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9)한대화, 척추분리증을 이겨낸 자율훈련의 대명사
OSEN 기자
발행 2008.01.21 14: 33

(9)한대화, 척추분리증을 이겨낸 자율야구 모범생
1986년 동국대 은사인 김인식 해태 타이거즈 코치(현 한화 이글스 감독)의 설득으로 OB 베어스에서 트레이드 된 한대화는 해태에서 가장 화려한 선수 시절을 맞는다.
한대화가 척추전방분리증을 가진 ‘고장선수’였다는 것은 당시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다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람의 머리나 사지 등은 어머니 뱃속에서 수정체가 여러 분화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분화과정 초기에 척추는 앞 척추체부와 뒷 척추체부가 따로 형성되다가 차츰 앞뒤가 달라붙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가끔 하부 요추부에서 앞뒤가 융합되지 않고 섬유질로 연결되는 선천성질환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척추분리증이다.
이해 하기 쉽게 안면의 언챙이(토순)도 태아의 분화 과정에서 양쪽의 입술이 융합되지 않은 것과 같다. 척추분리증은 허리통증의 원인이 되며 심해지면 척추체부가 앞으로 빠져나와 척추전방전위증으로 발전, 고통 끝에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런 병을 갖고 있는 한대화가 강훈련을 견뎌내기란 어려웠던 게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런데도 해태에서 만개(滿開)할 수 있었던 까닭은 김응룡 감독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대화 같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는 절대로 운동장에 있는 시간이 길어서는 안 된다. 김 감독은 그런 점을 파악, 모든 훈련과정을 한대화 본인의 자율에 철저하게 맡겨뒀던 것이다. 특히 ‘프로는 어디까지나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김 감독의 지도방법은 한대화뿐만 아니라 해태의 모든 선수들에게도 적용돼 ‘자율야구’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 적도 있다.
한대화와 ‘자율야구’, 그리고 김 감독의 특유한 캐릭터가 버무려져 빚어낸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1986년 한국시리즈를 목전에 두고 막바지 훈련이 한창인 때 김 감독이 훈련 중인 선수들을 보니, 그 꼬락서니가 영 성에 차지 않는 것이었다. 어영부영, 대충 대충을 싫어하는 김 감독이 팔짱만 끼고 있었겠는가. 옆에 있는 의자를 엎어치기 한판으로 곤죽을 만들어버렸다. 싸늘, 초조, 긴장…. 선수들은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다.
고참 급에 속했던 한대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감독의 위세에 눌려 하루 종일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알아서 긴’ 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한대화가 ‘고래를 잡은’ 듯 엉거주춤한 폼으로 나를 찾아왔다.
“웬일이야?”
한대화는 ‘어제의 사건’을 쏟아놓았다.
“아니,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일 모레가 게임인데 네 몸을 네가 몰라서 다른 애들과 같이 뒹굴었단 말이냐”며 핀잔을 줬더니, 한대화는 “겁이 나서 도저히 혼자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한대화를 그렇게 몰아 부치면 어떻게 하느냐”고 김 감독에게 물었다. 김 감독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고참이고, 프로인 놈이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면 할 수 없지”라고 무뚝뚝하게 받았다.
그런 식의 ‘자율야구’가 위력을 발휘해 변변한 백업요원 없이도 주전만으로 페넌트레이스를 건너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간 것이다.
그 해 한국시리즈의 낙수거리. 한대화는 물론 이순철, 선동렬 등 주전들의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운동반 치료반으로 막바지 훈련을 마치고, 삼성과의 시리즈에 들어갔다. 홈구장인 광주에서 1승 1패.
적지인 대구로 이동해야 했다. 광주게임이 끝나는 날 저녁 김 감독과 맥주를 한잔하면서 ‘환자’들을 주치의에게 맡기라고 슬쩍 권해봤다. 흔쾌히 그러라는 것이었다.
하루를 더 쉬면서 치료를 하고 게임이 있는 날 한대화와 이순철, 선동렬을 내 자가용에 태우고 대구로 향했다. 88고속도로를 접어들어 속도를 내는데 문득 요상스런 생각이 들었다. 이 차에 탄 친구들이 하나같이 대스타가 아닌가. 한명도 아니고 셋을 합하면 연봉이 얼마야? 사고라도 나면? 하이고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생각 끝에 농담 반 진담 반 말을 걸어봤다.
“야, 천천히 갈란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지. 너희들 몸값 물어주자면 내 병원 팔아도 모자랄지 몰라.”
선동렬이 나섰다.
“그럼, 제가 운전할까요?”
“야, 임마. 운전면허증에 잉크도 안 마른 놈이 운전은 무슨.”
그렇게 유람삼아 운전을 하는데 고속도로 순찰차가 차를 세운다. 속도위반이란다.
“위반했습니까? 내딴엔 천천히 간다고 가는데. 애들이 오늘 저녁 게임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바빴나 봅니다.”
‘무서운’ 색안경이 차안을 휘-둘러본다.
“우리가 칸보이 할테니 따라 오십시오.”
‘사근사근한’ 색안경이었다. 영광스럽게 지리산휴게소까지 안내해 주고 돌아갔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숙소인 대구 수성관광호텔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김 감독이 ‘마중(?)’을 나왔다. 이게, 무슨 조화야. 천하의 코끼리 감독이 말이다. 워낙 대스타들이고보니 혹시나 발병이라도 날까봐 무던히 애를 태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1988년 미스터 올스타에 오른 한대화의 모습(제공=한국야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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