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에서 열연한 배우 이학주가 이상과 현실 사이 인생의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학주는 22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소속사 SM C&C 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내 취재진과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연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연인'은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과 백성들의 생명력을 다룬 휴먼역사멜로 드라마다. 이 가운데 이학주는 유길채(안은진 분)의 사랑을 받았으나 경은애(이다인 분)와 사랑을 이루는 유생 남연준 역으로 열연했다.
"촬영하면서 사람들이랑 정이 들어서 아쉽기도 하다"라고 운을 뗀 이학주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저한테도 의미가 깊은 작품인 것 같다"라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실제 '연인'은 촬영만 11개월 가까이 진행하고, 20부작으로 구성됐다가 인기 속에 1회 연장하며 21회로 종영한 바. 이학주는 종영 다음 날인 지난 19일 치러진 종방연에서 3차까지 모두 참석하고 새벽 3시에 귀가하며 작품에 대한 의리외 애착을 드러냈다.
밝은 작품의 성적과 달리 극 중 연준의 최후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당초 연준은 능군리의 '아이돌'이라 불릴 정도로 아내인 은애 뿐만 아니라 여자 주인공 길채의 짝사랑까지 받고 흔들릴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글로만 접했던 전쟁을 병자호란으로 경험하며 현실의 무서움을 깨달았고,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자신이 지켜온 '예'와 '의'가 정도라는 생각에 철저한 이상주의자로 변모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주위 사람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경향을 보이기도 했던 점이다.
이에 연준의 최후는 속죄에 가까웠다. 아내인 은애와도 멀어졌다가 간신히 회복했을 정도. 이와 관련 이학주는 "안타까웠다. 저도 연준이를 연기하면서 이 친구가 나쁜 의도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치 않게 세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 같은데 실현 시키고 싶은 이상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걸 느끼니까 안타까웠다. 마음속으로 측은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한 연준의 마지막을 두고 '캐릭터 붕괴'라는 의견도 있던 바. 이장현(남궁민 분)이 길채를 "안아줘야지"라고 하는 것과 달리 은애를 다그치거나 스스로 죽음을 시도하는 모습들이 일례였다. 다만 이학주는 "저는 연준의 붕괴로 보진 않았다. 연준이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는데 이상을 버리지 못하는 게 안쓰러웠다. 마음은 누구보다 은애를 사랑하는데 오랑캐가 우리 사이를 버려놓은 것이 너무 슬픈 거다. 능군리에서 배운 대로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학주는 시청자들 사이 욕을 먹기도 했던 연준의 반응들에 대해 "실시간 톡 같은 시청자 반응은 안 봤다"라며 웃었다. 이어 "시청자 분들이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그렇지만 반응과 상관 없이 '조선'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아가 그는 "병자호란을 다루면서 높은 사람들을 다뤘는데 백성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밑에 있는 사람들을 조명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연인'을 선택한 이유를 강조했다.
더불어 "연준이 참선비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극 중 사람들이 그를 좋아해준 거라고 봤다. 그래서 조금 더 강직하고 우직한 모습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학주는 "초반에는 의도적으로 뺀 게 아니라 힘들어서 살이 계속 빠졌다. 그런데 너무 날카로워 보이는 것 같아서 오히려 파트2 때부터는 살을 찌웠다. 많이는 아니지만 한 3kg 정도"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이야 전쟁씬들은 춥고 힘들다고 봤는데, 감정적으로 힘든게 더욱 컸다. 특히 은애를 거절하는 장면들이 정말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내야 했다"라고 강조했다.
그 중에서도 이학주가 가장 힘겨웠던 씬은 무엇일까. 이학주는 "'제가 밥버러지 같다'라면서 저를 받아달라고 장철(문성근 분)께 청할 때 정말 제가 밥 버러지처럼 느껴졌다. 절박했다. 잘 해보겠다고 하면서 왕에게 뭐라 하고 감옥에 갇히고 길채는 힘든데 도와줄 수 없고. 그런 순간들이 저한테 크게 왔다. 감정들이 크게 왔다"라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연준이 길채에게 갖는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한 가족 같은 여인이라고 생각을 하긴 했다. 물론 중반부에서 잠깐 흔들렸다는 걸 내비치긴 했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건 아니다. 가족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했다"라고 명쾌하게 선을 그었다.
이 밖에도 '연인'에서 기억에 남는 씬에 대해 이학주는 "은애와 길채가 잡힐 뻔 했던 오랑캐를 죽이고 손을 씻는 모습이 기억에 남더라.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들의 대처들에 고통과 겁이 느껴져서 기억에 남는 씬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제 장면 중에는 '밥 버러지' 씬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대본을 볼 때부터 많은 분들이 '연인'을 보실 거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시청률이 오른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는 너무 좋았고 생각이 통한 거라 다들 기뻐하며 촬영했다"라고 전했다.
