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원이 정색하고 소리쳤다 “원태야, 완벽하게 던지려고 하지 마”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3.08.13 09: 00

[OSEN=백종인 객원기자] 1-1로 팽팽하던 3회 초다. 홈 팀이 위기를 맞았다. 2사 3루가 중심 타선에 걸린 탓이다. 타석에는 3번 로니 도슨이 도사리고 있다. (12일 잠실, LG-키움)
상황이 상황이다. 공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배터리의 볼 배합도 신중하기 이를 데 없다. 직구,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 모든 구종이 동원된다. 카운트 2-2에서 승부구가 잇따라 커트 된다.
그러던 7구째다. 사인 교환이 끝났다. 체인지업이다. 포수가 미트를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 땅을 한 번 친다. 유인구를 떨어트리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웬걸. 정작 투구는 반대로 간다. 먼 쪽 높게 날린다. 하마터면 빠질 뻔했다. 공짜로 1점을 내줄 뻔한 것이다.

12일 잠실에서 열린 키움전에서 최원태가 4회 김태진에게 적시타를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jpnews@osen.co.kr

간신히 잡아낸 포수다. 마스크를 벗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말을 할까, 말까. 이내 마운드를 향해 소리친다. 1만이 넘는 관중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중계방송 마이크에도 담길 정도의 볼륨이다. “원태야, 너무 완벽하게 던지려고 하지 마.”
MBC Sports+ 중계화면
처음부터 그랬다. 평소 같지 않은 토요일이다. 뭔가 미묘한 분위기다. 궁금하고, 설레고, 뭉클하고, 약간은 애잔한 잠실의 초저녁이다.
1회 초 첫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다. 구심의 플레이볼 선언이 나왔다. 동시에 홈 팀 선발이 모자를 벗는다. 그리고 3루 쪽을 향해 깎듯이 허리를 꺾는다. 원정팀 덕아웃과 팬들이 있는 곳이다. 지난 8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정작 경기 후 소감은 달랐다. “컨디션이 좋지 못해 투구 수가 많아졌다. 5회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마운드에) 올려주셨다. 덕분에 승리도 챙겼다. 친정팀이라고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잘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안 했다.” (최원태)
하지만 그 말은 믿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날따라 3루 쪽 관중석이 특별하다. 꽤 많은 스케치북이 떠다닌다. ‘원태야 사랑해’ ‘원태야 살살해’ ‘우리 원태, 꼭 우승 반지 끼워주세요’ ‘원태가 잘 던지고, 키움이 이겼으면…’. 20번 버건디 유니폼도 여기저기서 반짝인다. 히어로즈 시절의 백넘버다.
MBC Sports+ 중계화면
벌써 2주가 됐다. 지난달 29일이다. 깜짝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오피셜 몇 시간 뒤다. 트윈스 구단 사무실에 당사자가 등장했다. 이곳저곳으로 바쁘게 끌려(?) 다닌다. 전입 인사다. 대표이사, 단장, 선수단…. 낯설고,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찾은 곳이 감독실이다. 염경엽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어, 웰컴. 우리 구세주가 왔네.”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허그(포옹)와 주먹 키스로 반가움을 표시한다. “목표는 뭐야? 우승이지.” 부담감도 팍팍 안겨준다.
물론 핵심은 따로 있다. 진짜 해주고 싶은 얘기다. “우리 선발하는 게 편할 거야. 중간(투수진)도 좋고, 타격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너무 점수 안 주려고 하지 말고, 한 점 줄건 빨리빨리 주고. 승부하라고.” (염경엽)
유튜브 채널 LGTWINS
5회를 간신히 마쳤다. 본인 말마따나 4회가 끝일 수도 있었다. 그나마 벤치의 배려 덕분에 승리 요건을 채웠다. 잘 주지 않던 볼넷도 2개나 허용했다. 투구 수는 100개나 필요했다. 그야말로 진땀 흘린 하루였다.
이적 후 3경기를 치렀다. 그중 베어스전(7월 30일, 6이닝 무실점)만 괜찮았다. 나머지 2게임은 애를 먹었다. 16이닝 동안 8실점으로 ERA가 4.50이다.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아마도 부담감, 압박감이 작용했으리라.
이미 해결책은 나와 있다. 압도적인 전력의 팀이다. 공격, 수비 모두 나무랄 데 없다. 웬만한 타구는 야수들이 막아준다. 초반 실점? 2점쯤이야 금세 따라잡는다. 뒤집는 것도 어려운 일 아니다. 게다가 후반도 든든하다. 필승조가 차고 넘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너무 완벽하게 던지려고 하지 마.” “한 점 줄건 빨리빨리 주고, 승부하라고.” 그런 게 괜한 소리가 아니다. 박동원, 염 감독의 얘기는 같은 결이다. ‘트윈스 2023 버전’에서는 그래도 된다, 그래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꼼꼼하게, 정성껏, 완벽하게, 모든 걸 태워야 할 때가 있다. 찬 바람이 솔솔 불 때, 1~2게임이면 된다. 그걸 위해 지금은 운기조식(運氣調息) 해야 한다. 기를 다스리고, 숨을 고를 때다. 그게 최원태에게 필요한 ‘LG화(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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