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야 가자"의 '애기'가 '강남순 엄마'가 됐다. '힘쎈 여자 강남순'으로 건재함을 알려준 배우 김정은을 만나봤다.
김정은은 지난 16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JTBC 토일드라마 '힘쎈 여자 강남순(약칭 강남순)'을 비롯해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힘쎈 여자 강남순'은 선천적으로 어마무시한 괴력을 타고난 3대 모녀가 강남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신종마약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 글로벌 쓰리(3) 제너레이션 프로젝트고, 지난 2017년 인기리에 방송됐던 JTBC 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의 후속작이다. 이 가운데 김정은은 괴력의 모녀 삼대 중 이대째인 황금주 역을 맡아 모친 길중간(김해숙 분)과 딸 강남순(이유미 분)과 열연을 보여줬다.
지난 2016년 홍콩의 국제금융회사에 다니는 재미교포 남편과 결혼한 김정은. 미국, 홍콩,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그는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가장 최근 작품은 지난 2020년 방송된 드라마 '나의 위험한 아내'로, '강남순'은 김정은이 3년 만에 출연하는 한국 드라마다.
김정은은 오랜만에 임한 드라마에 대해 "물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라고 웃으며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작품을 할 때 장점이 눈에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많은 것들을 둘러볼 새 없이 스쳐지나갔는데 지금은 현장 자체에서 소통하고 연기하고 이야기하는 자체로 감사하면서 찍었다. 더군다나 얼마나 환경이 좋아졌나. 저는 더 있고 싶은데 12시에 집에 가라고 하더라. '벌써 끝났나? 무슨 장난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힘들지 않았다.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게 찍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맡은 황금주는 괴력의 소유자이자 자존감 드높은 한강 이남 최고 현금 졸부인 인물이다. 모든 걸 '힘' 아니면 '돈'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이 통쾌함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해 '힘쎈 여자' 시리즈 팬들에게 화끈한 매력의 소유자로 호평받았다.
김정은은 "조선시대에 왕을 많이 연기한 분들이 촬영장에서 왕처럼 굴어야 하는 것처럼 괴력을 갖고 있고 돈이 너무 많아서 모든 걸 플렉스로 해결하는 역할이니까 스트레스가 촬영장에서 해소되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라고 웃으며 "감독님이 너무 배우를 사랑하고 배우는 분이라 단 1도 외롭지 않았다. 배우들이 외롭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인간관계의 문제라 생각한다. 사람 사이에 일이니까. 혼자 고독하게 캐릭터를 돌파하기 때문에 외로운 거다. 저는 저 혼자 한 게 아무것도 없다. 감독님과 같이 사랑하면서 현장에서 했기 때문에 제가 너무 감사했다"라고 고마움을 밝혔다.
특히 그는 황금주의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격을 코미디로 승화한 것들에 대해 "감독님께 모든 걸 맡겼다. 제가 한 건 감독님이 제게 어떤 디렉션을 주실 수 있도록 한 것 뿐"이라며 "코미디가 균형을 잡는 게 정말 중요하다. 자칫 선을 넘으면 과하고, 또 부족하면 안 웃기다. 그 균형을 감독님이 정말 잘 잡으시더라"라며 감탄했다.
무엇보다 그는 황금주의 '졸부' 캐릭터 설정을 극찬했다. 김정은은 "황금주는 졸부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며 '나는 졸부가 부끄럽지 않아', '나는 돈XX 하는 게 좋아'라고 말하는 캐릭터다. 힘으로 해결하는 건 힘으로, 돈으로 해결하는 건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황금주는 정의롭다. 돈으로 플렉스 하는 인물이 정의롭다는 게 처음엔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의 정의는 부와 반대되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이런 정의를 많이 얘기하고자 했던 사람으로써 그런 것에 목마름과 답답함이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가난한 정의가 누구를 위한 정의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의롭기 위해서 내 만족을 위해서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게 정의일 수 있나 싶었다. 오히려 황금주처럼 플렉스 하면 모두가 행복해 하는 게 진정한 정의가 아닐까 싶었다. 현시대의 새로운 정의"라고 강조하며 "말로 옮기기 위험한 부분도 있지만 제가 20년 전에 '부자 되세요!'를 외칠 때 사람들은 그걸 천박하다고 했다. 그런 말을 어떻게 대놓고 하냐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좋아하더라. 사실 모두가 듣고 싶은 말이었던 거다. 