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러니까 이 남자가 그 남자였다. 삼신할미가 굴려준 인연의 실패 끝에 있던 이. 그 긴 세월을 흘려보내고 이제서야 알아보다니. 아둔하고도 아둔하구나, 길채야!
4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연인’의 유길채(안은진 분)가 마침내 꿈 속의 낭군을 만났다. 아름다웠던 능군리 시절, 정체 모를 연정에 달떴던 처녀 시절, 꿈길에 만났던 남자다. 그 꿈길은 험난했다. 길채 앞에 떨어진 실패가 구르기 시작했었다. 몇 개의 산과 몇 개의 골을 지나도록 길채는 그 실패 뒤를 쫓았었다. 그리고 다다른 어느 바닷가. 실패가 머문 그 자리에 그가 있었다.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꿈 속의 길채에겐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가 전해주는 한없는 안도감, 한없는 충만감만으로도 충분했다. 길채는 그런 그를 ‘낭군’이라 불렀었다.
그 남자를 그 시절엔 연준(이학주 분)도령이어야 한다 우겼었다. 병자년 오랑캐의 난 동안엔 살기 바빠 떠올리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구원무와 혼인할 땐 기어이 까맣게 잊고 말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깃장이 아니다. 어깃장일 수가 없다. 나에게 매달려도 보았고 나 때문에 죽을 고비도 넘긴 이다. 그래 놓고 원 없이 다해 봤다며 날 온전히 내 자리로 돌려보낸 이다. 가난한 길채도, 발칙한 길채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길채라도 길채이기만 하다면 족하다는 남자다. 그러니 이 남자가 아닐 수 없다. 오랑케에게 욕을 당한 길채조차 괴로웠을테니 안아주겠다는 남자다. 천신만고 끝에 다다른 바닷가에서 한없는 안도감을 안겨주었던 꿈속의 낭군이 이장현(남궁민 분), 이 남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일 수 있겠는가.
그 오랜 세월 옆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낭군이 말한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알게 됐지. 난 단 한번도 그대 아닌 다른 사람 원한 적 없었다는 거.” 그러면서 다정하게 물어온다. “오늘 당신 안아도 될까?” 그 대적불가, 불가항력의 목소리에 저항이 가당키는 한 것인가? 그렇게 그 밤 장현과 길채는 간난고초 끝이라 더욱 소중한 첫날 밤을 함께 했을 것이다.
드라마 ‘연인’은 대놓고 사랑얘기다. 프로그램 소개란에 ‘세상 모든 일에 자신만만했으나 자신이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변하는 지도 몰랐던 어리석은 사내, 세상 모든 사내의 마음을 사로잡고서도 자신이 진짜 연모하는 사람이 누군지 깨닫지 못했던 어리석은 여인. 사랑에 한없이 어리석었던 이 사내와 여인, 과연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 적고 있다.
17회를 이어오며 성장한 어리석은 사내와 여인은 일단 사랑은 이루었다. 이 둘이 이룬 사랑은 무얼까? 우리 말 ‘사랑’의 어원에 대해 상대를 헤아린다는 뜻인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가난한 길채도, 발칙한 길채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길채라도 길채이기만 하다면 족하다는 남자 이장현은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길채는요?”라 물을 때 유길채는 “아직 나를 모르겠소?”란 장현의 물음처럼 장현을 헤아리는데 실패했지만 “괴로웠을 테니 안아주겠다”는 장현의 품에서 마침내 장현을 속속들이 헤아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니 작가가 의문부호를 남겼던 두 사람의 사랑은 명확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작의가 던진 또 하나의 의문 부호 ‘그래서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란 대목은 결판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과연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란 의문문 다음에 곧바로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 자체에서 어떤 의도가 느껴진다.
심양을 떠나올 때 장현은 각화에게 “조선을 다녀온 후 곁에 남겠다.”고 약조했다. 길채가 무사히 구원무와 가정을 꾸려가리라 믿었을 때 얘기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길채는 이혼했고 환향녀란 세간의 경멸 속에서 여전히 힘들게 삶을 꾸려가는 중이다. 게다가 이제는 가로막는 신분의 벽도 없어졌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끝이다. 도저히 각화의 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이다.
하지만 심양에 남겨진 양천(최무성 분) 등 조선 포로를 구명하기 위해서라도 장현은 다시 길채를 떠나 심양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심양에서 예정된 장현의 행보는 청의 권력자 각화뿐 아니라 제 안위를 위해 잔뜩 겁먹은 인조까지 자극하는 행보일 수 있다. 이미 인조는 소현세자에 대한 질투 때문에 속환 조선 포로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의주부사를 처벌한 전례가 있는 판이다.
그러니 각화 몰래 조선 포로를 빼돌리려는 장현은 조선과 청, 두 나라 수뇌부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서슬퍼런 살아있는 권력의 표적이 되고서도 장현과 길채가 사랑한 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순애보를 대표하는 사례로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여자는 오지 않고 소나기가 내려 물만 밀려든다. 미생은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성어다. 이는 ‘송양지인(宋襄之仁)’과 함께 융통성 없고 어리석은 대표적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그래서 미생은, 그래서 장현과 길채는 과연 어리석기만 한 것일까? 영활한 기책조차 없는 바에야 연인에 대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헤아림과 신뢰를 지켜내는 것은 어리석을지언정 낭만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러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런 우매한 낭만일 수 있다. ‘연인’의 이장현과 유길채를 응원하게 만드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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