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해태 타이거스의 신화는 이제 한국 프로야구사의 전설이 됐다. 한국시리즈 통산 9차례 우승은 현존하는 어느 팀도 넘보기 힘든 불멸의, 영광의 대기록이다. 그 뒤안길에서 묵묵히 영욕의 나날들을 지켜본 인물이 있다. 전 해태 구단 주치의였던 임채준(67. 서남의대 교수) 한일병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앞으로 연재하게 될 이 글들은 1982년 말 김응룡 감독(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의 부임 이후 그와의 인연으로 해태 구단 주치의를 맡은 임채준 박사의 선수단 진료기록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오로지 야구가 좋아 그 현장에서 살았던 임 박사의 진료담과 전설로 남은 V9 전사들의 숨겨진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20년 세월(KIA 시절 포함 19년 7개월) 동안 한결같이 해태 주치의로 선수들과 애환을 함께한 임 박사의 진솔한 모습을 만나보자. (1)김종모의 반깁스 사건 ‘이건 반 깁스를 해야 하는데, 그래 돌팔이 한번 되자!! 프로야구가 예전 같지 않다. 열기가 넘치는 프로축구와 농구가 열리는 경기장과는 달리 프로야구장은 썰렁하기만 하다. 1980년대의 ‘영광’을 떠올릴 때마다 걱정이 앞서고 격세지감이 든다. 1980년대 전반기에 ‘우 종모 좌 효조’ 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타자로는 김종모요, 좌타자로는 장효조로 불리던 때의 얘기다. 어느 날 경기 중 당시 한참 잘 나가던 김종모가 왼쪽 팔목에 공을 얻어맞았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옮겨 X-선 사진을 찍어보니 왼쪽 척골 하단의 선상골절이었다. 반고정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치의이고 대한민국 보사부가 준 정형외과 전문의인 나는 고민,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전체 깁스를 해버렸다. 이유인 즉슨 이랬다. 당시 해태의 살림은 마뜩한 백업요원 없이 소수 정예부대로 운영해야할 만큼 빠듯했다. 김종모의 결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해태의 일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판인데, 가능한 빨리 팀에 복귀하게 하려면 팔목 전체를 깁스하는 것 이상 좋은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선 여러 사람들의 신통술(?)을 피하기 위한 모종의 방법이 동원돼야 한다는 생각이 떠 올랐다. 당시 프로야구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의술 한다는 ‘능력 넘치는’ 사람들이 늘 선수 주변을 맴돌아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게다가 반 깁스를 할 경우 치료 해준답시고 깁스를 풀어헤쳐 이리 비틀고 저리 만지고 난리를 칠 것이 뻔했다. 하루도 사우나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아는 선수들의 잘못된 목욕습관 때문에도 반 깁스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조처였다. 그래, 돌팔이가 한번 되자. 내 한 몸 돌팔이 의사로 욕을 먹을지언정 빨리 김종모를 회복시키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 더구나 안팎으로 돌아가는 사정은 다급하기 짝이 없으니, 낸들 어쩌겠는가. 그래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터여서 전체깁스를 하면서도 김종모에게, “깁스에는 촉수엄금! 너는 절대로 심장부위 이하로는 손을 내리면 안 돼. 그리고 24시간 어느 때고 손이 아프면 즉각 찾아와’라며 신신당부를 해놓았다. 그 후 며칠이 지났을까. 해태 주변으로부터 요상스런 소문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임 박사 정형외과 전문의 맞아?’ ‘돌팔이 아니야?’ ‘무슨 깁스를 저렇게 다 해 놓냐?’ 등등….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졸지에 돌팔이로 낙인찍히고 만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봐도 그 때의 치료에 대해 후회 한 점 없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늘 최선을 다했다는 내 자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나도 어찌 선수들의 입에 사탕을 넣어주지 못하겠는가. 선수들이 무리할 양이면 “야, 좀 쉬었다 해라. 이 상태로 계속하면 더 나빠질 수도 있어”라든가 “그렇게 아프니까 슬럼프가 오지. 좀 더 치료하고 게임에 나가거라” 따위의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할 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당시 해태의 사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출장 가능한 백업요원에도 여유가 없었고, 주전선수 한명이라도 다치면 그 구멍이 기차 터널 만하게 보이던 형편 속에서 해태 팀의 주치의를 하다 보니 인기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가장 큰 위안이 되어 준 것은 김응룡 감독의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 믿음이야말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었다. 어쨌든 의사로서 황금기라 할 수 있는 40~50대의 나이에 최강팀 해태 주치의로 봉사한 것은 내 일생일대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자리를 빌어 김 감독과 해태구단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나와 함께 밀고 당기면서 해태를 거쳐 간 선수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아울러 잔뜩 풀죽은 우리 프로야구가 1980년대 중반과 같은 영광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정리=OSEN 홍윤표 기자] 1987년 올스타전에서 MVP에 오른 김종모(제공 KB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