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구째 먹혔습니다…담장 밖으로” 베테랑 캐스터도 깜빡 속은 윤동희의 홈런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3.06.14 09: 00

[OSEN=백종인 객원기자] 스코어 2-3이다. 밀리는 홈팀의 3회 말 공격. 연속 4구로 무사 1, 2루가 열렸다. 다음 타자 고승민이 오래된 격언을 따른다. ‘볼넷 다음에는 초구를 노려라.’ 어른들 말씀 틀린 것 없다. 정확한 중견수 앞 안타다.
2루 주자 잭 렉스가 동점을 노린다. 충분히 득점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당연한 질주는 좌절된다. 중견수 문현빈의 기막힌 수비 탓이다. 전력 질주로 타구를 걷어내더니, 번개같이 홈으로 쏜다. 원 바운드 스트라이크로 안방 배송이다. 하소연할 데도 없는 태그 아웃이다. (13일 사직, 한화-롯데)
찬물도 이런 찬물이 없다. 분위기 싸늘하다. ‘이러다 돌돌 말리는 것 아냐?’ 홈 팬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이어진 1사 1, 2루다. 6번 윤동희 타석이다. 카운트 1-1. 문동주의 다음 공은 포심 패스트볼이다. 포수 최재훈이 타자 쪽으로 앉는다. 3루수 또는 유격수 방향 내야 땅볼로 병살을 노리는 볼 배합이다.

13일 사직구장에서 한화전에서 롯데 윤동희가 3회 말 역전 3점 홈런을 치고 기뻐하고 있다. 2023.06.13 / foto0307@osen.co.kr

아차. 걸려들었다. 타자가 못 참고 배트를 낸다. 어설픈 스윙이다. 타구음과 함께 SBS Sports 중계석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3구째, 먹혔습니다. 왼쪽. 좌익수.” 낮은 톤으로 시작됐다. 캐스터의 템포는 크레셴도(crescendo)로 기어를 바꾼다. 점점 강하고 급박해진다. “좌익수? 뒤로.” 그러더니 갑자기 폭발한다. “담장 밖으로, 담장~ 밖으로. 윤동희. 데뷔 이후 두 번째 홈런.”
13일 경기에서 한화 문동주가 롯데 윤동희에게 시즌 첫 피홈런을 허용했다. 2023.06.13 / foto0307@osen.co.kr
 ‘먹혔다’는 ‘제대로 맞지 않았다’의 야구적 표현이다. (투구에 눌려) 타이밍이 늦거나, 배트의 중심(스윗 스팟)으로 치지 못해 타구가 힘을 잃었다는 뜻이다. 과학적 표현을 빌면, 비탄성충돌(inelastic collision)로 반발계수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먹혔습니다”가 “담장 밖으로”가 된 것은 논리적 오류다. 빗맞은 (그렇게 보였던) 타구가 홈런이 됐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한 방은 승부를 뒤바꿨다. 2-3이 5-3으로 역전되는 결정적 스윙이었다.
윤성호 캐스터는 SBS Sports의 간판 중 한 명이다. 올림픽, 프리미어 리그 등 굵직한 이벤트를 많이 맡았다. 야구 중계도 10년이 넘는다. 그런 베테랑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다. 타격 순간을 보면 이해가 된다. 믿기 힘든 스윙이다. ‘어떻게 저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SBS Sports뿐만이 아니다. MBC Sports+도 마찬가지다. 경기 후 방송된 ‘베이스볼 투나잇’에서도 뜨거웠다. 이 홈런에 대한 감탄과 경이로움 때문이다.
정민철 “말이 안 됩니다. 저런 몸쪽 공을 상체가 유지된 상태에서 배트의 스윗 스팟으로 강타하네요. 저런 선수가 어떻게 2년 차 신인이죠?”
양준혁 “저런 공을 제대로 맞혀 내려면 배트 손잡이가 거의 갈비뼈를 찌르고 들어갈 정도로 안쪽으로 넣고 타격해야 합니다. 박병호나 최정, 나성범, 이정후 정도 되는 타자들만 저런 타격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양 위원이 한마디 보탠다. “지금 윤동희 타율이 얼마죠? 잘은 모르겠는데 저 정도라면 3할 위에 있어야 할 클래스의 선수로 보입니다.” 자리 깔아야 한다. 양신은 양신이다. 치는 것만 보고 안다. 윤동희의 현재 타율은 0.307이다.
SBS Sports 중계화면
그림을 보시라. 확연한 볼이다. 안쪽으로 상당히 빠졌다. 보통이라면 배트에 맞히기도 어려운 코스다. 치더라도 정상 타격은 불가능하다. 윤성호 캐스터의 말처럼 ‘먹히는’ 게 당연하다. 그걸 제대로 때렸다. 그것도 좌전안타 정도가 아니다. 펜스를 넘기는 홈런이다. 악명 높은 사직 구장 담장을 말이다.
하물며 투수가 누군가. 문동주다. 올 시즌 최고의 영건이다. 160㎞까지 쏜다는 파워 피처다. 그런 상대의 149㎞짜리를 쳐냈다. 시즌 첫 피홈런의 불명예를 안겼다. 둘은 동갑이다. 윤동희는 “고교 시절에는 붙어본 적이 없어요. 작년 2군에서 만났는데, 그때는 안타를 못 쳤습니다”라고 기억했다.
야탑고 출신이다. 김하성, 배지환의 후배다. 2차 3번으로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내야수였지만 외야로 전향한 뒤 타격에 집중도가 높아졌다. 사회생활도 잘한다. 인터뷰 끝에 인사도 챙긴다. 이날 VIP석에서 응원한 구단주를 향해서다.
“회장님이 보내주신 도시락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전복을 제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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