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연대기'에 이어 '아라문의 검'까지 '아스달'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즌1부터 시즌2까지 달려온 긴 시간, 왕후 태알하로 활약한 배우 김옥빈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를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김옥빈은 오늘(25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tvN 드라마 '아라문의 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라문의 검'은 가상의 나라, 태고의 땅 아스 대륙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드라마다. 지난 2019년 방송된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후속작으로, 지난 22일 12회(마지막 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김옥빈은 '아스달 연대기'와 '아라문의 검' 모두 출연하며 시리즈 전체에 걸쳐 태알하 역으로 열연했다.
태알하는 태알하는 아스 대륙 기술의 발달을 주도하는 해족의 수장이자 아스 대륙 문명국가 아스달의 왕후다. 그는 정복자 타곤(장동건 분)의 연인에서 아내로, 정치적 동반자에서 경쟁자로 존재감을 자랑했다. 동시에 은섬(이준기 분), 사야(이준기 분) 쌍둥이 형제와 대제관 탄야(신세경 분)를 위협하는 존재로 극 전체에 긴장감을 선사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도전적인 판타지 작품이었던 '아스달' 시리즈. 그 중심에서 김옥빈의 뿌듯함도 컸다. 김옥빈은 "'해냈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많이 부족했을지언정, 작가님과 감독님과 배우들이 이 실험적인 작품을 구현하고자 열심히 고생했다. 지금 당장은 새로운 유입층이 올라가진 못했을 테지만 나중에 두고두고 회자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김옥빈은 '아스달' 시리즈에 대해 "'아스달'은 제가 너무 사랑했다.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그는 작품의 결발에 대해 "열린 결말로 끝났다.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저는 좋았다. 아록(수호 분)이 성장을 했고, 해족의 고향 레무스를 멸망시킨 이르케벡이라는 곳에 사야가 갔다. 상상의 여지를 남겨둔 게 저는 좋더라"라고 말했다.
애착이 강한 만큼 카메라 밖에서도 감정이 이어진 순간들도 있었을까. 김옥빈은 "아쉽게도 그러진 않았다"라며 웃었고, "마지막 장면도 저도 몰입해서 울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 씬에서 이준기 씨가 있었다. 워낙 장난꾸러기다. 제가 한껏 분위기 잡고 갔는데 장동건 선배는 '고맙다 죽여줘서. 드디어 죽는구나' 이러더라. 무거운 분위기랑 다르게 리허설은 경쾌한 분위기라 그런 경우는 없었다"라며 웃었다.
이어 그는 열린 결말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제작이 된다면 태알하 쪽은 아니고, 사야가 넘어간 이르케벡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태알하와 타곤의 이야기는 시즌2에서 완결을 내렸다. 그렇지만 시즌2에 시즌1에 나왔던 무백(박해준 분)이 등장했던 것처럼 시즌3가 있다면 저도 특별출연을 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처음에 시즌2는 레무스를 멸망시킨 사람들과의 전투를 대비하는 내용으로 기획 된 것으로 안다. 시즌3에서 그들이 레무스에 이어 아스달을 멸망시키기 위해 오는 거다. 다 뇌안탈로 이뤄진 종족으로 알고 있다. 미지의 존재들이 다 뇌안탈처럼 푸른 피를 가진 건데 힘에 있어서는 훨씬 우위를 선점한 부족이다. 뇌안탈의 모티브가 된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한테 멸망당하지 않나. 그 이유가 머리를 쓰지 않아서인데 아스달 사람들이 머리를 써서 뇌안탈에서 이어진 정복자들과의 전투를 이긴다는 설정"이라고 귀띔했다.
김옥빈은 "어렸을 때의 저는 캐릭터를 잘 못 보내는 편이었다. 처음 드라마를 찍고 몇 작품을 할 때까지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고 글도 남기고 그랬다. 그런데 그게 수십번 반복이 되니까 무뎌졌다가, '아스달'을 하며 조금 더 감정이 많이 남았다. 왜냐하면 긴 시간을 찍었고 그만큼 신경을 쓰고 있어서. 지금도 클립 올라온 거를 한번씩 돌려보고 그런다"라고 애착을 드러냈다. 이어 "제가 제일 슬픈 건 아버지 미홀(조성하 분)을 죽이고 타곤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다 끝내야만 하는 태알하인 게 너무 짠하고 안타까웠다. 한번씩 돌려보고 슬퍼하고 그랬다"라며 뭉클함을 드러냈다.
