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약속 지키지 못해서…" 류현진도 코끝이 찡했다, 정우람의 끝내 이루지 못한 꿈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4.09.30 08: 38

“현진이가 왔으면 좋겠는데…”
지난 2월1일이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플레잉코치가 된 정우람(39)은 서산 잔류군에 남아 새 시즌을 준비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류현진(37)의 이름이 나왔다. 당시까지 FA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오퍼를 받고 있던 류현진은 거취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우람은 “현진이가 오면 우리 팀도 판이 바뀔 것이다. 현진이가 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현진이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주의 시간이 흘러 류현진은 진짜로 한화에 왔다. 8년 총액 170억원에 계약하면서 12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은퇴식에서 한화 정우람이 류현진과 포옹을 하고 있다. 2024.09.29 / soul1014@osen.co.kr

은퇴 경기에서 1회초 교체된 한화 정우람이 류현진과 포옹하며 미소 짓고 있다. 2024.09.29 / soul1014@osen.co.kr

류현진의 복귀는 한화의 팀 전력 면에서도 엄청난 플러스였지만 정우람 개인적으로도 기대한 것이 있었다. 4년 전 약속 때문이었다. 2019년 시즌이 끝난 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FA 계약을 맺은 류현진은 정우람에게 “형, 4년만 버티고 있어. 나랑 같이 하자”라고 말했다. 토론토와 계약이 끝나는대로 한화에 돌아갈 테니 같이 선수 생활하자는 의미. 당시에도 정우람은 35세로 나이가 꽤 있는 편이었다. 
두 선수는 이전에 같은 팀에서 함께한 인연이 없었다. 류현진이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 전 한화에서 뛸 때 정우람은 SK 선수였다. 하지만 정우람이 2015년 시즌을 마치고 한화로 FA 이적한 뒤 후배들과 비시즌마다 해외 개인 캠프를 갔고, 그때 만난 류현진과 가까워졌다. 
류현진은 4년 전 약속을 지켰지만 정우람이 어겼다. 올해 플레잉코치로 계약했지만 서산 잔류군 투수코치를 맡아 후배들을 지도하는데 집중했다. 틈틈이 개인 훈련했지만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지난 15일 현역 은퇴를 결정했고, 29일 은퇴 경기가 되어서야 대전에서 류현진과 만났다. 
4일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진행된 2018 조아제약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서 류현진(왼쪽)이 정우람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8.12.04 /soul1014@osen.co.kr
토론토 시절 류현진(왼쪽)이 MLB 직장 폐쇄 기간 한화 스프링캠프를 찾아 정우람과 러닝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2022.02.14 / dreamer@osen.co.kr
토론토 시절 류현진(오른쪽)이 MLB 직장 폐쇄로 한화 스프링캠프를 찾아 정우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2.02.03 /sunday@osen.co.kr
정우람은 이날 NC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05번째 경기를 데뷔 첫 선발투수로 나섰다. NC 1번 타자 최정원에게 4구째 직구를 맞아 우전 안타를 허용하면서 21년 프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관중들의 큰 박수와 환호 속에 마운드를 내려온 정우람은 덕아웃에서 반긴 류현진과 진한 포옹을 나누며 미소를 지었다. 
경기 후 열린 정우람 은퇴식에서 여러 선수들의 영상 편지가 전광판을 통해 나왔다. 그 중 류현진도 있었다. “우람이형. 꼭 형이랑 같이 하고 싶어 돌아왔는데 형이 약속을 어기고 말았네요. 같은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선수로서 대단했던 것 같아요.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고, 제2의 인생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정우람도 은퇴사에서 류현진을 언급했다. 한화 후배 선수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 진심 어린 메시지를 전한 정우람은 마지막으로 류현진의 이름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현진아. 대한민국 에이스이자 누구보다 한화를 사랑하는 너와 함께 뛰어보지 못해 너무 아쉽다. 4년 전 같이 꼭 뛰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훗날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한화 정우람이 은퇴식에서 그라운드로 나서고 있다. 2024.09.29 / soul1014@osen.co.kr
경기종료 후 진행된 은퇴식에서 정우람이 헹가래를 받고 있다. 2024.09.29 / soul1014@osen.co.kr
류현진도 코끝이 찡했는지 눈가가 촉촉해진 모습이었다. 정우람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더욱 더 준비하고, 동료들을 챙기는 너의 모습을 보니 역시 존경받을 선수라는 것을 느낀다. 오랫동안 이글스 팬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야구했으면 좋겠다. 올 시즌 멋있었고, 수고 많았다”라고 격려했다. 류현진도 정우람을 향해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 박수를 치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정우람은 은퇴식 내내 눈물을 계속 흘렸다. 며칠 전부터 은퇴사를 준비하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날 경기 전 은퇴 기자회견 때도 울컥하며 말을 쉽게 잇지 못한 정우람은 “2016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대전에 왔다. 9년 동안 한화팬분들을 많이 기쁘게 해드리지 못해서…많은 사랑만 받고 떠나는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9년간 가을야구를 한 번(2018년)밖에 가지 못한 것을 너무나도 아쉬워했다. 
비록 선수로서 인생은 끝났지만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한화에서 정식 코치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김경문 한화 감독도 이날 정우람에 대해 “1005경기, 많이 나왔다. 몸 관리를 얼마나 잘한 건가. 대단한 것이다”며 “이렇게 은퇴식을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얼마나 선수 생활을 열심히 잘해왔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 코치도 하고 있는데 좋은 후배들을 많이 길러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1회초 한화 선발투수 정우람이 교체하며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24.09.29 / soul1014@osen.co.kr
1회초 교체된 한화 정우람이 김경문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24.09.29 / soul1014@osen.co.kr
은퇴식에서 정우람이 한화 동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우람 왼편에 류현진이 있다. 2024.09.29 /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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