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주위의 소리에 귀를 열고 의견을 청취한다. 결과적으로 만인의 연인이 돼준 드라마 '연인'을 긴 시간 진두지휘한 사람, MBC 드라마 '연인'을 연출한 김성용 감독을 만나봤다.
김성용 감독은 "끝나지 한 두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너무 힘드니까 진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라고 혀를 내두르며 종영 당시 상황에 대해 먼저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지만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해서 만전을 다 기울이고 끝나고 났더니 힘든 건 온 데 간 데 없고 마법처럼 너무 추억이 다 됐다.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냥 행복했다. 열흘 넘게 내일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기쁘다.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살마들이 많이 좋아해주고 기뻐해주니까. 이 작업의 결과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기쁘다"라고 작품을 끝낸 소회를 밝혔다.
"사실 대본을 안 보고 (연출을) 결정했다"는 김성용 감독은 "황진영 작가님을 너무나 좋아했고, 한번쯤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검은 태양' 중간에 마침 황진영 작가님의 '연인'이라는 사극이 있는데 연출해 볼 의향이 있냐는 제안이 왔을 때 너무 해보고 싶었다. 전 작품을 하고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 때 대본을 받고 처음 책을 읽었다. 어마무시했다. 대서사시더라"라며 웃었다.
이에 그는 "이 시대가 잘 담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는 "로맨스도 중요하지만 그게 현실감 있고 시청자 분들께 와닿으려면 이 시대가 주는 엄혹함이나 무거움이나 시대의 결핍이 얼마나 컸는지가 시청자들한테 확 와닿아야 인물의 관계도 그렇고 인물의 관계도 그렇고 사실감 있게 올 것 같고 시청자 분들이 재미있게 즐기실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 생각을 크게 했다"라고 연출적 포인트에 대해 밝혔다.
뜨거운 시청자 반응도 알았을까. 김성용 감독은 "매일 찾아봤다. 저에겐 너무 소중한 잣대였다. 커뮤니티 게시물부터 댓글도 다 봤다. 무엇보다 뜨거운 건 로맨스 반응이었다. 그 반응에 대해서 제작에 임하며 도움이 될 건 취했다. 저한테 상처가 되는 것도 있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 연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보니 그런 이야기는 가급적이면 제가 인정하면 쓰게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건 걸렀다"라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장채 커플이 워낙 뜨거웠는데 이게 중요하다 보니 다른 주변인물들도 중요하지만 장채 커플 중심으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전쟁 당시 피난민들, 조정에서 대립한 대신들, 인조의 이야기, 포로로 끌려간 포로들의 이야기에 시청자들 반응이 뜨겁더라.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고 이야기를 했고, 한 때는 이야기가 너무 퍼지는 게 아닌가 곁가지에 대한 우려도 들어서 조금 더 오므리고 압축해야 하나 생각도 했다가, N차 관람하는 시청자들이 그 이야기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주시니 그것도 놓치면 안 된다고 봤다. 작가님도 소중하게 생각해주시고 저도 거기에 뿌리가 있다고 봐서 심혈을 기울였다"라고 고백했다.
그 중에서도 '연인' 제작진이 방점을 찍은 건 '포로 이야기'였다. 김성용 감독은 "처음에 작가님과 대본 논의를 할 때 '병자호란'을 떠올리면 남한산성에서 버틴 기간이 생각나는데 그건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접했던 것 같더라. 그 부분에 대해서 부족함 없이 최대한 잘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전에 없던 내용과 화면이라면 '포로 이야기'겠다 싶었다. 단 한번도 소현세자가 심양에 끌려간 생활이 어땠는지, 소현과 강빈이 어떠한 고초를 겪고 인정받았는지 그 주변 포로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런 이야기들이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서 작가님이 야심차게 하고 싶어 하셨다"라고 말했다.
또한 "저 역시도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다룬 컨텐츠를 본 적이 없었다. 심양에서 돌아온 이후는 봤지만. 그래서 이걸 잘 만들면 정말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칫 밀도가 떨어지면 내용적으로 지루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떻게 보면 작가님은 확신을 가지셨는데 저는 시청자들을 생각했을 때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다 보니까 '현실감'에 방점을 찍었다. 포로 시장도 최대한 자료조사를 하고 미술 준비를 해서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현실감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인원이 더 잔혹하게 고초를 겪었다고 들었다. 그걸 어떻게 하면 최대한 간접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시청자들이 이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잔인하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대사나 분장과 미술로면 표현한다기 보다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려고 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보기에 너무 잔인했다고 하신 분들도 있었지만 그런 차원에서 수위를 조금씩 조절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려고 편집에서 노력을 많이 했다"라고 강조했다.
