬영했고 이를 방송했다.
KBS는 "오페라 '나비부인'은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작품으로 일본에 주둔한 미국인 장교와 일본인 여자의 비극적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극 중 주인공 남녀의 결혼식 장면에서 미국국가와 일본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된다"라며 "당초 6월 29일에 공연이 녹화됐고 7월 말에 방송할 예정이었으나 올림픽 중계로 뒤로 밀리면서 광복절 새벽에 방송되게 됐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바뀐 일정을 고려하여 방송 내용에 문제는 없는지, 시의성은 적절한지 정확히 확인, 검토하지 못한 제작진의 불찰로 뜻깊은 광복절에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라며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방송 경위를 진상 조사해 합당한 책임을 묻는 등 제작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라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사과했다. 아울러 '나비부인' 2부 편성을 다른 방송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당시 KBS의 사과도, 이후에 이뤄진 대응에도 국민들의 분노는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다른 날도 아닌 광복절에, 게다가 공영방송사인 KBS에서 왜색이 짙은 공연을 편집없이 방송한 상황. 공교롭게도 이후 불거진 독도 조형물 철거,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일명 '중일마' 파문 등이 겹쳐져 본보기로 더욱 큰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결국 박민 KBS 사장이 지난달 28일 치러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KBS 결산보고서에 출석해 "이유야 어쨌든 광복절 아침에 기미가요가 연주되고 기모노 입은 여성이 등장하는 오페라를 편성한 것은 불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 이어진 일제 강점기 선조들의 국적을 묻는 질문에 "그 때는 나라가 뺏겼다", "깊이 생각을 안 해봤다"라며 말을 흐려 식민사관이라는 질타를 재차 자아냈다.
이 가운데 방심위의 관계자 의견진술이 결정된 상황. 무슨 의견이 나온들 떠나간 민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편집 한 번으로 막을 수 있던 일을 사장 사과로도 못 막게 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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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BS 제공, OSEN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