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메이저리거를 꿈꾸던 일본인 투수가 도전을 멈췄다. 우와사와 나오유키(30)가 소프트뱅크 호크스 행을 확정 지었다.
소프트뱅크는 18일 우와사와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며, 등번호 10번을 달게 됐다고 밝혔다. 다수의 일본 매체는 양측이 4년 10억 엔(약 93억 원)의 조건에 조율을 끝냈다고 전했다. 이로써 그의 방황은 1년 만에 마무리된 셈이다.
지금 시점에서 새삼 주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미국행의 과정에서 생긴 포스팅 금액, 즉 이적료다. 원소속팀 니폰햄 화이터즈가 1선발을 내주고 얻은 대가는 고작 6250달러다. 한껏 상승 중인 현재 환율로도 900만 원에 못 미친다. 전례에 비춰보면 말도 안 되는 헐값이다.
1년 전 호기롭게 미국행을 선언했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도전하겠다는 의지였다. 12년간 몸 담은 곳과의 이별이지만, 팀은 반대할 명분이 없다. 다르빗슈도, 오타니도 보낸 곳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승낙하는 형태가 됐다.
그러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FA 시장에 일본산 매물이 넘칠 때다. 야마모토 요시노부, 이마나가 쇼타 같은 빅네임들에게 눈길이 쏠렸다. 뒤늦게 탬파베이 레이스와 연결됐다.
내용은 스플릿 계약이었다. 일단 마이너리그에서 출발한다. 사이닝 보너스 2만 5000달러, 연봉 22만 5000달러의 조건이었다. 단,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면 연봉은 250만 달러가 된다. 여기에 (ML) 이닝에 따른 인센티브가 100만 달러까지 추가된다는 내용이다.
이 상태라면 원소속팀(니폰햄)이 기대할 수 있는 이적료 혹은 양도금(포스팅 금액)은 최대 51만 달러(약 7억 3000만 원)다. 하지만 그건 결국 환상으로 끝났다. 탬파베이 생활은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3월 말에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 됐다. 이 상태에서 포스팅 시스템의 조건은 완료됐다.
양국 간의 협정에 따라 마이너리그 계약의 경우 이적료는 계약금의 25%로 규정됐다. 즉 니폰햄에게 돌아간 것은 2만 5000달러의 25%인 6250달러뿐인 셈이다. 통산 70승(62패) 투수를 내준 대가치고는 턱없는 액수다.
미국과 일본의 본격적인 선수 교류는 21세기 들어서 시작됐다. 2000년 시애틀로 이적한 이치로가 처음 포스팅 금액 1000만 달러를 넘겼다. 정확하게는 1312만 5000달러였다. 무려 188억 원 이 넘는 거액을 원소속팀에게 안긴 셈이다. (물론 선수가 받는 계약금과 연봉은 별도다.)
이후 특급 선수를 잡는 데는 거액의 이적료가 기본값이 됐다. 메이저리그 팀들이 ‘너무 비싸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구단보다는 선수에게 돌아가는 비중을 높이자’는 명분으로 협정은 개정을 거듭했다. 그래도 1000만 달러를 넘기는 사례는 수시로 생겼다. 이제까지 13차례나 된다.
심지어 5000만 달러 이상의 거래도 등장했다. 2006년 마쓰자카 다이스케(5111만 1111.11 달러), 2011년 다르빗슈 유(5170만 3411 달러)가 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야마모토(5062만 5000달러)가 세 번째 주인공이 됐다.
◇ NPB 주요 선수 포스팅 금액
① 다르빗슈 유 (2011년) 5170만 3411 달러
② 마쓰자카 다이스케 (2006년) 5111만 1111.11 달러
③ 이가와 케이 (2006년) 2600만 19.4 달러
④ 다나카 마사히로 (2013년) 2000만 달러
마에다 겐타 (2015년) 2000만 달러
오타니 쇼헤이 (2017년) 2000만 달러
◇ KBO 주요 선수 포스팅 금액
① 류현진 (2012년) 2573만 7737.33 달러
② 이정후 (2023년) 1881만 5000 달러
③ 박병호 (2015년) 1285만 달러
④ 김하성 (2020년) 552만 5000 달러
⑤ 강정호 (2014년) 500만 2015 달러
물론 선수 본인의 도전 정신과 이를 허락한 니폰햄 구단의 대승적인 결단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포스팅 금액 6250달러는 역대급으로 굴욕적이다. 이제까지 성사된 수십 건의 계약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아니, 엇비슷한 수준조차 없다.
때문에 일본 내에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마이너리그 계약은 포스팅으로 인정하면 안 된다’ ‘포스팅 1년 만에 돌아온 선수에게 FA 자격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국 방식을 배워야 한다’ 같은 주장이 나온다. (우와사와의 ML 등판 기록은 2경기 4이닝 ERA 2.25가 전부다.)
이제까지 NPB 출신 최저액은 2003년 오츠카 아키노리의 30만 달러였다. 대부분은 최소한 100만 달러를 넘겼다. 총 27건 중에 21건(78%)이다.
1만 달러도 못 받은 것은 우와사와의 케이스가 유일하다. 이는 당연히 한국에서도 수용되기 어려운 액수다. 실제로 2002년 진필중과 임창용의 경우가 그랬다. 각각 2만 5000달러, 65만 달러의 제시를 받았지만 두산과 삼성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딱 한 번 예외는 있다. 전설의 저니맨 최향남의 경우다. 39살 때였던 2009년이었다. 단돈 101달러에 훌훌 미국으로 떠났다. 그야말로 낭만이 가득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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