그 밖에도 '연인'은 대하사극 만큼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김성용 감독은 "만주족 노래는 특히 임팩트가 있던 것 같다"라고 웃으며 "당연히 고증은 신경 썼다. '현실감'을 반영하려면 시청자가 그동안 봤음직한 퓨전 판타지로는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 진짜를 찾아서 보여줘야 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 "의상감독, 미술감독, 모든 관계자들한테 고증에 만전을 기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만주어를 찾아봤다. 청나라 장수들이 한국어를 쓰면 웃기지 않겠나. 통역관 정명수도 캐릭터로 존재하는데. 드라마적으로 손해보는 부분이 분명히 생기니까 고민이 많았는데 전문가들이 도움을 많이 줬다. 드라마적으로 신경을 쓰면서 고증에 문제가 되지 않게 해주신 게 의상감독님, 미술감독님 등이셨다. 청나라 복식도 정말 어려웠다. 상인 복장을 벗어던지는 군사들의 모습이 제일 어려웠다. 그냥 흘러가는 그림일 수 있는데 설계하고 계획할 때 말을 타면서 달리고, 옷도 벗어 던지고, 갑주가 보여야 하고 조건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해질녘이어야 하고. 그걸 설계하는 데 힘들었는데 C팀에서도 도움을 많이 주고 액션팀도 신경을 많이 써줬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촬영 감독도 콘티 회의부터 여러 차례 준비를 했다"는 그는 "초반이라 더 공을 들일 수 있었다. 최대한 고증에 많이 써서 준비하다 보니 '이게 맞니, 틀리니'로 시간을 보내는 건 없었다. 절대적 방침이 고증에 신경을 써달라고 했다. 그럼에도 못 맞춘 부분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신경 썼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김성용 감독은 "작가님은 더 표현하고 싶어하셨는데 지금에서야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솔직히 심양 이야기가 걱정이었다. 혹시나 시청자들이 재미를 못 느끼면 어떡하나 싶었다. 길채와 장현의 중심이 아니라 장현이 서포트하는 이야기라, 주인공 이야기가 아닌 시청자들이 얼마나 재미를 느끼고 바라봐줄까 걱정했는데 작가님 믿음을 가진게 도움이 된게 컸다. 이야기 자체가 내가 불안하더라도 이야기 힘을 믿고 가자는 마음이 컸다. 그런 지점에서 작가님이 소현의 성장, 강빈의 성장, 잘 그려주신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어려운 장면이 너무 많았다"라며 웃은 김성용 감독. 그는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부담스러웠고 잘 표현하고 싶던 회의도 많이 한 건 '길채의 꿈 씬'이었다. 초반에 길채가 꿈에서 낭군님을 찾아가는, 매일밤 꾸는 그 꿈이 장현과 길채 커플의 정체성이라고 봤다.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보는 즐거움도 있고 드라마의 전체적인 톤앤매너도 선보일 수 있으며 자칫 길거나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대사가 한 마디 없는 씬이다 보니 걱정이 컸다. 막상 찍는 게 어렵다기 보다는 어떤 계획을 배우고 어떤 톤을 가져갈지의 고민이 오랜시간 걸렸다. 그 장면이 제일 어려웠다"라며 "작가님도 워낙 씬을 스펙터클하게 잘 쓰신다. 영상으로 구현하기가 어렵다. 대본으로는 바로 읽히는데 '이걸 어떻게 찍지?'라는 생각부터 든다. 그런데 다 의미가 있어 쉽지 않았다. 제가 읽은 감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게 관건이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성용 감독은 두 배우 남궁민, 안은진에 대한 호평도 잊지 않았다. 그는 "멜로는 케미인데, 둘의 집중력이 대단했다"라고 했다. 이어 "남궁민 배우는 의심하진 않았지만 궁금했던 게 멜로였다. 워낙 집중력이 좋고 몰입도가 강하고 흡입력이 강하기 때문에 멜로를 해도 충분히 잘 할 거라 생각했다. '검은 태양' 끝날 때도 멜로 하시면 좋을 거라고 얘기 했다. 그런데 기회가 잘 안 닿는다고 하시더라. 좋은 대본 있으면 안 할 이유가 없다고 하던 게 '연인'으로 이어졌다. 그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났다. 집중하고 몰입하고 진정성 있게 하다 보니까 정말 길채를 사랑하면서 그런 눈빛을 보여주고. 제 입장에서 남궁민의 재발견이라면 '멜로 눈알'로 돌변하는 거였다. 살기어린 눈빛을 보여주다가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연기가 가능했다"라며 감탄했다.
