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산골영화제에서 영화를 보신 한 분이 ‘영화를 보고 위로받았다. 고맙다’고 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너와 나’를 연출한 조현철(37) 감독은 관객이 남긴 반응 중에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었느냐는 물음에 이 같이 답하며 “대중에게 말을 건넨다기보다 개개인에게 말을 하는 듯한, 하은이에게 위로를 주는 듯한 마음으로 썼다”라고 영화의 시작을 떠올렸다.
조현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너와 나’(감독 조현철, 제작 ㈜필름영, 배급 ㈜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대성창업투자㈜, 공동제공 싸이더스·그린나래미디어㈜)는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마음 속에 담은 채 꿈결 같은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박혜수 분)와 하은(김시은 분)의 이야기로 지난 2014년 발생한 4·16 세월호 참사를 일부 소재로 차용해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와 영화적 상상으로 풀어냈다.
‘너와 나’는 지난해 열린 27회 부산 국제영화에서 첫 시사를 가진 이후 1년여 간의 기다림 끝에 오는 25일 극장 개봉한다.
이날 조현철 감독은 “(작년) 부국제 때는 반응이 궁금하고 떨렸는데 지금은 별다른 생각이 안 들고 무덤덤하다”며 “제가 외면하려고 했던 저의 개인적인 사건에 다시 관심을 가졌고, 비극적인 사회적 이야기에 제 이야기를 넣었다. 지금은 세월호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정도 제 삶의 이야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고를 겪고 죽음에 대해 생각을 했을 때 일단 공포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공포 이면에 그때 느꼈던 감정은 (사람들이) 커다란 숫자로만 뭉뚱그려서 이야기하는 것이 다르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왜 세월호를 끄집어내서 기억하냐?’고 말할 수 있는데 이제는 저의 의지를 떠나서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조현철은 지난 2016년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고,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가 2019년쯤 각본을 완성했다고 한다. 조현철은 “2016년에 이야기의 발상을 가졌고, 혼자서 계속 시나리오를 고치다가 2019년에 어느 독립영화 PD님을 만나게 됐다. 2021년 봄에 투자를 받았고 그때부터 제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희 영화가 지원사업에서도 떨어지고 투자도 엎어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야기를 쓸 때부터 그랬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나오게 될 영화라는 생각을 계속했다”고 제작과정에 부침은 있었지만 영화화 되리라 믿었다고 밝혔다.
조현철은 자전적 경험으로 ‘너와 나’를 시작했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느꼈던 아픔과 슬픔, 학생들을 추모하는 마음,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았다.
조현철 감독은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담기 위해 입시학원에서 두달 간 특강을 진행했다고 한다. “고등학생들이 멀게만 보였는데 사실상 저와 별다를 게 없더라. 말투부터 '꺄르르~' 웃고 삐치는 모습이 저와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 않았다. 제가 어릴 때부터 엄마, 이모와 친했고 현재 ‘여자 사람 친구’들이 많다”고 30대 남성임에도 여자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비결을 전했다.
“2016년에 (개인적으로)어떤 사고를 겪고나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2016년에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 크고 작은 다툼을 안고 살아가지 않나. 저희 영화에도 끈끈한 아픔이 있다. 그래서 저는 특히나 이 영화에 더 끈끈한 정이 있다.”
이어 조 감독은 “제가 하은이로 대표되는 학생들을 위로하고 싶었는데 (영화를 만들면서) 그들로부터 제가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게 이야기의 힘인 거 같다. 제가 준비하면서 위로를 받았던 만큼 관객들도 영화를 보시면서 똑같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영화만의 장점을 전했다.
2016년 벌어졌던 개인적 '사건'에 대해 “개인적인 시점에서 감정의 널뛰기를 많이 했었다. 빠져나오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건 이후 저는 어떤 감정이나 구체적인 사실, 진실에 파묻혀있기보다 더 넓게 바라보게 됐다”고 달라진 점을 설명했다.
배우 박혜수(29)가 주인공 세미 역할을 맡아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 분했다.
박혜수 캐스팅에 대해 조현철 감독은 “2020년부터 박혜수와 (출연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연예)업계에 보여준 귀엽고 청순한 모습과 달리 강단이 있는 사람이다. 박혜수의 출연이 결정된 이후 영화투자가 결정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폭 이슈가 터졌다”며 “(처음에는) 저 조차도 (그 말들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출연여부에) 고민이 많았고 내부적으로 회의를 했다. 근데 박혜수의 이야기를 눈 앞에서 들으면서, 제가 경험을 통해 직접 느낀 것들도 있으니까 믿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같이 했다”고 설명했다.
박혜수의 ‘너와 나’ 출연이 확정된 것은 2020년이며, 그녀의 학폭 이슈는 2021년 2월 불거지기 시작했다.
‘박혜수 하차 논의는 없었느냐’는 물음에 “특히나 영화는 상업적인 논리가 중요한데, 제가 이 영화를 시작하려고 했던 것도 이것을 위해 모인 스태프도 (기존의 상업적 마인드와) 다른 논리를 갖고 있었다. 모든 스태프가 서로를 사랑했다. 내부적으로도 회의를 하긴 했지만 박혜수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며 “온라인상이나, 기사만 보고 ‘박혜수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인터넷에 나온 소문이 과장됐거나 잘못됐을 수도 있지 않나. 그동안 그런 것들에 의해 저희 (연예계) 동료들이 많이 죽었다. 뭔가 이 사람(박혜수)을 업계가 폐기처분 상품으로 취급하더라도 이 사람이 한 행동,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 저희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했던 ‘무고하다’는 주장을 믿고 싶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엔 두려움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한편 김시은(23) 캐스팅에 대해서는 “기존 콘텐츠에서 느껴지는 학생의 전형적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고 싶지 않았다. 배우가 가진 생동감이 중요했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배우가 가진 ‘쪼’를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배우가 가진 캐릭터가 유머러스해야 했다. 그런 배우들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김시은이 오디션에서 보여줬다”고 에피소드를 밝혔다.
배우이자 감독은 조현철은 ‘로보트: 리바이벌’(2015), ‘뎀프시롤: 참회록’(2014), ‘서울연애’(2014) 등의 영화를 각본·연출해왔다.
"연기 할 때는 촬영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기시간엔 힘들다. 반면 연출할 때는 모든 순간에 집중을 하고 있다.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는 조금 힘들긴 한데 현장에서는 더 재미있는 거 같다."
/ purplish@osen.co.kr
[사진] 주)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