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돌팔이다!-해태 주치의 회고록](32)한국시리즈 우승, 최루제의 맛
OSEN 기자
발행 2008.03.18 11: 07

(32)한국시리즈 우승, 그 최루제의 맛 산은 오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 산에 올라도 정상에 깃발을 꼽아보지 않은 사람은 또 그 희열을 모른다. 정상에 선다는 것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영광이다. 해태 타이거즈는 우리나라 프로야구 20년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한국시리즈를 9번이나 독차지한 ‘욕심꾸러기’다. 다른 팀들이 죽자 사자 매달려 기껏해야 1~2번 정도 영광을 맛본 것에 비하면 해태선수들은 ‘이골이 난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감각이 무뎌질 만큼’ 우승컵을 만져봤다는 얘기다. 우승 때마다 현장을 지켜본 나로서도 그 영광은 선수들 못지않다. 우승 첫해부터 V-9에 이르기까지 장면 장면이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1983년 첫 우승 때 당시 MBC 청룡과의 게임에서 이상윤의 역투, 김성한의 일인이역(투수와 3루수)은 향후 프로야구에서도 보기 드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1986년 페넌트레이스 1위 팀인 삼성과의 한국시리즈도 잔영이 많이 남는 대회다. 대구에서 두 게임을 독식, 광주로 돌아왔는데 당시 KBO 서종철 총재와의 회식장소에서 한 야구관계자가 엄살을 떨었다. “김응룡 감독, 한국시리즈를 광주에서 끝낼 거야?” “그래야지요.” “프로야구 인기가 모처럼 올라가고 있는데 잠실에 가서 게임 한번 해야지.” “게임은 전쟁입니다.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져주라고 할 수 있습니까?” 김 감독의 표정은 단호했다. 서종철 총재가 끼어들었다. “김 감독, 최선은 아름다워요. 정정당당히 경기를 하는 게 팬들에게 보답하는 길입니다. 나, 김 감독 좋아하는데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소. 김 감독 말마따나 평생 야전사령관으로 살아온 내가 어찌 부하들에게 패전을 얘기할 수 있겠소?” 우승의 맛은 그랬다. 물론 팬을 의식해서 게임수를 늘릴 수도 있겠지만, 정당한 우승이야말로 진정 팬을 위하고 확보하는 방법 아니겠는가. 우승의 기쁨은 구단이나 선수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이를 지켜본 팬들에게도 확대, 증폭된다. 해태가 첫 우승을 일궈냈을 때 잠실구장에서의 세리머니는, 한편으로는 ‘광란’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쯤 될 듯한 젊은이들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선수들을 안고 뒹굴던 모습에서 나는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함께 힘든 일상이라는 질곡에서부터의 무한한 해방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때의 해프닝. 광란 속에서 비호처럼 뛰쳐나온 한 젊은이가 김 감독의 모자를 휙-벗겨가지고 달아나는 게 아닌가. 졸지에 당해버린 김응룡 감독은 빈머리를 쓸어 올리며 그저 웃을 수밖에…. 다음에는 시상식. 장내 아나운스먼트에 이어 시상대에 올라야 하는데 머리가 허전하다. ‘야, 모자! 모자!’하면서 허둥허둥 덕아웃 쪽으로 뛰어가던 김 감독의 모습도 지금 곰삭은 추억으로 다가온다. 우승이 아니면 어찌 여유 있게 지켜볼 일이던가. 또 해태가 또 우승했던 어느 해의 잠실구장. 100m 달리기 출발이라도 하듯 선수들이 뛰쳐나간 덕아웃에는 코치들만 남아 있었다. “원장님! 정현발 코치 좀 보세요.” 김종모 코치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손가락질을 했다. “왜?” “정 코치 우승이 처음이래요. 울잖아요.” “야! 정 코치. 정말 우승이 처음이냐? 삼성에 있을 때 우승 못해봤냐?” “학교 다닐 때야 많이 했죠. 프로에서는 처음이거든요. 우승, 거 참 정말 좋은 거네요.” “맛이 어떤데?” “가슴에 뭣이 뭉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코가 시큰거리기도 하고, 이거 정말 죽이네요.” 그랬다. 우승의 참맛이라는 게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멀미였고, 눈과 코를 진하게 자극하는 최루제였다. 임채준(전 해태 타이거즈 주치의. 현 서남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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