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질란테’, 죗값은 법 대신 폭력.. 통쾌·씁쓸한 다크히어로물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11.29 22: 05

[OSEN=김재동 객원기자] “나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임용선서가 진행되도록 그는 선서의 몸짓인 오른 손을 들지 않았다. 대통령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채로 임관한다. 당연히 경위 계급장을 달고 경찰 일을 시작할 것이다.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비질란테’가 29일 7, 8화 마지막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8화의 엔딩 마지막 싸움에서 거악 세울미래자원의 김삼두(윤경호 분), 그 비호세력인 엄재협(이해영 분), 살인청부업자인 방씨(신정근 분)까지 모두를 처단한 김지용(남주혁 분)은 경찰대학을 무사히 졸업한다.
비질란테의 혐의는 최미려(김소진 분)의 각색으로 마지막 싸움에서 지용을 구하려다 대신 칼에 맞아 숨진 경찰대 동기 민선욱(이승우 분)이 대신했다.
이날 지용이 선서를 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선 6화에서 설명이 됐다. 광수대 비질란테 팀장 조헌(유지태)은 지용을 죽일 듯 패며 회유했었다. “비질란테는 죽여서 여기에 묻자. 그리고 임관해. 임관해서 나와 함께 일하자.”
그때 지용은 말했었다. “법이 그들을 활개치게 하지 않고 단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따르겠다”고. 아니라면 잃을 게 하나도 없는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소명, 악마를 죽이는 악마가 되겠다고. 그래서 불법이 거악을 잡는 모습을 증명하겠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국가는 정의를 저버렸다. ‘들쥐’ 엄재협을 비리경찰로 단죄하는 대신 불의에 맞섰던 바람직한 경찰로 윤색했다. 그러니 지용으로선 불법으로라도 거악을 때려 잡을 밖에. 그럴 작정인데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한다는 선서를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비질란테는 ‘범죄, 불의를 스스로 감시하는 자’라는 뜻을 갖는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의 비질란테는 ‘개인의 정의로 사적 처벌을 집행하는 자’의 의미가 강하며 이때의 사적 처벌은 곧 ‘린치’를 의미한다.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이 불법적 행위인 ‘린치’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 불법행위가 지용의 표현대로 법이 단죄하지 못한 거악을 단죄하기 때문이다.
복수는 드라마의 중요 테마다. 하지만 ‘더 글로리’의 개인 복수극을 넘어 복수대행서비스를 다룬 ‘모범택시’나 인민재판식 ‘국민사형투표’ 등 사적 처벌을 다룬 드라마가 쉼 없이 만들어지는 근저엔 일상화 되어 버린 사법 불신이 깔려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법 현실이 인과응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드라마 속 최미려는 말했다. “법이 시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 법은 가해자 편이다. 허술한 법과 판결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난 가해자들을 누군가 죗값에 맞게 응징하고 있다. 빽없는 자들에겐 단호하고 빽있는 자들에겐 물러터진 시대, 법이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죗값을 누군가 폭력으로 받아내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이런 다크히어로를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속 조헌의 변화는 그런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조헌은 비록 법에 모순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옳은 길로 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경찰이란 직업에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일해온 인물이다. 그래서 키워볼만한 후배 지용의 비질란테 행각을 안타까워 하며 제도권으로 편입하길 종용하는 캐릭터다.
그런 그가 후임 수사팀장 남영일(원현준 분)의 부고에 분노한다. 그가 아는 남영일은 경찰 조직이 아닌 법에 충성한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 뒤엔 법을 배신하고 사욕으로 조직을 지배한 엄재협이 있다. 이미 저항의지 없는 엄재협을 죽음에 이르도록 패버린 것은 그런 조헌의 가치관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김지용 역을 맡은 남주혁은 소화하기 쉽지 않은 다크히어로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가치관을 관철시키는 과정조차 정의로운 전통 히어로와 달리 다크 히어로는 선함 속에 도덕, 법률 따위를 외면할 수 있는 광기와 과격함을 보여야 한다. 남주혁은 법이 놓아준 악인들을 처리함에 있어 또렷하고 차분한 눈동자에 살짝 짓는 미소를 곁들여 과하지 않은, 정제된 광기를 표현했다.
히어로 피규어 수집광인 조력자 조강옥 역의 이준혁은 덜 큰 어른 같은 경박함과 순수한 정의감을 해맑게 표현해 유쾌한 쉼표를 찍어 주었고, 큰 키에 몸집까지 잔뜩 불린 조헌 역 유지태는 둔중하고 철벽같은 중량감으로 시스템 수호자다운 고지식함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임용 선서를 하지 않고 임관하는 김지용, “이번에도 우리 회장님은 법망을 피해가겠지?”라며 분노하는 조강옥, 엄재협을 조폭과 싸운 영웅으로 윤색하는 바람에 살인 혐의에서 자유로워진 조헌 등을 보면 어쩐지 ‘비질란테’의 시즌은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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