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SilicaGel)이라는 밴드가 있다. VJ가 2명이 포함된 7인조 밴드다. 맞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노래에 딸려나오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뮤비는 그 자체로 이들의 존재이유와 신곡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애초 2013년 평창 비엔날레 출품을 위한 미디어 퍼포먼스 팀으로 뭉친 게 밴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강호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2016년 EBS ‘스페이스 공감’의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과 한국컨텐츠진흥원의 K-루키즈 우승을 휩쓸었다. 두 상을 한 해에 한꺼번에 가져간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이들의 이름은 이렇다. 기타의 최웅희, 신디사이저와 보컬의 김한주, 기타와 보컬의 김민수, 드럼의 김건재, 베이스의 구경모, 그리고 VJ 김민영과 이대희. 자일리톨 껌 통에 들어있던 실리카겔을 보고 팀명을 지었다는 이들을 [3시의 인디살롱]에서 만났다. VJ 2명은 사정상 불참했다. 이들은 7일 낮12시 새 EP ‘SiO2.nH2O’를 냈다. 앞서 1일부터 매일 특정시간에, 즉 노래와 꼭 들어맞는 시간에 신곡 뮤직비디오 5편을 유튜브에 공개한 것을 보면 역시 붕가붕가레코드답다.
= 반갑다. 각자 소개부터 부탁드린다.
(최웅희) “기타 치는 최웅희다. 1994년생으로, 중1 때 신해철의 라디오를 들으며 인디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머니한테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했지만 평균이 90점 넘으면 그때 하라고 해 음악을 포기할 뻔했다(웃음). 그러다 형이 90점을 넘어 학원을 다니는 덕분에 새벽에 형 기타를 치면서 꿈을 키웠다. 중3 때 학교 통기타반에 들어갔고, 고1 때부터 음악을 업으로 삼자고 결심했다. 2015년 실리카겔 데뷔 EP 발매 쇼케이스에서 세션으로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정식 합류했다. 현재 기타는 에피폰의 윌샤이어와 댄일렉트로의 12현 기타를 쓰고 있다.”
= 아, 싱글 ‘두개의 달’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그 괴물 촉촉수 아닌가. 안경을 쓰니 전혀 몰라보겠다.
(최웅희) “맞다(웃음).”
#. 실리카겔의 디스코그래피를 소개하면 이렇다.
= 2015년 8월 데뷔EP ‘새삼스레 돌이켜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가지 시각’ : intro, hrm, Il, sister
= 2016년 2월 싱글 ‘두개의 달’ : 두개의 달
= 2016년 9월 싱글 ‘Sister’ : Sister
= 2016년 10월 1집 ‘실리카겔’ : 비경, 눈동자, 9, 강, 모두 그래, Orange, 연인, Hrm, Sister, Woon’s Theme, Intro(For 기억), 기억, 놀자
= 2017년 2월 싱글 Space Angel with 파라솔 : Space Angel
= 2017년 11월 EP ‘SiO2nH2O’ : 낮잠, 뚝방길, Zzz, 불한당, Neo Soul, 그린내, Neo Soul(DJ 소울스케이프 리믹스), 불한당(달파란 리믹스)
= 계속 소개해달라.
(김한주) “신디사이저와 보컬을 맡고 있는 김한주다. 94년생이며, 8살 때부터 클래식 음악학원을 다녔다. 예원중학교를 나와 고교 자퇴후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예대에 진학했다. 이때 이미 클래식에서 실용음악으로 전공을 바꿨다. 하여간 대학을 불성실하게 다니다가 이 불성실한 친구들을 만나 2013년 여름 안산의 단골가게에서 ‘실리카겔’이라는 이름으로 조그맣게 공연을 했다. 당시 연주 멤버가 4명, VJ가 3명이었고, 2014년부터 서울에 와서 공연을 했다. 2015년에 첫 EP를 냈고, 2016년에 붕가붕가레코드에 합류했다. 신디사이저는 12개쯤 갖고 있다. 메인은 데이브 스미스 인스트루먼츠의 OB-6로, 톰 오버하임과 데이브 스미스의 콜라보 신스다.”
(김민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으며 92년생이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학원을 다니며 자잘하게 바이올린도 배웠다. 그러다 초5 때 막연하게 기타를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예전 헤비메탈을 좋아하셨다. 태교도 스콜피온즈로 했다(웃음). 중학교 때 밴드부를 했는데 고교 진학 무렵 동네에 실용음악학원이 생겼고, 그곳에서 드럼 치는 (김)건재를 만났다. 밴드부에서 드럼 치던 형이 대안학교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 저와 건재도 그곳(서울실용음악학교)에 진학했다. 고2 때 대학 입시를 치러, 건재는 서울예대에 붙었고 저는 떨어져 다음해에 들어갔다. 학번이 달라 건재와 자주 볼 일이 없었는데, 대학 2학년 때(2013년) 당시 디지털아트 수업을 듣던 건재가 ‘평창 비엔날레에 나가게 됐는데 같이 하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건재의 룸메이트였던 구경모가 베이시스트로, 건재가 건반을 나르다 만난 (김)한주가 키보디스트로 합류, 4명의 연주멤버가 꾸려지게 된 거다. 기타는 고교에 올라가면서 부모님이 사주신 깁슨 ES335, 세컨은 일제 펜더 62년 리이슈를 쓰고 있다.”
