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 추신수와 동갑내기 타자가 4할 치며 ‘펄펄’…악마와 타락한(?) 슈퍼맨의 거래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4.10.02 10: 20

로빈슨 카노 0.431, 트레버 바우어 10승 0패…멕시칸리그 폭격
[OSEN=백종인 객원기자] 9회 초 1사 1루의 기회다. 원정팀 감독이 타임을 부른다. 대타 작전이다. 관중석이 잠시 술렁인다. 이내 뜨거운 박수가 쏟아진다. 17번이 타석에 등장한다.
이미 하루 전에 작별 인사를 나눴던 타자다. 한쪽 어깨가 아직 시원치 않다. 스윙도 불편해 보인다. 결국 헛스윙으로 물러난다. 눈시울을 붉히는 팬의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힌다. (1일 수원 구장, SSG-KT 5위 결정전)

시애틀 시절 이대호도 가깝게 지냈던 로빈슨 카노. OSEN DB

추추 트레인이 멈췄다. 올해 42세의 나이다. 메이저리그에서 16년, KBO에서 4년. 합해서 20년 간의 긴 여정을 끝냈다.
반면 동갑내기 타자 한 명은 여전하다. 아니, 펄펄 날고 있다. 태평양 건너에서 리그를 폭격 중이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전설 로빈슨 카노다. 양키스에서 시작해 매리너스에서 황금기를 보냈다. 올스타 8회,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도 2번씩 수상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2009년)도 있다. 추신수의 절친인 이대호와도 친분이 있다(시애틀 시절).
그는 올해 직장을 옮겼다. 새로운 곳에서 뛴다. 디아블로스라는 팀이다. 맞다. 멕시칸리그(LMBㆍLiga Mexicana de Béisbol)다. 거기서 루키답지 않게 엄청난 시즌을 보냈다.
타율은 생애 최초로 4할을 넘겼다. 정확하게는 0.431이다. 가볍게 보지 마시라. 단기전 기록이 아니다. 페넌트레이스 78게임에서 올린 성적이다. 구체적으로는 327타수 141안타를 쳤다. 홈런 14개가 포함됐다. 당연히 수위 타자다. 최고 타자에게 수여되는 ‘챔피언 배트(Champion Bat)’도 수상했다.
물론 그곳은 유명한 타고투저 리그다. 4할 이상은 혼자가 아니다. 또 한 명 있다. 작년까지 오클랜드 A’s에서 뛰던 내야수 비마엘 마친(31ㆍ할리스코 카우보이스)이다. 0.401의 타율을 마크했다. (OPS ‘1.000’이 넘는 타자가 20개 팀에서 9명. KBO는 10개 팀 3명.)
로빈슨 카노.   디아블로스 로호스 델 멕시코 구단 SNS
멕시칸리그(LMB)는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꽤 유서가 깊다. 1925년에 창설돼, 내년이면 벌써 100주년이다. KBO(10개)나 NPB(12개)보다 팀도 많다. 20개 구단이 남북으로 나뉘어 경쟁한다.
그중 42세 루키(카노)가 속한 팀은 디아블로스다. 수도 멕시코시티를 홈으로 쓰는 명문 구단이다. 풀네임은 디아블로스 로호스 델 멕시코다. 디아블로(Diablo)는 스페인어로 ‘악마’라는 뜻이다. 그래서 강렬한 빨간색 유니폼을 즐겨 입는다.
이곳 출신 중에 친숙한 이름이 많다. 호세 피렐라, 헨리 소사, 윌머 폰트, 윌리엄 쿠에바스, 세스 프랭코프, 펠릭스 호세 등이 거쳤거나, 현재도 여기서 뛰고 있다.
1940년에 창단됐다. 현재 구단주는 알프레도 아르프 엘루라는 기업인이다. 그는 쟁쟁한 가문 출신이다. 빌 게이츠나 제프 베이조스 보다 자산이 많다는 멕시코의 세계적인 부호 카를로스 슬림과 사촌간이다.
젊을 때는 선수로 뛰었다. 스스로 야구인이라고 자부한다. 1994년에 구단을 인수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전용 홈구장도 보유했다. 2012년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지분도 매입했다.
다만, 디아블로스의 최근 성적은 별로였다. 마지막 우승이 2014년이다. 그 후로 10년간은 시들하다. 그러다가 올해 폭발하며 17번째 정상에 올랐다. 통산 최다 우승팀의 체면을 지킨 것이다.
카노 외에도 결정적인 전력 보강이 있었다. 확실한 에이스의 영입이다. 바로 트레버 바우어(33)다.
그는 14번의 선발 등판에서 10승을 올렸다. 패전은 없다. 승률 100%를 자랑한다. 평균자책점(ERA)은 2.48이다. ‘타자들의 리그’에서는 찾기 힘든 숫자다. 특히 탈삼진 쪽이 눈부시다. 지난 6월에는 한 경기에서 19개의 삼진을 뽑기도 했다. 리그 신기록이었다(시즌 합계는 83.1이닝 동안 120K).
며칠 전이다. 마치 MLB의 사이영상 같은 게 있다. 투표로 뽑는 ‘올해의 투수’다. 수상자는 당연히 바우어로 결정됐다. 선거인단 94명이 그를 지지했다. 2위(9표), 3위(7표)를 압도하는 득표였다. (바우어는 2020년 NL 사이영상을 받았다.)
트레버 바우어. 디아블로스 로호스 델 멕시코 구단 SNS
악마(디아블로스)가 날개를 단 격이다.
그야말로 미친 듯한 승률이다. 정규시즌 90경기에서 71승 19패를 기록했다. 승률이 0.789에 이른다. 남부 리그 1위는 물론이다. 북부 리그까지 20개 팀을 합해도 견줄 팀이 없다. 2위는 까마득하다. 무려 18게임 차이다.
악마의 두 날개는 모두 떳떳지 못한 과거를 가졌다. 어쩌면 그래서 더 궁합이 맞는지 모르겠다.
바우어는 성폭력 논란을 겪었다. 이에 따라 MLB 사무국은 2년간(324게임) 출장을 금지했다. 다만 법적인 해석은 달랐다.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의 제기를 통해 MLB 징계도 194게임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카노는 금지 약물 복용이 문제였다. 두 번이나 적발됐다. 첫 번째가 2018년이다. 그 해 80경기를 정지당했다. 2년 후에(2020년) 또 걸렸다. 시즌 전체(162게임)를 날렸다. MLB 커리어는 사실상 여기서 끝났다. 이후 샌디에이고, 애리조나를 전전했지만 돌이키기 어려웠다. 결국 도미니카 출신 타자는 멕시코 국경을 넘어야 했다.
멕시칸리그는 연봉이 높지 않다. 팀당 로스터(30명)의 급여 합계가 월 47만 5000달러(약 6억 3000만 원)을 넘지 못한다. MLB 출신이라도 한 달에 받는 것은 1만 5000~2만 5000달러(약 2000만~3300만 원) 정도다.
물론, 카누나 바우어 같은 S급은 다르다.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항간에는 바우어가 100만 달러(약 13억 원)를 받는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얘기다.
아무튼. 디아블로스가 샐러리 캡을 초과한 것은 분명하다. 그로 인해 사치세를 내는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그야말로 악마와 타락한 슈퍼맨의 거래다.
트레버 바우어. 디아블로스 로호스 델 멕시코 구단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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