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8, 여자는 4, 승계자는 60” ‘일류기업’ LG의 가부장적 상속관 [LG家 상속회복청구소송]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25.12.24 11: 06

 “기업을 승계할 장남에게는 60%, 아들에게는 각 8%, 딸에게는 각 4%의 경영자산이 돌아가게 한다.”
LG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씨 일가에서 불문율처럼 이어지고 있는 유산 분배 규칙이 재판정에서 공개됐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내세우고 있는 LG의 기치(旗幟)가 멋쩍을 정도로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이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왜 그렇게 많은 세계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는지 절로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23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재판장 구광현 부장판사)에서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연수 씨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회복청구소송’ 최종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었다. 증인으로 강유식 전 LG그룹 부회장(현 연암문화재단 이사장)이 출석했는데, 그의 입에서 LG그룹 구씨 가문의 ‘경영자산’ 분배 원칙이 흘러나왔다.

강유식 전 LG그룹 부회장(현 연암문화재단 이사장)이 23일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연수 씨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회복청구소송’ 최종 변론기일에 수행원과 함께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강유식 이사장은 법정에서 “명문화된 문구는 없지만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내려오던 가문의 자산 배분 가이드라인이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상식과는 다른 몇 가지 개념이 등장한다.
강 이사장은 “여기서 말하는 분배는 기업의 지분이 아니라 ‘경영자산’이며, 각자가 달성해야 할 목표치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테면 아들에게 매겨진 8%는 ‘8%의 지분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 ‘아들은 8%의 경영자산을 갖도록 노력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말에는 곧 장자가 아닌 차남들은 8%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 강 이사장이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목표치를 달성했기 때문에 구본무 회장이 자신의 지분 전부를 구광모 회장에게 돌아가게 했다”는 취지로 말했기 때문이다.
강 이사장은 법정에서 “경영자산의 배분 가이드라인은 상속지분과는 별개”라고 주장했지만 고 구본무 회장의 지분이 구광모 회장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이 가이드라인이 지분상속의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재판과정에서 등장한 ‘주주단’이라는 개념도 상식적이지 않다. 원고(세 모녀)측 변호인들은 ‘주주단’의 지분이 43.3%라고 주장했고 피고측 변호인들도 ‘주주단’의 존재는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지분비율은 원고측 추정치라고 언급했다. ‘주주단’의 구성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주로 구씨 일가들과 그 우호지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양측 모두 인식하고 있었다. 
강유식 이사장의 증언을 토대로 정리하면 ‘주주단’이 갖고 있는 지분은 곧 LG그룹의 ‘경영자산’이 되고 회장 승계자는 ‘주주단(경영자산)’의 60% 지분을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력’이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돼 있으며 그 안에는 딸 또는 장자가 아닌 아들들의 희생이 있더라도 회장 승계자의 60% 지분 확보가 최우선된다는 논리도 포함돼 있다.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의 지분 희생이 이 논리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가이드라인’을 통해 확인되고 있었다.
또한, 실체는 있으나 구성원은 안갯속인 ‘주주단’의 존재는 LG 오너일가의 ‘차명주식’ 의혹을 부르게 한다.
그 동안 LG 오너 일가의 주식이 친족 수십 명 명의로 흩어져 있다는 사실은 재계에서 여러 차례 언급됐었지만, 실제 구조가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이번 소송에서 제출된 다수의 녹취록과 증언은 이 오래된 의혹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른바 ‘명목상 분산 보유, 실질적 집단 소유’라는 LG 내부의 차명 구조가 이번 재판에서 ‘주주단’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됐다.
‘주주단’ 지분의 명의를 LG家 방계 구성원까지 동원해 분산해 놓고, 실질 지분과 의결권 및 내부 의사결정 권한은 ‘주주 그룹’으로 불리는 극히 제한된 집단이 행사해온 정황이 이른바 “60% 8% 4%” 가이드라인에서 방증된 셈이다. 이 같은 방식은 과거 재벌 2, 3세들이 실질 지분율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던 전형적인 차명재산 관리 방식과 구조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강유식 이사장이 언급한 구씨 가문의 가이드라인, 구씨 일가 주주단의 존재, 그리고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녹취록을 종합하면 구광모 회장의 실질 지분율을 유추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구광모 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된 이후 ㈜LG 지분 약 15%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녹취록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주주단 지분’의 60% 후반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발언이 나온다.
재판에서 언급된 대로 ‘주주단’의 지분이 ㈜LG 총 발행주식의 43.3%로 가정한다면, 주주단 지분의 60% 이상을 갖고 있는 구광모 회장은 ㈜LG의 28% 이상 지분율을 갖는 셈이다. 공식적인 지분인 15%와 13% 포인트 이상이 차이가 난다.
명의 분산 주식 상당 부분이 사실상 구광모 회장의 지분처럼 운영돼 왔다는 진술이 사실이라면, LG그룹의 지배구조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공식 공시와 크게 달라진다.
원고측은 ㈜LG 주식의 약 13%가 고(故) 구본무 회장 등 LG그룹 선대로부터 구광모 회장까지 내려온 차명주식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녹취록과 증언에 따르면, LG그룹 지주회사인 ㈜LG 주식은 겉으로 보기에는 구씨 일가 수십 명에게 분산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고(故) 구본무 회장에 이어 구광모 회장이 갖고 있는 게 된다. 일부 핵심 가족만이 ‘주주그룹’을 형성해 세대별로 지분 비율을 정해 실질 지배권을 행사하고 외부로 주식이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왔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를 차명재산으로 인정할 경우, 해당 주식은 모두 고(故) 구본무 회장의 실질 상속재산에 포함될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명확하다. 명목상 명의와 무관하게 실질적 소유가 피상속인이라면 상속재산에 포함된다. 즉, 고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한 차명주식은 ‘생전의 실질적 재산’으로 간주돼 상속재산이 된다.
따라서 이번 소송에서 차명주식 구조가 일부라도 인정되면 상속회복청구의 범위는 ‘고(故) 구본무 회장 명의주식’ 수준을 넘어 ‘고인이 실질적으로 지배한 모든 차명주식’까지 확장될 수 있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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