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김성태의 강판으로 본 오더 속 불문율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1.08.23 12: 23

 
지난 8월 19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KIA전서는 전날 선발투수로 사전 예고된 바 있던 넥센의 김성태가 경기 시작 전 몸을 풀던 중, 갑작스레 어깨통증을 호소하며 마운드를 내려간 일이 있었다.
이날 말고도 김성태는 8월 5일 두산과의 홈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왔다가 두산의 톱타자 이종욱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한 뒤 곧바로 자진 강판을 요청, 마운드를 이보근에게 넘긴 전례가 있던 터.

그러나 규칙상 조기 강판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5일의 첫 번째 강판 때와는 달리 19일 재차 반복된 김성태의 두 번째 강판은 여러 측면으로 야구규정에 대한 복합적인 해석과 처리기준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고 하겠다.
먼저 하루 전, 선발투수로 예고 되었던 김성태의 교체가 가능할 수 있었던 근거부터 찾아보자.
선발투수의 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규칙 3.05>에 의하면, 선발투수는 상대 팀의 첫 타자 또는 그 대타가 아웃되거나 1루에 출루할 때까지 투구할 의무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투수가 부상 또는 질병으로 투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주심이 인정했을 경우, 다른 투수로의 교체 또한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19일 김성태의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확인한 김시진 감독은 주심에게 교체를 요청했고, 당일 주심은 상황을 재확인한 뒤 KIA 조범현 감독의 양해를 얻어 김수경으로의 선발투수 교체를 허락했다. 결과적으로 규칙상 의무를 다하지 못한 선발 김성태의 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전혀 없었다.
다음은 김성태의 출장기록 인정여부다. 선발투수로 경기 전 교환된 오더에 이름이 올랐고, 연습투구일 망정 마운드에까지 올라 공을 던진 것을 보면 얼핏 경기에 출장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상식에 근거한 원칙상 김성태의 출장기록은 인정받지 못한다. 이날 김성태의 출장기록 역시 경기 불출장으로 처리되었다.
그 이유는 경기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이전에 교체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스타팅 오더에 이름이 올라있는 일반 야수를 다른 선수로 교대시키려 할 때도 경기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에는 교대가 허락되지 않는다. 주심의 플레이 볼 선언 후, 타임을 요청하는 과정을 거쳐 야수교대가 이루어진다. 그 만큼 경기나 선수의 기록 인정에서 플레이 볼 이전과 이후는 분명한 경계선이다.
경기개시 1시간 전 이루어지는 라인업 오더 교환 시점을 정식 출장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지만, 오더는 어디까지나 출장 예정선수 명단이다. 예고된 선발투수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경기 시작 전 다른 선수로 바뀐 것을 경기 중 선수교대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실질상으로 당일 선발투수가 한 팀에 2명이 되는 수가 벌어진다. 어디까지나 기록상 한 팀의 선발투수 지위(Game Starting Pitcher)는 한 경기에 한 명에게만 인정된다. 
원래의 선발투수 김성태를 대신한 김수경이 선발투수 자격으로 경기에 나선 것인지, 아니면 김성태를 구원한 구원투수 자격으로 마운드에 오른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좀더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경기개시가 아니라 오더 교환 시점을 정식 출장 인정시점으로 잡는다면 오더 교환 후, 비가 내려 경기가 열리지 못한 시합을 단순 우천 취소경기가 아닌 노게임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플레이볼 선언이 되지 않은 경기는 절대 노게임이 될 수 없다. 오더는 일종의 TV 편성 예정표로 방송사(?) 사정에 따라 변경이나 취소가 가능할 수 있는 문서다.
그렇다면 기록상 경기출장으로 인정받지 못한 김성태는 당일 경기에 나중에라도 다시 나설 수는 있는 것일까? 부상을 호소해 마운드를 내려간 김성태가 경기 후반 상황이 급박해지자 많이 호전된 몸 상태를 감독에게 말하고 등판시켜 달라고 졸랐다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된다. 규칙상 경기에 아직 나서지 않은 선수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나중에 나서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우긴다면. 물론 그렇다. 아직 정식으로 경기에 나선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김성태는 경기 도중 교대되어 물러난 투수는 아니다.
그러나 김성태의 교체 당시 암묵적인 약속이라는 것이 서로 교환된 것으로 봐야 한다. 경기에 나설 수 없기 때문에 바꿔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은 적어도 당일 경기에 그 선수는 기용할 수 없는 상태임을 인정해 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상대 팀 감독의 양해 절차를 밟는 것도 그런 이유가 깔려있다.
따라서 경기 도중 교대되어 물러난 선수가 아니라는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아예 그 경기의 출장가능 현역선수 명단(일명 엔트리)에서 한 명이 제외된 것으로 못이 박혔다고 간주해야 한다.
경기매너와 관련된 많은 불문율들이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글로 써서 만들어 놓지 않았을 뿐, 신사적 약속이자 정신적 교감에 의한 합의라 할 수 있는 오더 속 불문율인 것이다.
지난 5월 12일 대구 삼성과 SK전에서 1회말 수비 시작 전, 선발투수 송은범(SK)을 부상을 이유로 고효준으로 바꾸려 했다가 류중일(삼성) 감독의 선발투수 의무규칙(한 타자 상대) 고수로 어쩔 수 없이 송은범을 마운드에 올렸던 SK의 거부당한 선발투수 교체 사건 역시 상대 팀 감독의 양해라는 불문법이 영향을 주었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선발투수의 의무 이행 전 교체에 관해 물론 규칙상 주심에게 우선적 결정권이 있는 것이지만, 송은범의 경우처럼 주심 역시 물증에 의한 확신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상대 팀 감독의 양해라는 보이지 않는 불문률을 무시하거나 어기기가 쉽지 않은 것이 야구경기의 또 다른 숨은 그림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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