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궁민에게 이런 눈이 있었나. 어른 남자와 멜로 눈빛을 모두 담았다. 만인의 '연인' 타이틀이 그의 코앞에 있다.
MBC 금토드라마 '연인'(극본 황진영, 연출 김성용 이한준 천수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드라마가 지난 2일 밤 방송된 10회로 파트1을 마무리하며 후반부에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안정적으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연인' 파트1의 마무리가 남녀주인공 이장현(남궁민 분), 유길채(안은진 분)의 새드 엔딩으로 끝나 갑론을박을 낳기는 했으나, 작품의 흥행 여부는 적어도 성공이었다.
선봉장은 단연코 남궁민이다. 그가 맡은 이장현은 어느 날 갑자기 능군리에 나타난 미스터리한 사내다. 겉모습은 양반인데, 대놓고 재물을 탐하는 것에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고귀한 선비들을 조롱하며 화를 돋우더니 또 갑작스레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겨 말문이 막히게 한다. 이를 통해 그는 본모습이 무엇인지 자꾸만 헷갈리게 하고 유길채로부터 계속해서 시선을 끈다. 말이 쉽지, 아리송한 캐릭터가 생각 만으로 구체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려운 걸 해낸 남궁민은 이장현의 오락가락하는 면모 외에 행간의 의미를 궁금하게 만들며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호기심을 선사한다.
'연인'의 배경은 조선시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 책에서나 볼법한 혼돈의 시기. 김성용 감독을 필두로 제작진은 이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고증하며 구성한다. 너무 현실적이어도, 또 너무 비현실적이어도 찰나에 몰입이 깨져버리는 픽션에서 남궁민은 이미 그 상황에 푹 빠져있는 눈빛을 보여준다. '검은 태양'부터 그를 봐온 김성용 감독은 남궁민의 얼굴을 정확하게 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배우의 유일한 표현 수단을 꼽는다면 말도 아닌 눈빛이라고 했던가. 남궁민과 김성용 감독의 재회는 이를 실감케 한다.
몰입감은 '디테일'로도 연결된다. '연인'의 이장현은 주인공인 만큼 대사량도 많고 장면마다 성격과 감정의 격차도 큰 인물이다. 초반에는 세상 모든 여자를 품고 다닐 난봉꾼처럼 굴다가도 언제부턴가 오직 유길채만 떠올리는가 하면, 살아남으려 전장을 누비다가 다시 능군리에 돌아와 연애에 집중하는 식이다. 언뜻 장면과 감정 모두 널뛰기만 하는 이 캐릭터에게 남궁민은 매순간에 집중하게 한다. 시나브로 '연인'의 시청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 않고, 다시 살아남아 연인 길채에게 돌아가려는 남궁민의 이장현에게 설득된다. 남궁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의 큰 맥락이 이해되는 모양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로맨스. 유길채를 볼 때 이장현의 시선은 회를 거듭할수록 깊어진다. 극 초반부, 유길채를 그저 철없는 규수이지만 예쁜 외모의 소유자로 바라보던 이장현. 그는 나중에는 전란에 길채가 죽었을까 걱정하며 재회할 때마다 한층 더 애절하고 애틋한 시선을 보낸다. 유길채 또한 이장현에게 애틋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전선에서 또 청나라까지 다녀오며 사지를 넘나들었던 이장현에겐 생사의 고비를 넘어선 어른의 멋이 더해진다.
이 가운데 남궁민의 시선에도 차이가 생긴다. 처음으로 이장현이 "서방님" 소리를 듣고 유길채를 구하며 가볍게 웃던 4회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청나라 행을 앞두고 입을 맞춘 7회의 이장현은 전혀 다른 인물 같다. 곧바로 8회에서 이장현이 마지막을 각오하고 고백하지만, 유길채가 확답을 못하자 눈물을 머금고 "정말 밉군"이라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깊어지는 이장현의 감정선에 남궁민은 대사 한 마디, 짧은 시선 처리까지 밀도 있게 담아낸다.
연기대상만 두 번이나 받은 남궁민에게 더 이상의 연기 호평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기실 그가 긴 호흡의 로맨스 연기로 대중을 현혹시킨 것은 오랜만이다. 2015년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선굵은 악역을 보여준 뒤 매작품 기복 없는 연기를 보여준 남궁민. 그의 작품 중 오랜 시간 회자되고 있는 것은 '김과장'의 코믹, '스토브리그'의 냉철함, '검은 태양'의 액션과 같은 로맨스를 배제한 캐릭터 플레이였다. 남궁민이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워 출연한 2018년 드라마 '훈남정음'은 불과 2% 대 시청률로 종영했던 더. 이를 고려하면 '연인'에서 그의 멜로 호흡이 호평받는 것은 더욱 주목할 만 하다. 5년 사이 남궁민의 무엇이 그의 로맨스를 설득력 있게 만들었을지 궁금할 지경이니.
차오르는 호기심을 뒤로 하고 시청자들은 잠시 '연인'을 떠나보내야 한다. 다시 10부작으로 구성된 '연인' 파트2가 10월에야 돌아오기 때문. 파트1 촬영에만 8개월이 꼬박 걸린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을 위해 제작진이 첫 방송 전부터 결단을 내린 부분이다. 파트1 마지막 회가 이장현과 유길채의 이별로 끝난 부분이 복병이긴 하다. 로맨스 장르에 있어서 해피 엔딩에 대한 국내 시청자들의 갈망이 유독 강한 여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민의 이장현에 대한 감탄은 여전히 유효하다. 적어도 그의 깊은 시선 앞에 시청자 모두가 '연인'이 된다. 진짜 엔딩인 파트2를 향해 남은 건 존중하며 버틸 일 뿐이다. / monami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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