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불암 대리’ 류승룡 “연륜 따라갈 수 없어”(‘한국인의 밥상’)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24.10.16 09: 33

 14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전국을 누비며 밥 짓는 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그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며 사람들에게 ‘밥’의 의미, 한국인의 ‘음식문화’를 전해 온 최불암 선생. ‘한국인의 밥상’과 함께한 선생의 길도 ‘밥으로 하는 수행’과 다름없었다.
 
오는 17일 방송되는 KBS 1TV ‘밥으로 수행하다’ 편에는 ‘7번 방의 선물’, ‘극한직업’ 등에서 열연한 천만 배우 류승룡 씨가 14년 만에 첫 휴가를 떠난 최불암 선생을 대신해 스페셜 내레이터로 참여해 특별한 여정을 함께 한다.

배우 류승룡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밥상’을 즐겨보던 애시청자였단다. 우리 음식을 친근하게, 때론 역사와 배경을 통해 깊이 있게 설명하며 오랫동안 ‘한국인의 밥상’의 프리젠터로 헌신하신 선생께 존경을 표했다. “내레이션을 녹음하는 내내 역시 연륜을 따라갈 수 없다 싶었지만, 이번을 계기로 우리 음식과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밥이 삶을 지키는 기본 양식이라고 생각하는 수행자들의 이야기, 그들에게 밥을 짓는 일은 성스러운 노동이자 기도다. ‘밥으로 수행하다’ 편에서는 조선 최초의 승병장, 영규대사의 업적을 기리며 40여 년간 영규대사의 고향마을(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서 ‘다례제’를 준비해 온 어머니들과 일일 평균 5~60명, 주말 평균 200여 명을 위해 새벽 5시부터 공양간에서 사찰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원주스님(주방 담당 스님)과 보살들, 그리고 서울 도심 속에서 가난하고 배고픈 영혼들의 손을 잡아주며 수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120명. 수녀님들의 공동체, 아프고 병든 세상을 위해 항상 기도하지만, 세상엔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던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아주 특별한 밥상 이야기를 담는다.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에서 그러나 가장 뜨거운 불 앞에서 밥으로 수행하는 수도자들이 건네는 위로와 격려는 어떤 모습일까?
 
■ 나라를 지킨 승병장 영규대사, 그 마음을 기리는 수행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매년 9월 25일이면 1년 중 가장 분주해진다는 마을, 유평1리. 오늘 행사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킨 조선 최초의 승병장 영규대사를 기리는 다례제다. 영규대사는 청주성 전투에서 승전고를 울리는 쾌거를 이뤘으나 금산성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라를 지켰던 영웅의 마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 마을에서 제사를 모신 지 40여 년.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400~500명의 손님들 음식까지 준비하는 큰 행사에 20여 명 남짓한 유평리 부녀회가 지나온 세월은 수행의 길이었다.
 
전만 해도 말린 대구포를 통째로 사용하는 대구전부터 명태전, 육전 등 그 종류도 갖가지다. 그럼에도 꼭 빼놓지 않는 전이 바로 넓적전이다. 배불리 드시고 부족하면 가실 때 음식을 싸가시라고 큰 보자기처럼 부치는 게 넓적전. 제사상을 찾아오신 조상님들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담은 이 마을 전통이다. 조상님께 바치는 희생을 뜻하는 계적(鷄炙)부터 손수 빚은 웃기떡을 올린 웃기편떡, 그리고 각종 과일까지 제상 가득 가족과 이웃의 안녕을 기원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이 쌓인다. 영규대사 다례제를 준비하는 유평1리 마을 부녀회의 분주한 일상을 들여다본다.
 
■ 천년 고찰 마곡사 공양간 속 수행의 길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새벽 예불을 알리는 범종이 울리기도 전.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은 바로 공양간의 원주, 무용 스님과 세 명의 보살들이다. 태화산 자락의 천년고찰 마곡사는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사시사철 풍광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그러다 보니 사찰 밥상을 책임지는 공양간은 쉴 틈이 없다. 마곡사의 원주, 무용 스님은 출가하기 전 병원, 연수원 등에서 영양사로 일했던 재원.
 
저장이 가능하지 않고 지금 이 시기에만 먹을 수 있는 고구마 줄기는 ‘욕심내지 말라’는 부처님의 무욕을 텃밭에서 가르친다. 진득한 진액이 나오는 고구마 줄기를 다듬다 보면 손톱 밑이 새까매지지만, 김치로 담글 때부터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가 즐거운 이 가을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 함께 따온 깻송이는 찹쌀 풀을 발라 말려 두었다가 필요할 때 튀겨서 먹는 부각으로 만든다. 사찰에서만 맛보는 은은한 향의 고수만두부터 나무에 하얗게 눈이 내린 듯한 깨보숭이부각,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맛의 가지전과 가지탕수까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매 끼니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밥상을 차리는 마곡사 공양간의 가을 이야기를 만나본다.
 
■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은 위로의 한 끼 –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밤에도 쉬지 않는 도심의 야경, 복잡한 도시의 일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성바오로딸수도회. 새벽 5시 30분, 수도원의 아침은 120명 수녀님들의 기도와 새벽 미사로 시작된다. 보통 2인 1조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일주일 치 먹을 빵을 만드는 날이면 새벽 4시부터 주방은 분주하다. 빵이든 소스든, 제품으로 나온 것은 피하고 직접 만들어 먹는 수녀원의 일상. 도시에 살면서도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을 택하려 한단다. 새벽 4시부터 수녀님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빵, 치아바타를 만드는 소피아 수녀님과 마리아 수녀님. 누룽지처럼 구수한 맛의 치아바타에는 자신에겐 엄격하나 당신이 품어야 할 사람과 세상에는 더없이 따뜻하라는 수녀님들의 기도가 담겼다.
 
‘세상과 호흡하고 소통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라’는 말씀 그대로 우리나라에선 1962년에 개원한 성바오로딸수도회는 출판, 시청각 교재, 음반 등 미디어 사도직을 통해 인류가 가야 할 참 진리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수도원에서만 60년, 할머니 알로이시아 수녀님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는 엄마가 아이들이 꼴깍꼴깍 잘 넘길 수 있게 만들어 마음의 양식과 같다.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아들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을 담은 송아지 스튜와 형제의 우애를 담은 렌틸콩죽, 그리고 수녀원에서 개발한 디저트인 무화과정과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가며 세상을 향해 유쾌한 웃음도 잃지 않는 ‘성바오로딸수도회’의 24시, 수녀님들이 세상을 향해 전하는 위로와 기도를 들어본다. /kangsj@osen.co.kr
[사진] 소속사,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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