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KBO 총재는 2022년 3월 취임하면서 ‘4불(不)’을 천명했다. 10개 구단 현역 선수 전원에게 서면 취임사를 보내 “절대 해선 안 될 4불(음주운전, 승부조작, 성범죄, 약물복용)을 금지 사항으로 특별히 지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취임과 함께 허구연 총재가 떠안은 폭탄은 강정호였다. 당시 키움은 음주운전 3회 전력의 ‘빅리거’ 강정호와 최저 연봉 3000만원에 선수 계약을 발표하며 KBO에 임의탈퇴 해지 승인을 요청했다. 강정호에게 마지막 속죄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극소수의 의견이 있었지만 여론이 워낙 안 좋았고, 야구인 출신 허 총재도 일찌감치 불허를 결정했다. ‘총재는 리그 발전과 KBO의 권익 보호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선수와의 선수 계약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된 KBO 규약 제44조 4항에 의거해서 강정호의 복귀를 막았다. 강정호의 선수 커리어가 종지부 찍은 순간이었다.
당시 KBO는 ‘3차례에 걸쳐 음주운전을 해 처벌받은 점, 3번째 음주운전 당시 교통사고를 일으켰음에도 사고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하는 등 죄질이 나쁜 점, 스포츠 단체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토대로 하므로 윤리적, 도덕적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해야 한다는 점, KBO리그가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그 사회적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점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엄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 강정호와 히어로즈의 선수 계약을 승인할 경우 리그 발전을 저해한다고 판단해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KBO리그의 도덕성을 높이고, 음주운전에 대한 발본색원의 의지를 보여준 결정이었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 허 총재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22년 6월 음주운전 제재도 강화했다. 면허정지시 70경기 출장정지, 면허취소시 1년 실격처분, 2회 음주운전시 5년 실격처분, 3회 이상 음주운전시 영구 실격처분 제재를 부과하기로 했다.
음주운전을 뿌리뽑기 위한 허 총재의 행보는 그러나 철없는 선수들의 거듭된 일탈로 빛을 잃고 있다. 허 총재 부임 후에도 음주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2년 11월 NC 김기환, 한화 하주석, 지난해 11월 롯데 배영빈, 12월 두산 박유연, 올해 9월 LG 이상영, 12월 롯데 김도규, LG 김유민 등 7명의 현역 선수들이 술을 마신 채 운전하다 적발됐다.
김기환, 배영빈, 박유연이 방출되면서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유니폼을 벗었지만 음주운전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선수뿐만 아니라 심판과 코치도 걸렸다. 지난 5월 원현식 심판위원이 음주운전으로 1년 실격 처분 징계를 받았고, 7월에는 LG 최승준 타격보조코치가 경찰의 음주 측정 거부로 체포된 뒤 음주운전을 시인해 다음날 즉시 퇴단 처리됐다.
최근 7개월 사이 KBO리그 구성원 5명이 음주운전을 했다. LG 한 팀에서만 3명이나 반복해서 걸렸다. 구단은 사과문을 쓰며 재발 방지와 선수단 관리에 만전을 기한다고 말하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염불이 된다.
음주운전은 ‘잠재적 살인’에 비유될 만큼 사회적 인식이 무척 나쁘다. 법적 처벌과 징계를 받고 그라운드 돌아와도 선수 개인에겐 평생 그 꼬리표가 따라붙고, 구단 이미지도 크게 훼손하는 절대악 행위다. KBO와 구단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선수단 소양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런 형식적인 프로그램으론 음주운전을 근절할 수 없다는 게 계속 증명되고 있다.
야구단은 다른 종목에 비해 선수 규모가 워낙 크고, 그만큼 사건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핑계가 될 순 없다. 다 큰 성인 선수들을 구단이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 선수들의 의식 변화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BO가 처벌 수위를 높여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음주운전에 걸려도 자진 신고만 하면 방출당하지 않고 조금 자숙하다 돌아오면 된다는 게 일부 선수들의 참담한 인식이다. 누구라도 음주운전을 하면 즉각 퇴출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라는 초강수라도 꺼내야 할 판이다.
소속 코치, 선수들의 거듭된 음주운전에 충격을 받은 차명석 LG 단장은 “구단에 제게도 자체 징계를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구단이나 선수협회 차원에서 이런 식으로 연대 책임제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팀과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음주운전 방지에 조금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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