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28회인데 제가 1회 때 부산 남포동에 가서 내가 영화를 계속 만들면 언젠가는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던 제가 계속 영화 작업을 해오면서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
장건재 감독은 4일 오후 부산 우동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한국이 싫어서’의 기자시사회에서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돼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크다. 부산영화제에서 씨앗을 뿌렸고 6~7년 간 잘 키워서 데리고 온 느낌이라 감회가 크다”라며 개막작으로 선정된 소감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장건재 감독과 윤희영 프로듀서, 주종혁과 김우겸 등 배우들이 참석했다. 지난달 개인 일정 중 천추골 골절된 고아성 배우는 불참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 제공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제작 ㈜모쿠슈라, 공동제작 ㈜영화적순간·㈜싸이더스·㈜인디스토리)는 20대 후반의 계나(고아성 분)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어느 날 갑자기 직장과 가족,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드라마 ‘괴이’(2022),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 등의 작품을 통해 특유의 감성과 섬세한 감각을 인정받은 장건재 감독이 각본 및 연출을 맡았다.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는 ‘한국이 싫어서’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저는 주인공 계나가 취하는 삶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에게 용기와 격려, 그리고 희망을 준다”며 “그녀가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을 수도 있지만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마다 자신의 자존을 지켜나가는 방식이 있다. 그게 우리 젊은 세대들이 삶을 대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어서 저도 공감을 했다”고 밝혔다.
장건재 감독은 고아성을 통해 계나라는 주체적인 인물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아성에 대해 그는 “좋은 배우다. 굉장히 아이디어가 많다. 계나가 흥미롭고 재밌는 지점이 있으면 고아성 덕분”이라며 “계나가 가진 스타일이나 피부톤이 시기나 장소에 따라 바뀌는데 그건 고아성의 아이디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관객들이 이전에 보지 못 했던 고아성의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건재 감독은 소설을 영화로 만들게 된 이유를 털어놨다. “이 소설이 출간됐던 해에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2015년은 한국 사회가 굉장히 뜨거운, 큰 변화를 겪었던 해였다. 그 한가운데 있는 소설이다. 저를 공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영화화 해보고 싶었다”라며 “2014년~2015년에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 않나. 여성의 목소리로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해 날카롭게 이야기 하고 있어서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어려울지도 모르고 이 소설을 영화화해서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이고 말했다.
이어 “2016년에 부산영화제 아시아 프로젝트 마켓에서 첫 선을 보였었다. 그때만 해도 마켓에서는 ‘이 소설을 왜 영화화 하고 싶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지키는 게 중요했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3년 정도 해외 촬영도 어려웠다”고 어려움 속에서도 연출을 손놓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영화는 2022년 7월 말 크랭크인 해 올 2월 전체 촬영을 마쳤다.
장 감독은 원작 소설과 영화의 다른 점에 대해 “제가 소설과 다르게 보여주면서 말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며 “소설은 시드니가 배경이지만 영화는 뉴질랜드가 배경이다. 제가 호주와 뉴질랜드의 서너개 도시들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다. 두 나라가 결이 다른데 섬의 이미지로 뉴질랜드가 더 낫겠다 싶었다”고 비교했다. 영화는 계절의 대비를 통해 한국과 뉴질랜드가 가진 느낌에 차이를 뒀다.
장 감독은 “무엇이 자꾸 계나에게 한국을 탈출하고 싶게끔 만드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모험을 시도한다”며 “영화를 만들면서 고민했는데 제가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했다기보다, 계나가 좋은 의미에서 다른 희망을 찾아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이야기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계나의 남자친구 지명 역을 맡은 김우겸은 “이야기 자체가 저한테 너무 공감이 갔다. 여러 인물들이 나오지만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지명 역시 그렇다”며 “내가 이 인물을 맡아서 대사를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다.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직관적으로 들었다”고 출연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밝혔다.
이어 김우겸은 “저는 지명처럼 착하지 않은데 끌렸다.(웃음) 제가 그에게 닮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며 “지명은 자신의 인생관이 뚜렷하고 단순하게 사는데, 나무 같은 사람이다. 그런 점에 매력을 느껴서 내가 풀어가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 싶어서 맡아서 준비했다”고 인물을 연기로 풀어낸 과정을 회상했다.
뉴질랜드로 떠난 계나가 그곳에서 만난 친구 재인 역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주종혁이 맡았다.
이날 주종혁은 “영화의 배경이 뉴질랜드인데 어릴 때 제가 그곳에서 6년 정도 생활을 했었다. 전 그때 학생이었지만 한국의 삶에 지쳐서 워킹 홀리데이로 떠나 온 한국 형들이 있었다. 그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이 시나리오를 보고 그 형들이 생각났다”고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재인 역의 주종혁은 “시나리오를 보니 저의 상황도 떠오르면서 재인을 맡으면 내가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라며 “재인은 한국에서 살 때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뽐내지 못 한다. 그러나 뉴질랜드로 가서는 자신을 찾아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집중한 부분을 설명했다.
주인공 계나 역의 고아성은 이날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앞서 지난달 20일 고아성은 개인 일정 중 천추골 골절로 전치 12주 진단을 받아 14일째 입원 중임을 직접 알렸던 바. 천추골은 요추골(허리 뼈)과 미추골(꼬리뼈) 사이에 있는 뼈로, 심하게 골절될 경우 신경 손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아성은 이번 부상으로 인해 차기작으로 정해졌던 티빙 드라마 ‘춘화연애담’에서 하차했다.
장건재 감독은 고아성에 대해 “촬영 중 다친 건 아니다. 개인 일정을 소화하다가 다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산영화제에 오고 싶어 했었다. 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다가 결국 못 오게 돼 아쉬워했다”면서 “알려진 대로 고아성은 천추골 골절이 됐다. 그 부상은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 현재 회복 중이다”라고 근황을 대신 전했다.
‘한국이 싫어서’는 올해 열린 제28회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전세계에서 온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장 감독은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한국 사회의 피로감, 혹은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 경청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한국 사회를 힘들어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며 “특히 청년 문제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들여다 보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이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제가 청년에서 중년이 됐는데 그 시간 동안 저 스스로에게 다른 질문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가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지, 그런 기회가 공정한지, 질문하고 싶었다. 그런 부분을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국이 싫어서’는 2024년 극장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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