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악’ 자살하려는 위하준 굳이 사살한 지창욱의 의도는?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10.26 09: 32

[OSEN=김재동 객원기자] “내가 아무리 죄인이더라도 그 사람 믿음을 이용하고 속이는 건, 그건 죄가 아녜요?(정기철)”
“죄 맞아. 분명 우리는 죗값을 치러야 할 거야. 살았을 때가 아니라면 죽어서라도.”(유의정)
“살아서 죗값 치러야 할 거야. 두 사람 남은 인생 절대 행복할 수 없을 테니까.”(정기철)

정기철(위하준 분)의 권총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했을 때 박준모(지창욱 분)의 권총이 발사됐다.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이 정기철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자살하려는 정기철을 굳이 사살한 박준모의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일단은 배려의 인상이 짙다. 박준모는 성당을 다녔다. 교리상 자살은 죄악으로 치부된다. 그 죄를 준모가 대신한 것일 수 있다.
그 배려는 또 아내 유의정(임세미 분)을 향한 것일 수도 있다. 정기철의 자살은 특히 유의정을 겨냥한 저주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좋아해준 남자다. 자신을 위해 암흑가에서 벗어나려던 남자다. 그런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은 평생을 갈 수 있다. 박준모가 총을 쏜 것은 정기철 죽음의 책임을 혼자 감당함으로써 유의정만큼은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일 수 있다.
한편으론 질투의 소산일 수도 있다. 마지막 검거 작전서 박준모가 정기철을 풀어준 것은 함께 한 시간동안 쌓인 공감과 의리가 작용해서일 것이다. ‘사라져라. 조직에게도, 경찰에게도 쫓기는 몸이 됐으니 어디 멀리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말고 소원이라던 평범한 삶을 꾸려보아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헌데 의정과의 보금자리인 자신의 집에 찾아왔다. 그 위험한 처지에도 의정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하는 기철의 행태가 질투났을 수 있다. 이미 의정의 목덜미에서 정기철이 선물한 목걸이를 보았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을 세워두고 의정에게 “날 향한 마음에 진심은 없었냐?”고 묻고 있다. 그리고 의정은 “없었다”는 말 대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두루뭉술 답하고 있다. 내 아내를 향한 목숨 건 그의 사랑은 질투를 부를 만 하다.
아니면 의정과의 인연을 매조짓겠다는 결심일 수도 있다. “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의정이 묻기 전에 박준모는 이미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강남연합을 습격한 재건파와 피범벅이 되어 사투를 벌였을 때, 두려움에 질린 의정의 표정을 보고 직감했을 것이다. 자신은 더 이상 의정이 사랑한 박준모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녀가 사랑한 성실하고 순박한 박준모는 더 이상 없다. 남의 피를 보는데 서슴치 않던, 그날의 그 야차의 모습은 의정의 남은 평생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또한 수사상 만났지만 해련(비비 분)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무시못할 상황이다. 규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의정만을 향했던 예전 자신의 순정이 오염된 것만은 분명하다. 본인도 그럴진대 기철의 애정공세에 놓였던 의정의 순정은 어떨까? 그리고 그렇게 한번 자리잡아 버린 그 의구심은 남은 세월 본인과 의정을 얼마나 좀먹어 갈까?
어떤 이유로 발사됐든 자신의 총에 맞은 정기철을 감싸 안은 의정을 지켜보며 준모는 전화를 건다. 119가 아닌 경찰에. 그리고 말한다. “정기철, 검거했습니다.”
어차피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이미 죽을 각오를 한 정기철이다. 그가 죽는 게 맞다. 그를 위해서도, 또 망가지긴 했지만 의정과 자신이 그나마 살아가기 위해서도. 그리고 최선은 자신이 ‘눈 앞의 살인자’가 돼 의정을 떠나는 것이다.
정기철의 묘소를 찾았을 때 이미 놓인 꽃다발엔 기철이 의정 목에 걸어줬던 목걸이가 매어 있었다. 준모는 그 옆에 의정과의 결혼 반지를 빼놓는다. 두 사람의 이별은 그런 정도로만 그려졌다.
기억에 언더커버를 다룬 영화 중 가장 먼저 본 것이 알 파치노, 조니 뎁 주연의 ‘도니 브레스코’(1997년)다. 1970년대 FBI가 뉴욕 마피아 보나노 패밀리를 대상으로 시도한 잠입수사 ‘도니 브레스코 작전’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실명 조지프 D. 피스톤 요원은 ‘도니 브레스코’(조니 뎁 분)란 이름으로 패밀리 간부 레프티(알 파치노 분)에게 접근, 조직 생활을 시작한다. 깡패들과 어울리는 삶이 이어지면서 도니 브레스코는 실제 범죄에도 가담하며 망가져 간다. 화목했던 가정은 분란의 소굴이 되고 FBI는 믿지 못할 조직으로 느껴지며 그럴수록 레프티와의 의리에 연연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작전은 성공했다. 영화 말미 도니 브레스코가 언더커버임을 알게 된 레프티는 아내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암전된 화면 속 들려오는 총소리. 레프티가 도니에게 전해달란 마지막 말은 “누구라도 상관 없었지만, 그나마 너여서 다행이었다.”다.
어쩌면 정기철이 박준모의 집을 찾은 것도 같은 이유일지 모른다. 준모의 총에 맞고 죽어가면서 남기고 싶었던 말도 “날 끝장 낸 게 너여서 다행!” 아니었을까?
도피처에서 준모가 기철에게 물었다. “사장님, 사장님이 예전에 저한테 그랬죠. 정 힘들다 싶으면 멈추라고. 근데 사장님은 왜 안 멈췄습니까?”
기철이 답했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준모가 되묻는다. “아니 솔직히, 우리같은 놈들이 평범하고 싶다는 거. 그거 욕심 아닙니까?”
꿈이 커야만 과욕이 아니다. 가진 게 미천하면 평범한 꿈도 과욕일 수 있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처절한 액션과 느와르적 낭만을 살린 채 ‘최악의 악’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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