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0년 만에 영화계의 단비를 맞은 김서형과 드디어 '영화인'이 부끄럽지 않게 된 류준열까지. '영평상'이 극장과 영화 산업의 위기 속에 의미를 더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육정학)는 21일 오후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제 43회 영평상 시상식’을 진행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약칭 영평상)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지난 1980년부터 매년 그해의 우수한 영화 및 영화인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올해는 최우수작품상을 비롯해 신인평론상까지 17개 부문에서 시상이 이뤄졌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창립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단체다. 지난 1960년 설립돼 꾸준히 전통과 권위를 유지해오고 있다.
육정학 회장은 개회사에서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지니까 기분도 상쾌해진다. 이 시즌에 영평상을 개최하게 돼 대단히 반갑고, 여러분들이 많이 와주셔서 고맙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나 최근 넷플릭스를 위시한 글로벌 OTT를 중심으로 극장과 영화 산업에 대한 위기론이 대두되는 상황. 이에 육정학 회장은 “OTT가 판을 치며 한국 영화가 극장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것같아 아쉽지만 저희 영평이 앞장서서 한국 영화가 다시 부흥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영화진흥위원회 박기용 위원장은 “비평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평가를 넘어 미학적 가치를 만들며 또 하나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영평상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비평과 또 다른 세상을 연결했다.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영평상에서 또 한번 영화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시상식을 기념했다.
영화의 위기에 치러진 덕분일까. 이날 시상식은 감격의 눈물이 줄을 이었다. "한국 영화의 새로운 방향성"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최우수작품상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를 제작한 김지연 프로듀서부터, '드림팰리스'를 연출해 감독상을 받은 가성문 감독까지 눈물을 보이며 감동을 자아냈다.
특히 '비닐하우스'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 김서형은 영화에 대해 "주거 공간이 획일화된 대한민국 안에서 누가 약자이고 누가 강자일 것인지는 우리가 평가할 일이 아니라고 봤다. 그 비닐하우스 안에서 어떤 공간도 그 사람의 꿈을 논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눈에는 '저렇게 살 수 있을까?'라고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시간 안에 지붕이 되어준 연기를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30년 시간에 너무 깊이 감사를 드린다"라며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또한 "제가 드라마로는 인사를 많이 드렸는데 영화의 문을 참 많이 두드렸다. 그 스타트가 오늘이다. 오늘 또 한번 성장할 수 있게 단비를 내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라며 울먹였다.
'올빼미' 속 시각장애인 연기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류준열 역시 뭉클함을 자아냈다. 그는 "데뷔하고 나서 소개하는 자리나 출입국에서 직업란에 '영화배우, 영화인'이라고 적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선뜻 쓰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 감정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쑥스러움일 수 있고 부끄러움일 수 있고, 영화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인이라고 해도 되는지 죄책감 같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를 함께 즐겨주시고 평론해주시는 분들이 주시는 상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영화인이라고 저를 소개하는 데에 있어서 앞서 느낀 감정들을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현재 군복무 중인 갓세븐(GOT7) 멤버 겸 배우 박진영이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김성수 감독)'로 신인남우상을 받아 소감 영상으로 근황을 밝힌 것. 영상에서 "11사단 일병 박진영"이라고 우렁차게 스스로를 소개한 그는 "영광스러운 상을 군인의 신분으로 받게 돼 더 뜻깊다. 현재 군복무 중이어서 시상식에 참여는 못하지만 영상으로나마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크리스마스 캐럴'은 나의 영화 시작과 같은 작품이다. 더 노력하고 정진해 가도록 하겠다. 일우와 월우를 안겨 준 김성수 감독님께 감사하고, 함께 한 스태프, 선배, 동료 분들께도 감사하다. 나라는 사람을 길러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하다. 좋은 작품으로 돌아오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음악상의 주인공으로 가수 장기하가 뽑혔다. 영화 '밀수'(류승완 감독)에서 음악감독을 맡아 활약한 그는 "'밀수' 음악의 힘은 류승완 감독님이 직접 선곡한 70년대 명곡들에서 나왔다. 저는 나머지 공백을 제가 만든 음악으로 채웠을 뿐이다. 그 마저도 류승완 감독님이 명확한 비전으로 이끌어주셔서 가능했다. 덕분에 처음으로 영화 음악을 맡았음에도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았던 것 같다"라며 류승완에게 수상의 공로를 돌렸다.
더불어 '드림팰리스'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이윤지는 "언제나 선배님들 보면서 꿈을 꿔왔다. 큰딸이 조금 있으면 제가 배우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 나이가 된다. 제 아이가 제 나이를 지나서 계속 더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꿈을 꿀 수 있게 제가 쌓아가는 모습 보여주겠다"라며 "'드림팰리스'를 쓰신 가성문 감독님 정말 축하드린다. 감독님이 수인이를 써주시고 혜정 역의 김선영 배우님이 수인이를 완성해주셨다. 두 분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다.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하겠다. 감사하다"라고 벅찬 소감을 덧붙였다.
다음은 부문별 수상자(작) 명단이다.
최우수작품상: '다음 소희'
공로영화인상: 이우석 회장
공로평론가상: 정중헌 회원
감독상: 가성문 '드림팰리스'
여우주연상: 김서형 '비닐하우스'
남우주연상: 류준열 '올빼미'
여우조연상: 이윤지 '드림팰리스'
남우조연상: 김종수 '밀수'
신인감독상: 안태진 '올빼미'
신인여우상: 김시은 '다음 소희'
신인남우상: 진영 '크리스마스 캐럴'
기술상: 이후경(미술) '밀수'
각본상: 김현정 '흐르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FIPRESCI KOREA)상: 국내 영화 부문 '비밀의 언덕' 이지은, 국외 영화 부문 '라이스보이 슬립스' 앤소니 심
촬영상: 김태경 '올빼미'
음악상: 장기하 '밀수'
독립영화지원상: 극영화 부문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김세인 감독, 다큐멘터리영화 부문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양영희 감독
신인평론상: 최우수 김윤진, 우수 송상호
영평 10선: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 '다음 소희', '드림팰리스', '물안에서', '밀수', '비닐하우스', '비밀의 언덕', '올빼미', '킬링로맨스', '희망의 요소'
/ monamie@osen.co.kr
[사진] OSEN 김성락 기자 / ksl0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