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의 묵직한 울림, 그래서 곽도원이 밉다 [Oh!쎈 리뷰]
OSEN 김나연 기자
발행 2024.11.27 17: 01

"국민을 위해 산화하신 대한민국 소방대원들에게 바칩니다."
복잡한 전개도, '빵'터지는 웃음 포인트나 자극적인 연출도, 소름돋는 복선이나 반전도 없다. '도파민'을 좇는 콘텐츠가 난무하는 요즘, 하나의 생명이라도 구하고자 온 몸을 던지는 소방관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가 연말 극장가를 뜻깊게 장식한다. 
영화 '소방관'(감독 곽경택, 제공/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제작에스크로드 픽쳐스·아센디오)은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화재 진압과 전원 구조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투입된 소방관들의 상황을 그린 이야기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주연배우인 곽도원의 음주운전 논란으로 개봉일이 밀렸던 '소방관'은 4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서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영화는 철웅(주원 분)이 서부소방서 신입 소방관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첫 현장에서 어리바리하기만하던 철웅은 소방대원들과 동고독락하며 그 속에 녹아들기 시작하지만, 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효종(오대환 분)이 화상을 입고 친한 형이었던 용태(김민재 분)마저도 구조대상자를 수색하던 중 목숨을 잃으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린다. 이후 무리하게 수색을 지시한 진섭(곽도원 분)을 원망하고 그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그 또한 용태를 잃은 슬픔에 빠져있으며 용태의 희생이 또 다른 생명을 구한 의미있는 행위였음을 깨닫고 자신 역시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으로 살아갈것을 다짐한다.
용태의 죽음은 철웅 뿐 아닌 구조대 전원에게 영향을 미쳤다. 효종은 임신 중인 동생과 결혼을 앞둔 기철(이준혁 분)에게 "집안에 구조대는 한명이면 된다"며 행정직으로 옮길것을 권유했고, 진섭의 아내 도순(장영남 분) 또한 서둘러 치킨집을 계약한 뒤 진섭의 퇴직을 종용한다. 마지못해 휴직을 약속한 진섭이 소방서에서 짐을 빼기 하루 전, 홍제동에서 화재 신고가 접수되고 때마침 오인 신고로 출동 상태였던 서부소방서 대원들은 곧장 화재 현장으로 향한다. 강풍으로 인해 불이 빠르게 번지고, 불법증축돼 부실한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들은 한명이라도 빠짐없이 구조하고자 불길속에 뛰어든다.
'소방관'은 실제 2001년 3월 4일 새벽 3시 47분 서울특별시 홍제동 다세대 주택에서 방화로 인해 발생한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설정은 모두 허구로 사건 내용에도 각색이 반영됐지만,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의 투철한 사명감만큼은 현실이었다. 이들은 제대로된 방화 기능을 못하는 방수복을 입고, 이미 1차 수색 당시 안에 더 이상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음에도 "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 하나 때문에 망설임없이 불길이 치솟는 건물 안으로 발을 들인다.
무전 너머에서 "빨리 나오라"는 인기(유재명 분)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기와 불길을 뚫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은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 몰입감을 자아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이미 알고 있음에도 등장인물들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연출을 맡은 곽경택 감독은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누군가 희생을 기리는 이야기이니 만큼 재주나 테크닉보다는 치열함과 진지함으로 승부하자고 생각하고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소방관'에는 화려한 연출, 감각적인 미장센은 나오지 않는다. 이들을 '영웅'처럼 추앙하고자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큐멘터리처럼 담백하고, 그렇기에 긴박한 현장 외 일상을 다룬 장면은 다소 재미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그런 단편적인 일상의 모습들이 현실감을 더하고, 나아가 '소방관'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부각시켜준다. 곳곳에 묻어나오는 당대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와 인식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그들의 희생을 다시금 기억하게 하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작위적인 신파 없이도 중간중간 '울컥'하고 올라오는 감정은 영화 말미 순직한 대원들을 향해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으며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더욱 곽도원의 이슈가 아쉽게 다가온다. 캐릭터 특성상 분량을 드러내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만큼 영화에는 곽도원이 편집없이 등장한다. 여기에 곽경택 감독은 꾸밈없는 진솔함으로 정면돌파를 택했다. 제작보고회에서 곽도원을 향해 "아주 밉고, 원망스럽다.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깊은 반성과 자숙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솔직한 책망을 쏟아냈듯 곽도원이 맡은 진섭의 서사를 조금더 신파적이게 다룰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곽도원을 배제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소방관'은 특정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방대원 한 명 한 명의 스토리가 있고, 곽도원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곽경택 감독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진정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같은 고민의 산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영화를 볼 관객들의 몫이다.
12월 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06분.
/delight_me@osen.co.kr
[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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