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환의 구미 콘서트가 강제 취소됐다. 대중문화예술계를 향한 정치권의 블랙리스트 악몽이 부활할 지경이다.
지난 23일, 구미시 측은 '이승환 35주년 콘서트 헤븐(HEAVEN)' 전국 투어 가운데 구미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구미 공연을 취소했다. 콘서트를 불과 이틀 앞둔 가운데 일방적인 취소 조치였다.
이와 관련 김장호 구미시장은 기자회견까지 열고 "시민과 관객들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승환 측에 안전 인력 배치 계획 제출과 정치적 선동 및 오해 등의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요청했으나, 반대의사를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정치적 선동 및 오해 등의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과도한 조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실제 이승환은 오랜 시간 정치적 성향을 가감없이 표현해온 가수 중 한 명이다. 그는 최근 전국을 불안하게 만든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대해서도 비판을 숨기지 않았고, 이로 인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노 개런티'로 집회 공연에 동참하며 지지를 표명해왔다. 반면 김장호 시장이 여당 소속으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의 캠프에도 경제산업특별보좌관으로도 활동했던 바. 이에 반대 성향인 이승환에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승환 역시 "대관 규정 및 사용 허가 내용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부당한 요구에 불응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 문제다. 안타깝고 비참하다. 우리 사회 수준을 다시 높힐 수 있도록 문제를 지적하고 바꾸겠다"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가요계도 참지 않았다. 24일 음악인선언준비모임이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이승환 콘서트 취소 사태와 관련 "노래를 막지 마라!"라며 긴급 성명문을 발표한 것이다. 음악인선언준비모임은 "예술가의 문화예술 활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기본권"이라며 구미시의 일방적인 이승환 콘서트 취소에 유감을 표명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시민의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예술가의 정치적 견해와 무관하게 예술 행위 자체는 보호받아야 할 기본권이다. 구미시의 이번 결정은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했다. 구미시의 이번 결정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부끄러운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며, 문화예술 검열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사례로 길이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음악인들의 빠른 성명이 나온 데에는 일거수 일투족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할 정도로 현재 정국이 혼란스러운 것과 더불어, 그만큼 연예계가 정치권의 행보에 흔들린 경험이 누적된 여파다.
한국의 연예계를 둘러싼 정치권의 압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음이 드러나 충격을 자아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건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정부가 예술인 지원 사업에서 특정 인사들을 배제하거나 불이익을 준 정황이 확인됐던 것이다.
이에 이승환의 구미시 공연 취소 또한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뮤지션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당혹스럽고 황당했던 비상계엄 선포마저 해제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언의 계엄이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2024년이 맞는지 의심케 하는 한국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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