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대표팀보다 분위기가 좋다고 자부했던 류중일호가 프리미어12 B조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충격패를 당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13일 대만 타이베이 타이베이돔에서 펼쳐진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예선 대만과의 1차전에서 3-6으로 패했다.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우승을 차지한 대표팀은 3회 대회를 맞아 대만(13일), 쿠바(14일), 일본(15일), 도미니카공화국(16일), 호주(18일)와 B조에 편성됐다. 대만전은 조 2위까지 향하는 슈퍼라운드(4강) 진출의 분수령으로 여겨졌지만, 선발 고영표의 충격 난조 속 도쿄행 전망이 어두워졌다.
대표팀은 운명의 1차전을 맞아 홍창기(좌익수)-송성문(2루수)-김도영(3루수)-윤동희(우익수)-박동원(포수)-문보경(3루수)-김휘집(지명타자)-이주형(중견수)-김주원(유격수) 순의 선발 라인업을 꾸렸다.
윤동희의 첫 4번 배치가 눈에 띄었다. 박동원, 문보경을 두고 4번타자를 고민해왔던 류중일 감독은 장고 끝 평가전에서 홈런 두 방을 때려낸 윤동희에게 4번 중책을 맡았다.
류 감독은 “윤동희의 지금 컨디션이 제일 좋다. 박동원도 생각했는데 1번, 2번이 나가면 3번, 4번, 5번에서 득점을 내야 한다”라며 “4번타자는 고정을 해야 한다. 박동원이 4번을 하면 중간에 포수가 바뀔 수도 있다. 고심 끝 윤동희로 4번을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만은 천천웨이(좌익수)-린리(우익수)-천제시엔(중견수)-린안커(지명타자)-주위센(1루수)-판제카이(3루수)-린자정(포수)-리카이웨이(2루수)-장쿤위(유격수) 순으로 맞섰다. 선발투수는 린위민.
대표팀은 2회초 선두타자 윤동희가 린위민의 어이없는 1루 송구 실책으로 출루했지만, 박동원이 2루수-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 문보경이 포수 땅볼에 그치며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리고 2회말 곧바로 악몽이 펼쳐졌다. 1사 후 판제카이 상대 내야안타를 맞은 게 화근이었다. 2루수 송성문이 타구를 힘겹게 잡아 1루에 송구했지만, 타자주자가 간발의 차이로 먼저 도착했다.
린자정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2사 1루를 만든 고영표는 리카이웨이를 우전안타, 장쿤위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연달아 내보내며 2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그리고 1번타자 천천웨이에게 뼈아픈 우월 선제 만루홈런을 헌납했다. 이는 이날 경기의 결승타였다.
고영표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다. 후속타자 린리 상대 초구에 우측으로 큼지막한 2루타를 맞은 뒤 천체시엔을 만나 또 다시 우월 2점홈런을 허용, 고개를 숙였다.
류중일 감독은 전날 1차전 선발투수로 고영표를 낙점하면서 “대만 타자 유형을 분석했을 때 밑으로 던지면 잘 못 칠 거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전력분석팀에서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라고 기대를 드러냈지만, 대만 타자들은 타선이 한 바퀴 돌자 마치 사인을 훔친 듯 고영표 공에 난타를 가했다.
3회까지 린위민에 노히트로 묶인 대표팀이 4회초 반격에 나섰다. 선두타자 홍창기가 풀카운트 끝 침착하게 볼넷을 골라낸 뒤 송성문이 1루수 땅볼로 1루주자 홍창기를 2루로 보냈다. 이어 김도영이 좌익수 키를 넘기는 1타점 2루타를 날리며 류중일호의 프리미어12 첫 타점을 책임졌다.
대표팀은 윤동희의 유격수 땅볼로 이어진 2사 3루에서 박동원의 1타점 중전 적시타가 터지며 1점을 더 추가했다.
대표팀은 2-6으로 끌려가던 7회초 1사 후 대타 나승엽의 솔로홈런으로 3-6 추격을 가했다. 나승엽은 대만 천관웨이의 초구를 지켜본 뒤 2구째를 제대로 받아쳐 우월 솔로홈런으로 연결했다.
나승엽의 타구는 비디오판독 끝 2루타에서 홈런으로 정정됐다. 리플레이 화면 상 타구가 타이베이돔 우측 상단을 맞고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심판진의 판정은 홈런이었다. 그러나 추격은 거기까지였다.
한국의 107억 원 자존심 고영표는 2이닝 5피안타(2피홈런) 2볼넷 2탈삼진 6실점 최악투로 패전투수가 됐다. 이어 최지민(2⅔이닝 무실점)-곽도규(⅓이닝 무실점)-김서현(1이닝 무실점)-유영찬(1이닝 무실점)-조병현(1이닝 무실점) 순으로 상대 추가점을 억제했지만, 6실점 충격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타선에서는 김도영이 1타점 2루타, 볼넷, 도루를 기록하며 분전했다. 나승엽의 대타 홈런도 패배에 빛이 바랬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류중일호를 괴롭혔던 대만 선발 린위민은 이번에도 4⅔이닝 2피안타 2사사구 3탈삼진 2실점으로 제 역할을 해냈다.
대표팀은 14일 대만 타이베이 티엔무야구장으로 장소를 옮겨 쿠바와 조별예선 두 번째 경기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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