시청률 외에 인기를 실감한 순간에 대해 그는 "2주에 한번 부모님과 카페를 가거나 한다. 옆에서 알아보고 카페 사장님이 드라마 진짜 안 보는데 '연인'은 본다는 말도 해주시더라. 보통은 젊은 분들이 많이 알아봐주셨는데 '연인'을 하고나서는 젊은 분들도 그렇고 나이가 있는 분들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서 저도 부모님도 좋아했다. 밖에 나가서"라고 했다.
이어 그는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다. '밥 버러지' 씬 보고는 너무 좋았다고 부모님이 같이 전화를 주셨다"라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넷플릭스 '마이 네임', 웨이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등의 작품에서 호평받았을 때와 달라진 시청자 층을 실감했던 것이다.
그는 '연인'의 인기 이유에 대해 "새롭고 슬펐던 것 같다. 백성들의 삶을 조명해주는 것 자체가 포인트가 달랐던 것 같다. 거기에 절절한 사랑까지 있으니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라고 평했다.
그런가 하면 이학주는 첫 사극인 '연인'에 대해 "사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사극은 감정이 조금 세니까. 현대극보다 상황도 세고, 감정도 세지는 것 같더라. 그런 씬들도 있었고 또 사극에 재미가 있었다. 되게 만족하는 작품이다. 또 사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촬영 기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극이 주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평생 가보지 못한 장소들을 가보게 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가"라고 말했다.
이어 연준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 사람이 어떻다 판단을 하다 보면 바보 같은 면도 있어 보이더라. '이상'을 실현 시키려고만 하니까. 분별력이 그런 나의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시대에 있는 사람은 그럴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시대 안에 있으면 그 시대가 가진 생각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시대에서는 바보같다고 평가할 수도 있으니까.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라고 담담하게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연준이 같은 면이 저에게도 있는 것 같다. 이상적인 뭔가를 하려고 생각하고 노력한다. 그것이 부족한 것도 깨닫는 인간인 것 같다. 연기에 있어서도 정확하게 딱 준비해 가야지 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상황에 맞춰서 변화할 수도 있는 거고, 유연한 분별력 같은 게 있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런 것들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다"라며 "처음에 연준을 판단하려고 했다면, 나도 연준이 같은 인물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돌아섰다. 연준에 대해 조금 더 공감하면서"라고 힘주어 밝혔다.
'형사록'부터 '연인'까지 진지한 캐릭터들을 주로 맡았던 이학주.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서는 코믹도 어울렸던 그는 "그런 연기도 이제 하면 된다"라고 웃으며 "이거 할 땐 이렇게 하고, 저거 할 땐 저렇게 하고"라 담담하게 했다. 이어 "가벼운 캐릭터를 좀 해보고 싶긴 하다. 선호하는 캐릭터는 없는데 딱딱한 캐릭터를 해서 조금 풀어진 캐릭터도 해보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이학주에게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는 "시나리오가 재미있는 게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많이 봐주시는 게 좋은 것 같다. 내가 재미있게 읽는 게 중요하다. 재미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건 진짜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들이 있다.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긴 있다. 한 장르를 좋아하거나, 어떤 인물의 설정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글 자체가 재미있는 게 좋더라. 그때 그때 재미있는 게 있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연인' 이후에도 이학주는 쉴 틈 없는 작품 행보를 이어간다. 당장 오는 1월에는 티빙 새 오리지널 드라마 'LTNS'에 에피소드 주인공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강렬한 부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 대해 이학주는 "제 노출 씬은 없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해 기대감을 높였다. 단 이후 활동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해진 바 없다고.
지난해에도 '형사록'까지 꽉 찬 한해를 보냈던 그는 '연인'으로 보낸 올해에 대해 "너무 감사하게도 11개월이나 촬영할 수 있었다. 일은 계속 하는 게 좋아서 감사했다. 너무 큰 사랑을 받은 것 같아서 아주 잘 보낸 한 해가 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했다.
이어 "연말 시상식은 언감생심이다. 베스트 커플상은 은애보다는 장철 선생과 받을 것 같다. 은애한테 공로상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남편이라면 장현의 대사처럼 안아줬어야 한다. 그렇지만 연준은 그러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된다기 보다는 개 입장에선 그랬던 거다. 잘못됐다는 걸 마지막에나마 깨달아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이학주는 "여전히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생각에 매몰되지 않는 게, 항상 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 잘 챙기고"라고 덧붙이며 쓸쓸했던 연준과는 다른, 한 개인으로서의 성장과 변화를 짐작하게 했다. / monamie@osen.co.kr
[사진] SM C&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