(김건재) “멤버들이 다 신디를 갖고 있다. 이게 장점이다. 92년생이며 팀에서 드럼과 리더를 맡고 있다. 중학교 때 교회를 다니며 드럼을 쳤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친형들 덕분에 밴드음악을 많이 들었다. 학원 다니다 (김)민수를 만났고 민수가 대안학교에 간다고 해서 이미 합격해놓았던 게임고를 포기하고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교장선생님이 수시 시험을 보게 해줘 우여곡절 끝에 2008년 봄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정말 열심히 배웠고 잠자는 시간만 빼놓고는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고교 2학년이 되니 다들 어딘가 붙어서 떠나더라. 그래서 저도 시험을 봐서 들어간 곳이 서울예대(2010년 진학)다. 3학년 때 디지털 아트에 빠졌고 그러다 (실리카겔 초기 VJ였던) 강동화를 만났다. 심벌은 메이널, 스네어는 루딕을 쓴다.”
(구경모) “베이스 낭송, 회계를 맡고 있는 구경모다. 92년생으로 지금까지 밋밋한 인생을 보냈다. 초3 때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앨범을 사서 ‘밴드음악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미국과 영국의 밴드음악을 섭렵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제가 음악하는 것을 안좋아했는데 ‘두고 보시라. 베이스로 대학에 갈 것이다’는 마음으로 입시준비를 해서 서울예대에 들어갔다. 베이스를 선택한 것은 사람 모으기가 보다 쉬울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실수(?)로 (김)건재를 만나면서 비탈길로 떨어졌다(웃음). 베이스는 마이크 룰의 빈티지 4현과 일제 펜던의 머스텡을 쓴다. 둘의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 정리해보자. 2013년 실리카겔 결성 당시에는 연주멤버가 김건재 김민수 구경모 김한주 4명, VJ가 강동화 이대희 김민영 3명이었다. 이 7명이 2015년 데뷔EP까지 냈고 이후 최웅희가 합류해 연주멤버가 5명으로 늘어난 상태에서 2016년 2월 싱글 ‘두개의 달’을 냈다. 그러다 2016년 9월 싱글 ‘Sister’ 때부터 강동화가 탈퇴, 지금의 7인조가 됐다. 맞나?
(실리카겔) “맞다.”
= 드디어 퍼즐이 맞춰진 느낌이다. 붕가붕가레코드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김한주) “데뷔EP를 낸 후 그룹을 키우고 싶었는데 매뉴얼이 부족하다보니 전문가들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붕가붕가레코드의 대표인) 곰사장님한테 데모를 보내고, 곰사장님이 저희 공연을 한두차례 보러 오시고, 해서 합류하게 됐다. 그때가 2015년 말이다. 당시 홈레코딩으로 준비하다가 붕가붕가레코드에서 2016년 2월 정식 싱글로 나온 것이 바로 ‘두개의 달’이다.”
= 아, 다시 ‘두개의 달’ 뮤비를 보고 싶다. 그건 그렇고, 2016년 올해의 헬로루키와 K-루키즈에는 어떻게 나가게 됐나. 그것도 두 곳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구경모) “곰사장님이 먼저 제안을 해주셨다.”
(김한주) “신인이고 군대도 가야 하고, 이렇게 시간적 제약이 있다보니 저희 이름을 알리는 최고의 방법이 오디션이었다. 헬로루키 결승전에서 우승하고 나서 정말 기뻤다. K-루키즈 때도 기뻤고.”
(최웅희) “눈물까지 났다.”
(구경모) “사실 2015년에도 지원했는데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 당시 연주멤버가 4명이었고, 저와 (김)건재가 다른 밴드에서 이미 1집을 낸 상태라, 즉 팀의 과반수가 이미 앨범을 발표한 상태라 참가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2016년에는 최웅희가 가세, 연주멤버가 5명이 되는 덕분에 참가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 그야말로 최웅희씨가 ‘신의 과반수’였던 셈이다(웃음).
(실리카겔) “신의 과반수? 하하. 맞다. 신의 과반수였다.”
= 자, 이제 새 앨범을 함께 들어보자. ‘SiO2.nH2O’, 어떻게 읽어야 하나.
(구경모) “‘에스아이오투엔에이치투오’로 읽으면 된다. 방습제로 쓰이는 실리카겔의 화학식 이름이다.”
(김민수) “오팔 보석의 화학식이 실리카겔과 똑같다고 하더라. 자연발생이면 오팔, 인공적으로 나오면 실리카겔이 된다. 그래서 12월2일 열리는 단독공연 제목을 ‘SiO2.nH2O=OPAL’로 정했다.
