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31)벤치워머도 핑계는 있다
OSEN 기자
발행 2008.03.17 12: 13

(31)출장 못하는 선수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야구는 투수와 야수 8명, 모두 9명이 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다른 운동과는 달리 야구는 기록을 생명처럼 여긴다. 퍼펙트, 완봉, 완투, 안타, 득점, 홈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파울, 실책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록되고 먼 훗날까지 남는다. 이런 야구와 20여년 가까이 인연을 맺고 보니, 남다른 소회가 마음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평소 나는 운동선수의 선천성보다 후천성에 더 후한 점수를 주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타고난 체격이나 센스보다 열심히 연습하면 누구나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지론을 고수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지론은 선동렬 등 몇몇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보면서 이내 수정되고 말았다. 선동렬의 경우 흔히들 50년 아니 100년 만에 한번 탄생할까 말까한 선수라고 한다. 뛰어난 체격조건이나 지능, 사고방식 등을 지켜본 결과 ‘국보급 선수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구나’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됐다. 역시 뛰어난 선수생활을 거쳐 KIA 감독을 지낸 김성한이 한창 날리던 시절, 내게 해준 한마디도 내 지론을 수정하는데 한몫 했다. “벤치 워머들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말로는 야구도사예요. 그런데 막상 실전에는 약합니다.” 김성한의 입심에 가속도가 붙는다. “주전선수와 벤치워머들의 운동량은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주전 선수는 경기 전 훈련과 실전으로 경기 감각과 운동 능력 판단력 등이 벤치워머 들과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 김성한의 지적이었다. 1군에서 실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와 2군에 있는 선수들은 실제로 매일 경기를 하는 선수보다 더많은 훈련을 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많은 야구 선수들을 돌보면서 느낀 것은 잘 나가는 선수는 잘 나가는 이유가 분명히 있고, 그렇지 못한 선수는 옆에서 지켜보아도 문제점이 분명히 있다. 어느 세계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프로세계에서는 확실한 목표의식과 자기관리 능력이 있어야 하고 타고난 체격과 센스를 겸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선수는 타고난 체격과 센스를 가졌는데도 자기관리 부족으로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정말 열심히 하는데도 체격과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 벤취워머 노릇만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제딴에는 충분한 실력이 되는데 출전할 기회를 감독이 주지 않아 미치겠다(?)는 선수도 있다. 잠깐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어느 날 광주구장에서의 일이다. 누구라고 집어서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그 선수는 본부석 뒤 유리창을 통하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내가 지나 가면서 “야! XX 야, 너 요사이 통 게임 안 뛰네, 어디 아프냐?”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 친구 하는 말, “속 모르면 말을 하지 마십시요. 요사이 컨디션이 좋은데 감독님이 절 기용해주지 않네요.” “그래….” “미치겠습니다.” 며칠 후 김응룡 감독과 저녁을 하면서 넌지시 물었다. “투수 XX 말이야, 자기 말로는 요사이 컨디션이 최곤데 기회를 안 준다데….” “미친놈, 올려놓으면 4~5점씩 주는 놈이 무슨…. 저나 나나 한 게임 한 게임이 피를 말리는데 지가 잘할 능력 있는데 내가 왜 안 써?” “공 끝에 힘이 없어요. 정통파 투수가 공 끝에 힘이 떨어지면 타자들이 딱 치기 좋으니 장타를 많이 맞아요.”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제 실력과 컨디션은 모르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출전하지 못하는 걸로 생각 하고, 화가 나서 스스로 위로한답시고 술 한 잔, 술 한 잔하다가 수렁으로 빠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