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윰블리’ 정유미가 달라졌다.
미혼이라고 해서 청춘의 달달한 로맨스에만 국한하지 않고, 나이듦에 따라 깊어진 경험치에 비례한 캐릭터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영 중인 영화 ‘잠’은 순진무구하게 보이는 그녀의 외적인 장점이 십분 담긴 작품이다. 초반에는 신혼부부의 애틋한 정서를 드러내더니, 시간이 쌓일수록 남편의 기행이 심각해지자 급변하는 집착으로 광기 서린 아내의 얼굴을 드러낸다.
자꾸 반복되는 남편의 증상에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던 어느 날, 수진은 직접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정유미는 자신의 익숙한 얼굴을 완전히 달리 보이게 했다.
‘잠’(감독 유재선,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루이스픽처스)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연출부 출신인 유재선 감독의 상업 장편 데뷔작이다.
어떻게 보면 ‘잠’ 역시, 결국 가장 정유미다운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부산행’(2016), ‘82년생 김지영’(2019)에 이어 아내이자 엄마로서 평범한 직장 여성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전한다. 연기적 행보 만큼은 가식없이 참되고 순수해 보인다.
정유미는 하루가 다르게 몽유병이 심각해지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아내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새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하는 엄마를 연기했다.
예민해진 탓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은 물론 눈주변이 새빨개진 수진의 모습을 자신의 얼굴 안으로 가져와 배우로서 관객들에게 자세히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여기에 두려움까지 덧칠하며 진의를 쉽사리 알 길 없는 수진의 표정을 완성했다.
‘로코 여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외부에서 만들어준 것일 뿐 정유미는 늘 변화를 시도해왔다. 누군가의 연인, 아내에서 멈추지 않고 여성영화에서 극을 오롯이 이끌기도 하며 여러 장르 속 다양한 역할을 섭렵해 온 그녀다.
예능에 나올 때는 미처 몰랐으나 큰 스크린에서 ‘잠’을 보는 동안 정유미에게서 강렬한 스토리가 읽혔다. 배우로서 자신이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자신감, 그리고 그 자신감을 밀어붙이기에 충분한 도전의식이 만나 지금의 배우 정유미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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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스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