그런 태알하는 김옥빈에게 얼마나 사랑하는 캐릭터일까. 김옥빈은 "가장 사랑하는 인물을 꼽자면 첫 번째는 영화 '박쥐'의 태주, 두 번째는 드라마 '유나의 거리'에서 유나, 세 번째는 '연애대전'의 여미란. 태알하는 그렇게 치면 네 번째"라고 했다. '박쥐'가 김옥빈의 인생작이고 '유나의 거리'는 타이틀 롤, '연애대전'은 열망 강했던 로맨스라는 것을 감안하면 판타지 장르인 데다 강렬한 존재감의 태알하의 순위를 납득할 만 했다.
특히 그는 "태알하 역할을 하면서 마지막에 느낀 건데 어찌됐건 은섬과 타곤을 보조하는 빌런이었다. 제대로 된 빌런을 하고 싶더라.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렸다. 메인 빌런을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웃었다. 이어 "너무 재미있더라. 제대로 된 빌런을 만나봐야겠다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강렬한 욕망의 캐릭터로 소비되는 것에 대해서도 "아직 완벽하게 소비가 안 된 것 같다. 100% 폭발한 느낌은 아니었다"라며 "아직도 갈증이 있다"라고 털어놨다.
현재 김옥빈의 가장 큰 고민은 중년을 바라보며 배우로서의 전환점을 겪는 것이라고. 그는 "어찌됐든 40대, 50대가 될 텐데 그때도 꾸준하게 연기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연기자로 성장을 하고 이미지를 어떻게 갖게 될지가 고민이다. 요즘 제 관심사가 선배 연기자분들에게 꽂혀 있다"라고 했다.
이어 "너무 많은 선배님들을 보고 있다. 요즘에는 작가님들이 '나이 얘기 좀 그만해. 너 나이 안 많아'라고 해주신다. 그런데 저는 '잘 늙는 것'에 대한 관심사가 크다. 외모가 아니라 연기자로서 잘 익어가는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큰 상태다. 요즘 선배님들 보면서 많이 연구하고 보고 있다"라고 했다.
영화 '여고괴담4'로 데뷔해 여고생부터 여걸 태알하까지. 돌아본 시간들에 대해 김옥빈은 "저 어릴 때 연기 창피해서 못 본다. 부끄럽다"라고 웃으며 "저 스스로도 성장을 한 것 같다. 과거에 어떤 미숙했던 시절을 지나 지금도 배워가는 과정이지만 신입사원도 연차 쌓이면 잘하지 않나. 저도 임원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과장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또한 가장 큰 성장판에 대해 "두 번 정도 성장을 한 것 같다. '박쥐' 때 크게 했다. 그 전까지는 아기였다. 그런데 좋은 현장에서 대선배님들 연기, 행동하는 거 보고 곁눈질로 성장했다. 그리고 '유나의 거리' 때. 그 때 촬영 현장 너무 힘들었다. 50부작을 7개월에 찍어야 해서 잠을 거의 못 잤다. 그 현장에서도 선배님들이 정말 많았다. 현장에 선배님들이 있으면 배울 게 많아서 좋다. 연기자로서 멘토를 많이 만나지 못해서 늘 배우고 싶고, 배우고 싶은 목마름이 컸는데 두 현장엔 선배님들이 많아서 좋았다"라고 힘주어 밝혔다.
주로 '어려운 작품을 골라한다'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그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재미있어서 고르는 거다. 고생해야 하는 팔자인가 보다. 심시한 걸 못 견딘다. 갈등이 심하지 않고 심심해 보이는 캐릭터를 못 견뎌 한다. 사건의 중심에서 회오리를 치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라며 웃었다.
이어 "제 삶이 평온해서 작품을 그렇게 찾는 것 같다. 조금 심심하다. 워낙 집순이이기도 하고 현장에서 노는 게 제일 재미있어서 그런 것 같다"라며 "과거엔 힘들었던 일들도 그 당시에는 힘들었을지 몰라도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다. 그래서 얘기할 게 없어지는 캐릭터"라고 자평했다.
그런 김옥빈이기에 연기에 대한 고민도 주로 혼자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간다고. 같은 연기자인 친동생 채수빈에 대해서도 그는 "'이런 캐릭터가 있는데 어때?' 정도는 묻지만 주로 혼자 연구한다"라고 했고, "'연애대전' 때 딕션에 대해 고민이 있었는데 다 늦어서 30대도 넘어서 발음 교정 선생님을 찾아갔다. 나름 훈련한 효과는 있었다. 돈 쓴 보람이 있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끝으로 그는 '아스달' 시리즈를 아껴준 시청자들에게 "이 작품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 어려웠지만 잘 적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응원의 글을 보내주신 분들이 많다. DM이나. 일일이 인사는 못 드렸지만 태알하 캐릭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서 너무 고맙고 힘이 났다. 그런 사랑을 받았던 만큼 앞으로도 좋은 드라마와 영화를 만나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 monamie@osen.co.kr
[사진] 고스트 스튜디오, 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