일맥상통하는 얘기인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황금주는 딸 남순이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돈을 쓰고 다닌다. 내 방식 대로 은혜를 갚는 방법이라고. 그 걸 받아서 다시 코인으로 망하던 그건 그 사람들의 몫이다.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남순이를 대하는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주의 방식대로 도움을 준 사람들을 기쁘게 한 건데 현시대가 반영하고 요구한 정의가 아닐까 감히 생각 해봤다. 그리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부분이다. '돈은 이렇게 써야지!'라고 생각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김정은은 "괴력은 있는데 구구단도 못 외우는 황금주 설정도 재미있었다. 작가님이 만들어둔 현명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힘도 세고 정의롭고 돈도 많은 황금주가 너무 완벽하기만 하면 마음 놓고 좋아하기 힘들었을 거다. 코믹한 감성을 철저하게 B급으로 가져간 게 오히려 정말 똑똑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김정은은 타이틀 롤이 아닌 주인공 강남순의 엄마 황금주 역으로 주목받은 점에 대해서도 남다른 만족감을 보였다. 그는 "예전 작품들에서는 주인공에 분량이 몰렸다. 작가님들이 여러 군상을 그리고 싶어했지만 기획 단계에서 항상 무너졌다. 개런티적인 부분도 있을 거다. 남녀 주인공 둘에게만 분량이 쏠렸는데 오히려 요즘엔 다양한 주연 형태가 풍부해진 것 같다. '저 사람이 다 나올 수 있어?' 하는 기획도 많다. '힘쎈 여자' 세 모녀가 가능한 것도 그 덕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황금주가 '가모장주의'라 불릴 정도로 통쾌한 여성 캐릭터로 호평받은 것에 대해 "'파리의 연인'에서처럼 캔디형 여자 주인공, '애기야 가자'에 끌려가던 '애기'는 이제 못하는 나이가 됐다"라고 웃으며 "그래서 배우가 시간을 잘 보내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감사하게도 좋은 쪽으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생긴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는 "제게도 과도기가 있었다. 저로 하여금 아무것도 못하고 민폐만 끼치는 캐릭터를 반복해서 요구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게 주류를 불편하게 하는 정의로움으로 비칠 수 있다는 벽에도 부딪혔다. 그래서 중심에서 살짝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제 캐릭터의 정의가 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저를 망가트리는 시간은 아니었다. 저를 피폐하거나 결핍시키지 않은 시간을 잘 보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어느 순간에 '강남순' 같은 작품을 만나니까 너무 행복하다. 제가 한 거라고는 빠른 결정밖에 없다. '백미경 작가님? 무조건 할게'라고 했다. 시나리오도 안 봤다"라고 웃은 뒤 "예전 기억 속에 '파리의 연인'을 보던 분들이 남자 하나에 기대던 강태영(김정은 분)이 바뀐 만큼 시대가 바뀐 걸 받아들여주시는 게 재미있고 신기하다. 그 변화에 편승해서 발을 맞춰 흐름을 타는 것도 행복하다"라고 했다.
그는 "캔디도 나이도 있다"라며 "무엇보다 '임팩트, 카리스마, 섹시' 이런 이미지를 얘기해주시는 게 너무 좋다. 성숙한 카리스마에 목말랐다. 어렸을 땐 러블리, 귀여움, 청순만 해야 했다. 반대되는 이미지를 내가 하기 어렵나 생각했는데 '강남순'에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라며 웃었다.
"가족들도 너무 좋아했다"는 김정은은 "신랑 친구들도 좋아해줬다. 외국 분들이다 보니 이야기의 코미디를 정말 좋아하더라"라며 놀라워 했다. 해외 유명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강남순'에 대해 호평을 남긴 것에 대해서도 그는 "정말 신기했다. 내가 아는 그 나오미 캠벨이 맞나 싶었다. '마이클 잭슨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그 나오미 캠벨?'이라고 했다"라며 기뻐했다.
그는 "배우나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의도한 바를 알아주시는 것만큼 기쁜 게 있을가 싶다. 이런 의도로 했는데 딱 알아차려 주시고 웃어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하고"라며 "'너 보려고 본다', '기다렸다'는 말이 너무 좋았고 감사했다. 배우가 아무리 뭔가를 해도 인정받지 못하면 씁쓸한데 반대로 기대해주신다고 하니 제게 그만큼 기쁜 일이 없다"라고 밝혔다.
끝으로 김정은은 "더 열심히 하고 황금주의 대인배 정신을 잊지 않고 현장에서 좋은 화합을 하며 다음 스텝을 정말 밟아보고 싶다"라며 "감히 할리우드 같은 데에서 좋은 게 오면 정말 해보고 싶다. 정말 해보고 싶다. 김칫국을 마시나 이런 생각도 들지만. '강남순'이 '도봉순' 스핀오프인데 우리도 마블처럼 브랜드가 된다면 좋겠다. 저희도 '도봉순'의 박보영, 박형식 씨가 짧게 나왔지만 시청자 분들이 너무 열광해주지 않았나. 저 또한 '강남순'의 확장된 시리즈를 한다면 거기에 나오고 싶다. 우리끼리 어벤져스 하나 꾸려보자. 그런 작품 많이 만들고 봐 달라"라며 웃었다. / monami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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