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2024 뉴트리디데이 일구상 시상식. 수상자로 참석한 롯데 자이언츠 손호영은 시상식이 열리기 전에 염경엽 LG 감독을 찾아 꾸벅 인사했다. 염경엽 감독은 “가끔 전화 연락도 온다”고 애틋한 관계를 언급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염경엽 감독의 결정으로 손호영은 올 시즌 초반 LG에서 롯데로 트레이드 됐고, 야구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지난 3월말 롯데는 내야수를 보강하기 위해 LG에 손호영의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LG는 유망주 투수 우강훈을 받는 조건으로 1대1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염경엽 감독은 “트레이드에 응한 이유는 손호영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구본혁이 제대하고 돌아와 손호영이 뛸 자리가 애매해졌다. 손호영을 위한 트레이드였다”고 언급했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출장 기회를 전폭적으로 받은 손호영은 단숨에 잠재력을 터뜨렸다. 트레이드되자마자 4월 한 달 동안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주전 3루수 자리를 차지했다.
LG에서 2경기 2타수 무안타였던 손호영은 롯데에서 100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1푼8리(396타수 126안타) 18홈런 78타점 70득점 출루율 .356, 장타율 .540, OPS .896을 기록하며 중심타선으로 활약했다. 4월 17일 잠실 LG전부터 6월 20일 수원 KT전까지 30경기 연속 안타 기록도 세웠다.
손호영은 2024 뉴트리디데이 일구상 시상식에서 ‘의지 노력상’을 받았다. 프로에 와서 처음으로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손호영은 “수상하러 올라갈 때 너무 떨렸다. 소감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웃으며 말했다.
2014년 고교 졸업 후 시카고 컵스와 계약하며 미국 무대에 도전했던 손호영은 마이너리그에서 뛰다가 유턴했다. 2020년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 23순위로 LG의 지명을 받아 KBO리그에 입성했다. 내야 백업으로 뛰면서 2020~2023시즌 4년 동안 94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5푼3리를 기록했다.
그런데 트레이드 이후 타격에서 재능이 터졌다. 올 시즌 활약에 대해 손호영은 “사실 특별한 준비를 한 건 없었다. 똑같이 준비하고 똑같이 했는데, 그냥 잘 할 때가 된 것 같다. 갑자기 공이 잘 보였다. 때가 됐던 거 아닐까. 특별하게 레슨장을 다닌 것도 아니고 갑자기 공이 잘 보이더라”고 말했다. 이어 “정신이 없었고, 체력이 많이 빠졌는지도 모르고 그냥 정신없이 시즌을 치렀다”고 돌아봤다.
시즌이 끝난 후 손호영은 한 달 동안 일본 도쿄에서 재활 훈련을 하고 왔다. 근육, 가동성 훈련과 재활에 특화된 센터에서 맞춤형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손호영은 “5일에 한 번씩 쉬면서 한 달 동안 4일 정도 쉬었다. 매일매일 운동하는 느낌이었고 많은 걸 배운 것 같다. 체력도 많이 늘고 유연성도 좀 좋아졌다. 벌써 몸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아 이걸 유지해서 캠프에 가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손호영은 시즌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2차례나 당했다. 생애 첫 올스타로 뽑혔는데, 부상으로 출전이 무산됐다. 햄스트링 부상 방지를 위한 훈련이기도 했다. 손호영은 “자연스럽게 강해지고 유연해질 수 있는 운동을 많이 했다. 지금은 통증도 없고 좋다”고 말했다.
손호영은 올 시즌 18홈런을 기록했다. 롯데 타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홈런이었다. 롯데는 팀 홈런 125개(8위)를 기록했는데, 20홈런을 넘긴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년 롯데 타자들의 홈런 숫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롯데는 최근 홈구장 사직구장의 외야 펜스 높이를 낮췄다.
성민규 전임 단장이 2022시즌을 앞두고 투수 친화적인 구장으로 만들기 위해 홈플레이트에서 펜스까지 거리를 늘리고, 펜스 높이도 높였다. 한가운데 펜스는 118m에서 120.5m, 좌우측 펜스까지 거리는 95m에서 95.8m로 멀어졌다. ‘성담장’으로 불렸다. 그런데 12월초 외야 담장 높이를 6m에서 이전처럼 4.8m로 되돌리는 작업을 했다.
손호영은 내년 시즌 펜스 높이가 낮아지는 것에 대해 “담장과 홈런 관련 질문을 요즘 많이 받고 있는데, 잘 모르겠다. 일단 가서 배팅을 쳐봐야 알 것 같다”라고 했다.
손호영은 올 시즌 ‘성담장’을 맞고 나와 홈런이 되지 못한 타구가 몇 개 있었다고 했다. 내년에는 20홈런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결과론이라 의미 없다”고 말하며 “20홈런에 도전은 해보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20홈런 보다는 수비를 더 강조했다. 손호영은 3루수로 80경기 640⅔이닝, 2루수로 20경기 110⅓이닝, 유격수로 6경기 39이닝을 소화했다. 실책은 13개였다.
내년 팀이 ‘가을야구’를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개인적인 목표를 묻자, 손호영은 뜸을 들이더니 “뭐라고 말하면 건방질 것 같아서 말하기가 좀 그렇다”고 수줍게 말했다. 이어 “갑자기 1년 했다고 건방 뜬다고 그럴까봐… 타격은 올해만큼만 하면 좋지 않을까. 수비 쪽에서 좀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송구나 이런 쪽에. 내 자신이 불안해서 그렇다. 마음 속에 불안감을 없애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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