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마친 지 3년이 지났는데 코로나 사태 때문에 계속 개봉을 연기해야만 했다.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이 시리고 아팠다. 남의 영화 개봉하는 걸 보면서 부럽기도 했다.”
연출작으로 스크린 컴백한 강제규 감독은 11일 오후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1947 보스톤’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그 과정을 영화를 다듬는 시간으로 삼았다. 이번에 개봉을 앞두고 다른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고 배운 게 많다. 한국영화의 회복세가 뒤처지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힘을 실어주시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이 같은 소감을 남겼다.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콘텐츠지오,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빅픽쳐)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 강제규 감독이 전작 ‘장수상회’(2015)를 내놓은 이후 8년 만의 신작이다.
이날 강제규 감독은 “저희 영화가 많은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예비 관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실존 인물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역사서나 영상기록으로만 그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영화 ‘1947 보스톤’을 통해 조금이나마 온 국민에게 희열을 안겨주었던 그들의 업적을 느낄 수 있다. 하정우, 임시완, 배성우, 김상호가 각각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 백남용(극 중 백남현)이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며 극의 몰입을 끌어올렸다.
하정우는 한국 마라톤의 전설 손기정 선수 역을 맡았다. 실제로 손기정은 1936년 열린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 일장기를 단 채 일본이름 손 키테이로 출전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하정우는 가슴에 일장기를 단 채 시상대에 올라야 했던 손기정의 울분을 시작으로 1947년 최초로 태극기를 달고 국제 대회에 참가하게 된 국가대표 마라톤 팀 감독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감동을 안겼다.
이날 하정우는 “저도 선배, 감독 역할은 처음인 거 같다. 임시완과 투샷이 잡히는 걸 보니 내가 좀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웃음)”며 “이번에는 반드시 태극마크를 달고 마라톤을 뛰겠다는 손기정 선생님의 마음을 담아서 연기를 했다”라고 실존 인물을 소화한 마음을 전했다.
임시완이 맡은 서윤복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달리기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깡과 악으로 각종 대회를 휩쓰는 불굴의 마라토너. 그만의 건강하고 풋풋한 이미지가 더해져 현실성을 높였다.
서윤복은 24세의 나이로 1947년 열린 제51회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전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동양인 선수로서 처음 우승을 차지했던 것. 그는 이듬해 열린 제14회 런던 하계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고, 은퇴 후에는 육상 지도자로 활동했다.
임시완은 캐릭터 소화를 위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등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거쳤다. 또한 마라토너의 단단하고 다부진 체구로 만들기 위해 철저한 식단 관리를 병행, 체지방을 무려 6%대까지 낮췄다고 한다.
이날 임시완은 “식단 관리를 했다. 촬영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매일 운동을 하면서 닭가슴살과 샐러드를 달고 살았다”며 “운동을 하면서 최대한 서윤복 선수의 외형과 비슷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 인바디를 측정했는데 제 인생 최초로 체지방량이 6%대가 됐다. 그런 적이 처음이어서 인상이 깊었다”고 덧붙였다.
국가대표팀의 든든한 현지 코디네이터 백남현(실존인물 백남용)은 김상호가 분했다. 백남현은 보스톤에서 재정보증인 역할부터 통역사, 훈련 지원, 숙식 제공까지 보스턴 마라톤 대회 국가대표팀을 물심양면 서포트 하는 현지 코디네이터. 백남현 역의 김상호는 어려운 시절 머나먼 타지에서 척박하게 살아가는 그 시절 교민이 조국에 느낄 수 있는 양가적인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강 감독은 실존 인물들의 활약에 근간을 두고 시나리오에 구축했다면서 “제가 설정한 손기정 캐릭터는 마초에, 조금은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다. 그래서 서윤복의 입장에서 보면 잣대가 엄격한, 강한 아버지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승룡(배성우 분) 캐릭터에 대해서는 “엄마처럼 서윤복 선수를 대하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며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나가는 세 사람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기정 감독과 서윤복 선수, 남승룡 코치까지 이들이 조선을 떠나 미국 보스턴으로 향한 과정, 결승선을 넘는 순간까지 모든 게 기적적으로 그려져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보스턴 행이 좌절될 뻔한 순간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위기를 극복한 과정은 꽤나 감동이다.
비록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 백남용의 레이스는 끝났지만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포기할 줄 모르는 그들의 마라톤 정신은 영화 ‘1947 보스톤’을 통해 계속된다.
하정우는 “올 추석에도 힘을 합쳐서 좋은 시너지를 내길 바란다. 관객들이 예전처럼 극장에 찾아오셔서 영화를 보는 문화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바랐다. ‘1947 보스톤’은 오는 9월 27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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