#. 새 앨범 트랙리스트와 뮤비 공개 시간대를 소개하면 이렇다
1. 낮잠 = 김민수. 11월1일 오후2시 뮤비 공개
2. 뚝방길 = 최웅희 이대희. 11월2일 오전8시 뮤비 공개
3. Zzz = 김민수
4. 불한당 = 구경모. 11월3일 오후11시59분 뮤비 공개
5. Neo Soul = 김한주. 11월5일 오후9시 뮤비 공개
6. 그린내 = 김건재. 11월6일 오후6시 뮤비 공개
7. Neo Soul = DJ 소울스케이프 리믹스
8. 불한당 = 달파란 리믹스
= ‘낮잠’은 청량감이 마치 포카리스웨트 같다.
(김민수) “이번 앨범의 컨셉트는 멤버별로 하루 시간대 중 하나를 선택하자는 것이었다. 저는 오후, 최웅희는 아침, 이런 식으로. ‘낮잠’은 멍 때리고 있는 시간이 많은 낮을 테마로 삼았다. 개인적으로 이 시간대를 좋아한다. 이미 만들어놓고 아카이빙해둔 짤막짤막한 루프를 새롭게 조합해 만들었다.”
= 아하, 그래서 ‘낮잠’ 뮤비가 오후2시에 공개된 것 같다. 그러면 ‘뚝방길’은 아침을 테마로 삼은 것인가. 그리고 굳이 시간대로 보면 ‘그린내’(오후6시), ‘Neo Soul’(오후9시), ‘불한당’(오후11시59분), ‘뚝방길’(오전8시), ‘낮잠’(오후2시) 순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최웅희) “맞다. 아침을 맞아 썼다. 집앞 안양천에 뚝방길이 있는데 그 곳 생각을 많이 했다. 멀리 신도림의 건물 타워들이 보이는 모습이, 마치 도시가 저와는 아주 멀어 떨어진 느낌을 준다. 뮤비를 보면 노래에 대한 설득력이 더 높아질 것이다.”
= ‘Zzz’는 간주곡 느낌이다.
(김민수) “제가 믹싱을 하다보니 다섯곡이 연속적인 흐름속에서 진행되는데, 중간에 부드러운 공간의 느낌을 주고 싶어서 집어넣어봤다. 2번과 3번 트랙 사이에 넣으면 새벽과 아침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 ‘불한당’은 왠지 꼭두각시 인형이 떠오른다.
(구경모) “다른 네 친구들이 쓴 곡이 모두 밝고 신나고 팝스러운 느낌인 것 같아 제 곡은 약간 톤다운시키는 곡으로 써봤다. 새벽에 해당하는 느낌을 담았다.”
= ‘Neo Soul’은 어떤 곡인가.
(김한주) “도시의 밤과 시골의 밤은 큰 차이가 있는데, 그런 여러 밤들의 이미지를 합성하려 애쓴 곡이다.”
= ‘그린내’는 무척 파워풀한 곡이다.
(김건재) “그린내는 연모하는 사람을 뜻하는 옛 우리말이다. 어감이 예뻐서 썼다. 록페스티벌 같은 데 가서 함께 부를 수 있는 쉬운 멜로디를 택했다.”
= DJ소울스케이프와 달파란 리믹스 아이디어는 누가 냈나.
(김한주) “앨범을 볼륨감 있게 내고 싶었는데 마침 곰사장님이 리믹스를 누구한테 부탁해보자고 하셨다.”
(최웅희) “두 분 다 바쁘실텐데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김한주) “(김)민수랑 반농담으로 DJ소울스케이프 리믹스 버전을 타이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역시 DJ소울스케이프다. 인상도 좋고 친절하시고. 인디신의 부처님 같은 분이다.”
= 새 EP는 전체적으로 전작들보다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다. 하지만 실리카겔 특유의 B급정서는 약간 휘발된 것처럼 느껴진다.
(김민수) “이전 앨범은 ‘우리가 앨범 아트까지 직접 모든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EP는 음원 작업부터 레코딩, 믹싱까지 모두 최대한 프로페셔널한 분위기를 살리려 노력했다. 전문장비도 사용하고. 뮤직비디오 역시 최웅희 곡을 빼놓고는 모두 외부 작가들과 공동 작업을 해 완성도를 높였다. 초반 모니터링을 해보니 실험적이고 재미난 느낌보다는 좀더 성숙하고 성장한 느낌이 든다. 만족스러운 앨범이 된 것 같다.”
= 내년에 동반 입대를 한다고 들었다.
(최웅희) “동반까지는 아니고, 내년 시기를 맞춰 3,4월쯤에 군입대를 할 계획이다. 앞서 12월에는 국내에서, 내년 1월에는 일본에서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김건재) “일본 공연에 맞춰 멤버들과 놀러간다(웃음).”
= 수고하셨다. 많은 분들이 실리카겔의 신곡을 뮤비와 함께 즐감했으면 좋겠다.
(실리카겔) “‘실리카겔이라는 팀 이름 어떻게 지었나’ 같은 뻔한 질문을 안해서 너무 좋았다(웃음). 말을 간만에 많이 한 인터뷰였다. 수고하셨다.”
/ kimkwmy@naver.com
사진=붕가붕가레코드 제공, 뮤직비디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