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체면을 구겼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6년 1억1300만 달러로 기대 이상 대박 계약을 안겼지만 정작 ‘빅4’로 묶인 주요 고객들이 헛물을 켰다.
보라스 특유의 버티기 전략을 펼쳤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되고, 시범경기가 열리던 2~3월에 ‘빅4’가 모두 백기를 들었다. 거포 중견수 코디 벨린저(시카고 컵스·3년 8000만 달러), 특급 3루수 맷 채프먼(샌프란시스코·3년 5400만 달러), 사이영상 투수 블레이크 스넬(샌프란시스코·2년 6200만 달러)은 옵트 아웃이 포함된 계약으로 사실상 FA 재수를 했고, 월드시리즈 우승 투수 조던 몽고메리(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1년 2500만 달러)는 보장 1년 계약에 그쳤다.
몽고메리는 FA 계약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스를 해고했다. 지난 8월말 ‘보스턴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선 보라스를 저격하기도 했다. 당시 몽고메리는 “보스턴 레드삭스와도 화상 회의를 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보라스가 일을 망쳤다는 것이다. 보스턴에서 오퍼가 왔었다면 계약을 고려했을 것이다. 협상이 잘 됐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보라스를 원망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스넬이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보라스를 두둔했다. 스넬은 “보라스는 내가 받은 제안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해줬다. 보라스가 비난받는 게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난 그렇게 믿는다”며 “선택권은 몽고메리에게 있다. 그가 다른 어떤 제안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정직한 사람인 보라스를 그렇게 생각하는 게 슬프다”고 말했다.
보라스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표한 스넬은 “우리는 좋은 계약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건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화만 내고 있을 순 없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경쟁을 하면 된다”며 현재 상황에 불평불만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3개월이 흘러 스넬은 대박 계약을 따냈다. ‘ESPN’을 비롯해 미국 언론들은 지난 27일(이하 한국시간) 다저스가 FA 좌완 투수 스넬과 5년 1억82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신체 검사만 남겨둔 상황. 계약금 5200만 달러로 추후 지급받는 디퍼만 약 6000만 달러에 이르는 계약이다.
구단 친화적인 조건이지만 1억8200만 달러는 메이저리그 좌완 투수로는 역대 3번째 큰 계약이다. 2015년 12월 보스턴 레드삭스와 7년 2억1700만 달러에 FA 계약한 데이비드 프라이스, 2014년 1월 다저스와 7년 2억1500만 달러에 연장 계약한 클레이튼 커쇼 다음이다.
지난겨울 계약이 늦어진 영향으로 스프링 트레이닝을 건너뛴 스넬은 4월과 6월에 각각 내전근, 사타구니 부상으로 두 번이나 이탈했다. 시즌 초반 부상과 부진으로 전체 성적은 20경기(104이닝) 5승3패 평균자책점 3.12 탈삼진 145개로 조금 아쉽지만 후반기에 노히터 게임 포함 12경기(68⅓이닝) 5승 무패 평균자책 1.45 탈삼진 103개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내년 연봉 3000만 달러가 보장된 상황이었지만 옵트 아웃을 행사하며 FA 시장에 나온 스넬은 지난겨울 바랐던 대형 계약으로 대박을 쳤다. 보라스의 자존심도 회복됐다. 스넬에 앞서 보라스의 또 다른 고객인 채프먼도 지난 9월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5100만 달러 연장 계약을 하면서 지난겨울의 아쉬움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반면 보라스를 해고한 몽고메리는 올해 25경기(21선발·117이닝) 8승7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6.23 탈삼진 83개로 커리어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시즌 막판에는 선발에서 불펜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결국 FA 재수도 실패했다. 2024년 선발 10경기 이상 등판시 발동하는 2025년 연봉 2250만 달러 옵션을 행사한 몽고메리는 내년에도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고 던진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