또한 그는 "안은진 배우의 몰입도 남궁민 배우에 준하게 굉장히 높았다. 안은진 배우는 특이하게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다. 현장 분위기도 많이 살피고 치얼업 해주는 것도 있고 이러다가 '큐'를 하면 눈물을 뚝뚝 흘린다"라며 놀라워 한 뒤 "길채는 조심스럽게 집중했다. 어쨌든 대본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고민을 많이 하고 연출자에게도 상의를 하게 되고 본인이 헷갈리는 감정도 많고 표현하기 어려운 지점들도 많고. 작가님이나 저나 남궁민 배우에게 많은 상의를 하면서 본인 집중력을 잃지 않더라"라고 덧붙였다.
작품 후반부 '길채의 효도여행'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장소와 영상미에 대한 호평이 많았던 바. 김성용 감독은 "작가님 탓을 하는 건 아닌데 야외 씬이 정말 많았다"라고 웃으며 "보통 드라마면 세트든 야외든 고정 공간이 있다. 이런 게 보통의 사극인데, 작가님 대본이 이미 능군리에서 시작해서 한양으로 왔다가 심양으로 다시 포로시장, 조선으로 온다. 이 많은 로케이션 들을 사극에 로케이션이 제한적이다. 서울시내나 도심에서 찍을 수 없어서 기왕 찍는 거 지방으로 내려가다 보면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더군다나 촬영감독님이 앞서 '옷소매 붉은 끝동'을 하셨던 분이다. 로케이션 지식이 풍부해서 헌팅도 장시간 다니셨다. 초반 준비가 길었다. 좋은 장소를 확보해놓은 다음에 급하게 해당 장소가 필요할 때 데이터가 있다 보니까 갈 수 있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훌륭한 장소, 훌륭한 구도가 다 해주는 게 아니다. 모든 게 더해져서 미술적으로도 모든 게 맞아떨어져서 장소가 다 빛났다. 해당 장소에 제약이 있다면 그대로 노출됐을 텐데 CG 도움도 받았다. 그런 차원에서 시청자 분들이 눈요기가 됐다는 게 있다면 모두의 기쁨"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올해 MBC 드라마 중 가장 잘 된 '연인', 다만 작품의 흥행과 동시에 제작진의 거취 또한 관심을 끄는 형국이다. 당장 '옷소매 붉은 끝동'을 연출했던 정지인 PD 또한 후속작 '정년이'에 대해 고심하던 중 작품을 따라 MBC를 퇴사했다. 이와 관련 어떤 피드백은 없었을까.
김성용 감독은 "연출자로서 작품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무조건 다음 작품도 계속 할 의향이 있다. 재고 따지기 보다는 제가 쓰임이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연인'도 대본도 보지도 않고 결정했지만 제가 믿고 따르는 누군가가 저한테 결이 맞는 작품을 준다면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저희 회사 피드백은 불러다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 지지하고 믿고 맡겨주시는 편이다. 그래도 힘든 건 없는지 종종 물어보셨고, 그러면서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가장 긴밀하게 소통한 건 홍석우 EP였다. 너무 힘들 때 저를 지탱해주고 뒷받침도 해주고 끌고 가줬다. 잘하고 있고, 너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고. 이런 말들이 크게 와 닿았다"라며 고마워 했다.
다만 그는 "이제 작품이 끝난지 얼마 안 됐다 보니 아직 다음 작품이나 어떤 제안이 들어온 바는 없다. 주변 통해서 '누가 보고 싶대, 누가 만나고 싶대' 정도의 전화를 두세통 받았다. 일단 홍석우 EP와 상의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제가 제안받은 작품을 방송사에서 소화할 수 있을지를 상의해야 할 것 같다. 저는 말씀드렸듯이 홍석우 EP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고 또 주위 분들과 기대서 작업을 하다 보니 스태프들 없이 잘 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도 한다. 또 거취 문제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전작인 '검은 태양'부터 '연인'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익히 알려졌든 김성용 감독은 강인한 풍모의 연출자다. 그렇지만 작품의 시작부터 과정, 이후 포상의 결과까지 주위의 소리를 듣는 모습은 누구보다 조심스럽고 정중했다. 부러지지 않는 고집보다는 휘어질 줄 아는 부드러움이 그의 연출적 소신이었던 걸까. 보는 이들의 감성을 건드릴 줄 알았던 '연인'의 비결이 그에게 있었다. / monamie@osen.co.kr
[사진] 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