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이적 첫 해부터 수술로 끝, 눈물 흘렸던 '유리몸' 투수가 웃고 있다…텍사스 숨은 공신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3.11.02 08: 00

사이영상 2회 투수 제이콥 디그롬(35)은 텍사스 레인저스로 FA 이적 첫 해부터 6경기(30⅓이닝) 만에 시즌 아웃됐다. 지난 6월 토미 존 수술이 확정되면서 인터뷰 중 눈물을 흘리며 좌절감을 드러냈다. 최소 1년 재활이 걸리는 수술로 내년 후반기에야 복귀를 기대할 수 있다. 5년 1억8500만 달러 거액에 FA 영입한 텍사스로선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앞서 2년간 뉴욕 메츠에서 옆구리, 전완근, 팔꿈치, 어깨 등 크고 작은 부상 여파로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지 못한 ‘유리몸’ 리스크가 빠르게 터졌다. 
하지만 텍사스는 시즌 막판까지 아메리칸리그(AL) 서부지구 1위 싸움을 펼치며 와일드카드로 7년 만에 가을야구 무대에 올랐다.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탬파베이 레이스를 2연승으로, 디비전시리즈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3연승으로 스윕하면서 기세를 올린 뒤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4승3패로 꺾고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3승1패로 앞서며 1961년 창단 이후 첫 우승에 1승만 남겨놓고 있다. 디그롬이 시즌 아웃됐지만 데인 더닝을 비롯해 나머지 투수들이 공백을 메웠다.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맥스 슈어저, 조던 몽고메리가 합류해 선발진에 힘을 실었고, 강력한 타선의 힘이 더해져 어느새 정상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 텍사스 제이콥 디그롬.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텍사스 제이콥 디그롬.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수술 후 재활 중으로 공을 던질 수 없는 상태이지만 디그롬도 선수단과 동행하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폭스스포츠’에 따르면 디그롬은 선수단의 분위기 메이커로 포스트시즌 기간에도 큰 힘을 보태고 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디비전시리즈 2연승 후 볼티모어에서 댈러스로 이동하는 비행기에서 디그롬은 승무원을 통해 장염을 앓고 있던 맥스 슈어저에게 “다른 사람한테 옮지 않도록 마스크를 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아니라 브루스 보치 텍사스 감독의 지시라는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디그롬의 장난에 속은 슈어저는 비행 3시간 내내 마스크를 썼다. 보치 감독은 “아마 슈어저가 나를 욕했을 것이다”며 웃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익명의 텍사스 선수는 “3시간 동안 슈어저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우리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는 장난인 줄 전혀 몰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음날 홈구장 글로브라이프필드 훈련 때 디그롬의 부탁을 받은 보치 감독이 “대체 왜 마스크를 쓰고 있었냐?”고 물었고, 슈어저는 “당신이 쓰라고 했잖아”라고 답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발뺌하는 보치 감독의 모습에 텍사스 선수들은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슈어저는 일주일 후에야 이 장난의 배후가 디그롬이라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들었다. 
[사진] 텍사스 제이콥 디그롬.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텍사스 제이콥 디그롬.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텍사스 투수 윌 스미스는 “디그롬은 플로리다 촌놈이고, 장난을 좋아한다. 슈어저를 향한 장난은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였다”며 웃은 뒤 “그는 진지할 때 무척 진지하다. 젊은 선수와 베테랑 선수 가리지 않고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밝은 분위기를 만들면서 남다른 통찰력으로 선수들에게 야구적인 도움도 주고 있다. 
텍사스가 휴스턴과의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에서 호세 알투베에게 9회 역전 스리런 홈런을 맞고 패한 뒤 2승3패 벼랑에 몰린 뒤에도 디그롬이 선수들 앞에 나섰다. “우리는 정말 좋은 경기를 했다. 양 팀 다 좋은 팀들이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반격하느냐가 중요하다. 여러분이 다음 경기를 잡을 것이라 믿는다”고 격려한 디그롬의 말처럼 텍사스는 6~7차전을 잡고 휴스턴을 4승3패로 꺾었다. 
텍사스 외야수 트래비스 잰코우스키는 “디그롬이 경기를 뛸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프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투수가 부상을 당한 뒤 월드시리즈를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입을 삐죽 내밀고 있지 않는다. 팀을 위해, 우리를 위해, 자신을 위해 이기고 싶어 한다. 승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고 고마워했다. 
[사진] 텍사스 제이콥 디그롬.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텍사스 제이콥 디그롬.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투수 더닝도 “디그롬은 말이 많지 않지만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코리 시거도 그렇고 자신만의 루틴을 고수하며 일상에 충실하지만 무언가를 말할 때는 그 목소리가 잘 들린다. 두 사람 다 모범을 보이는 선수들이고, 그들이 무슨 말할 때는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디그롬이 미치는 영향력을 말했다. 
디그롬의 장난에 속은 슈어저도 “그는 A플러스 동료다. 그가 지금 다쳤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얼굴에 큰 미소를 짓고 있고, 그건 전염성이 있다.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최고의 팀원이 되어주고 있다. 그는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클럽하우스에서 확실히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고 치켜세웠다. 
[사진] 텍사스 제이콥 디그롬.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진] 텍사스 선수들이 월드시리즈 5차전 승리 후 기뻐하고 있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