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중일호의 타이베이돔 참사는 이변이 아니었다. 대만이 일본을 꺾고 프리미어12 첫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아시아 3위 추락이 확정된 한국야구. 이제 국제대회에서 더는 만만한 상대가 없다.
대만 야구대표팀은 지난 24일 일본 도쿄돔에서 펼쳐진 2024 WBSC 프리미어12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사상 첫 프리미어12 왕좌를 차지했다. 대만은 2015년 초대 대회 예선 탈락, 2019년 슈퍼라운드 5위의 아픔을 딛고 3회 대회에서 세계랭킹 1위 일본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아울러 일본의 국제대회 27연승 행진에 제동을 걸었다.
승부처는 0-0으로 맞선 5회초였다. 선두타자로 등장한 린자정이 일본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도고 쇼세이를 만나 우중월 선제 솔로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어 천천웨이가 우전안타, 린리가 볼넷으로 1사 1, 2루 밥상을 차린 가운데 대만 주장 천제시엔이 도고에 우월 스리런포를 때려내며 결승전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천제시엔은 한국과의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고영표에 쐐기 투런포를 쳤던 선수다. 이에 앞서 볼넷을 골라낸 천천웨이는 고영표 상대 생애 첫 만루홈런을 치며 결승타를 장식한 바 있다.
마운드 또한 한국 상대로 그랬듯 일본 강타선을 무실점 봉쇄했다. 한국전 선발이었던 린위민의 4이닝 1피안타 2볼넷 3탈삼진 무실점을 시작으로 장이가 3이닝 2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 ‘한국 킬러’ 천관위가 1이닝 2탈삼진 무실점, 린카이웨이가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릴레이 호투를 선보였다. 세계 1위 일본 타선은 한 수 아래로 여겨진 대만에 4안타-무득점 침묵하는 굴욕을 맛봤다.
대만은 그 동안 일본은 물론 한국에게도 ‘1승 제물’로 여겨진 팀이다. 한국의 대만전 역대 상대 전적은 26승 17패 압도적 우위이며, 대만프로야구의 경우 6팀에 평균 연봉이 KBO리그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영광의 시기를 보낼 때 대만은 변방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6년으로 범위를 좁히면 대만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한국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예선 1-2 패배를 시작으로 2019년 프리미어12에서 0-7,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예선에서 0-5 완패를 당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2-0)과 2023년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예선(6-1)은 한국의 승리였지만, 이번 프리미어12에서 다시 대만에 3-6으로 무릎을 꿇었다. 대만과 최근 6경기 상대 전적은 놀랍게도 2승 4패 열세다.
지난 9월 발표된 WBSC 세계랭킹에서도 한국은 대만에 밀려 있다. 일본이 세계랭킹 1위를 굳건히 유지한 가운데 대만이 멕시코와 함께 공동 2위로 올라섰고, 한국은 일본, 멕시코, 대만, 베네수엘라, 미국에 이어 6위에 머물렀다. 야구 변방 네덜란드, 푸에르토리코에 위협을 받는 처지가 됐다.
류중일 야구대표팀 감독은 대만의 성장 요인에 대해 “대만은 유망주들을 다 외국으로 보내버린다. 우리나라는 아니지 않나. 대만은 조금이라도 유망한 선수가 있으면 다 외국으로 보내고, 국제대회를 할 때 그들을 다 소집한다. 그런 부분에서 차이가 나지 않나 싶다. 투수가 정말 좋아보였다”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대만의 프리미어12 우승으로 한국야구의 국제대회 ‘1승 제물’ 또는 ‘만만한 상대’는 없다. 다음 국제대회인 2026년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부터는 대만 또한 철저한 전력 분석을 통해 임해야할 상대가 됐다. “대만이 사이드암에 약하다”라는 옛날 데이터에 의존한 분석을 통해 잠수함투수를 선발로 내보내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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