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가장 확실한 전력 보강 방법은 FA 선수 영입이다. 단기 성적에 목적을 두고 이뤄지는 것이 FA 영입이다. 한화가 지난 8일 FA 투수 엄상백(28)을 4년 최대 78억원(계약금 34억원, 연봉 총액 32억5000만원, 옵션 11억5000만원)에 영입한 것도 내년 성적에 초점을 맞춘 결정이다.
올해 8위에 그치며 6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한 한화는 선발 로테이션이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았다. 에이스 류현진만이 규정이닝을 소화했을 뿐, 나머지 투수들이 계속 들락날락했다. 외국인 투수 두 자리가 모두 바뀌었고, 문동주, 김민우, 황준서도 풀시즌을 돌지 못했다.
시즌 초반 강력한 구위를 뽐내던 김민우는 4월에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됐고, 그 자리를 채우던 신인 황준서도 체력 저하로 후반기에는 로테이션에서 빠졌다. 지난해 후반기 선발로 활약한 전천후 이태양도 7월에 팔꿈치 뼛조각 수술로 시즌이 일찍 끝났다. 시즌 초반 견갑골이 좋지 않아 부진했던 문동주는 9월초 5강 싸움 중 어깨 피로 누적으로 이탈하며 시즌 아웃됐다.
대체 선발로 로테이션 두 자리를 채우기 급급하다 결국 5강 꿈이 좌절됐다. 가만히 있으면 내년에도 상황이 딱히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외국인 투수 두 명을 잘 뽑는다고 해도 38세가 되는 류현진의 나이를 감안하면 올해 같은 풀타임을 장담할 수 없다. 수술 후 재활 중인 김민우, 이태양도 내년 시즌 초중반에는 들어오기 어렵다. 파이어볼러 문동주는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고, 황준서는 풀타임 선발이 될 수 있는 몸부터 만들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선발투수 보강이 필요한 상황에서 FA 엄상백을 일찌감치 영입 대상으로 찍었다. 또 다른 선발 FA 최원태도 있었지만 한화는 엄상백만 노렸다. A등급인 최원태와 달리 B등급으로 보상 부담이 덜한 부분도 있었지만 현재 선발 구성상 이닝 소화력이 좋은 엄상백이 필요했다.
손혁 한화 단장은 “올해 류현진이 와서 선발진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문동주가 부침이 있었고, 김민우와 이태양이 갑자기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이런저런 변수가 많이 생기다 보니 기본적으로 선발진을 탄탄하게 만들어놓아야 우리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봤다”며 “현장 의견도 반영해서 엄상백을 데려왔다. 현재와 미래를 봤을 때 우리 팀에 가장 좋은 픽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FA 영입은 단기 전력 상승을 위한 목적이 크지만 한화가 엄상백에게 78억원 거액을 투자한 것은 미래 마운드도 염두에 둔 결정이다. 손혁 단장은 “내년 성적뿐만 아니라 미래도 봤다. 올해 황준서, 조동욱 등 신인들을 선발로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퓨처스에서 충분히 더 던지고 담금질을 해야 하는데 급하게 올려 쓰다 보니 육성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실제 한화는 올해 1~2라운드 신인 좌완 듀오 황준서와 조동욱이 각각 11경기, 9경기 선발로 나섰다. 둘 다 데뷔전 승리로 화려하게 시작하며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갈수록 프로의 벽을 실감했다. 특히 마른 체질인 황준서는 등판을 거듭할수록 체중과 구속이 동시에 떨어졌다.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투수이지만 피지컬이 완성되지 않아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 황준서는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 대신 서산에 남아 기초 체력을 단련하며 체계적으로 몸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화는 2025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1~2라운드 상위 순번으로 강속구 우완 정우주, 기교파 좌완 권민규를 차례로 뽑았다. 어느 팀보다 투수 유망주들이 많고, 퓨처스에서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도 갖췄다. 다만 1군 팀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여물지 않은 어린 투수들을 선발로 급하게 쓰다 보니 육성 스텝이 꼬인 면이 없지 않았다.
엄상백 영입으로 한화는 선발진 뎁스를 강화하며 각종 변수에 대처하고, 유망주들의 육성 시간을 벌 수 있게 됐다. 손혁 단장은 “최근 4~5년간 우리가 좋은 어린 투수들을 많이 뽑았다. (엄상백 영입으로) 이 선수들의 체계적인 성장과 군 문제 순환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고 기대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